너, 엄마하고 살 때랑 완전히 달라졌구나
‘엄마의 가치관에 맞추려 예전의 내가 무리했던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 옷이 오늘 수주받은 브랜드 제품이라고 설명할 마음은 사라졌다. 설명한다고 해서 엄마의 불만을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글ㆍ사진 아사쿠라 마유미, 노부타 사요코
201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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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 후회가 밀려와 황급히 와인을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엄마는 그런 나를 마주보며 상냥하게 물었다.


“그래? 정말 잘됐네. 어떤 일인데?”


나는 애피타이저로 나온 젤리를 포크로 콕콕 찌르며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마음속으로 여러 번 문장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일본에 처음 들여오는 패션 브랜드 관련 일이라는 것과 내가 그 일을 담당하는 팀장이라는 것을 가능한 한 그리 대단한 일로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설명했다.


내 말을 듣는 엄마의 표정은 의외로 평온했다. 지금까지 맡았던 업무와는 달리 패션 브랜드 관련 일이라는 데 만족하는 듯했다. 엄마는 스마트폰용 부품인 용수철을 제조하는 회사와 일하고 있다는 말보다는 일본에 첫 진출하는 패션 브랜드와 함께 일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 기쁜 모양이다. 남들에게 딸 자랑을 할 때도 패션 브랜드 쪽이 더 그럴듯하게 들릴 테니 말이다. 엄마의 표정을 보고 나는 약간 안심하면서 뒤이어 나온 수프를 천천히 떠먹었다.


그런데 엄마는 수프를 내온 웨이터에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고는 곧바로 웃음기를 싹 거두며 나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옷이 그게 뭐니? 여자는 여자답게 입어야 한다고 엄마가 몇 번을 말했어. 예전에는 단정한 옷차림을 좋아하더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오늘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일부러 미국에서 들여온 그린그레이의 옷을 입었다. 통이 넓은 와이드 팬츠 위에 상의는 짧은 재킷풍 카디건을 걸쳤다. 분명 엄마가 좋아하는 A라인 원피스나 몸매를 강조하는 타이트스커트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얌전한 스타일인 옷을 좋아해 즐겨 입었다는 것은 엄마의 환상에 불과했다. 스커트를 기본으로 정장 스타일의 옷차림을 하지 않으면 엄마가 언짢아하니까 엄마 앞에서는 될 수 있는 한 그런 옷을 입었을 뿐이었다.


엄마는 허리를 펴고 표정을 다잡으며 말했다.


“회사 일 때문에 대단한 사람들도 만날 거 아냐. 그런데도 그렇게 품위 없게 입고 다니다니, 정말 예전하고 달라졌어”.


확실히 엄마가 보기엔 내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엄마 말을 잘 듣고, 옷차림은 물론 취미나 살아가는 방식도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아온 딸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에 상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진짜 내 모습이다.


‘엄마의 가치관에 맞추려 예전의 내가 무리했던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 옷이 오늘 수주받은 브랜드 제품이라고 설명할 마음은 사라졌다. 설명한다고 해서 엄마의 불만을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아사쿠라 마유미,노부타 사요코 공저/김윤경 역 | 북라이프
지금껏 딸이라는 호칭 앞에는 ‘친구 같은’, ‘착한’과 같은 단어들이 당연한 듯 따라붙었다.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엄마와 갈등을 겪고 있는 수많은 착한 딸, 아니 가족에게서 벗어나 나답게 살고 싶은 여자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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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가치관 #모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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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라 마유미, 노부타 사요코

임상심리사이며 하라주쿠 상담소 소장인 노부타 사요코와 프리랜서 작가인 아사쿠라 마유미가 만나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를 집필했다. 가족, 특히 엄마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