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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령의 중년 여성’이 ‘토사광란(吐瀉狂亂)’을 하다?
어느 글에서 위와 같은 표현을 대했습니다. 집 앞 골목에서 30대 후반인지 40대인지 분명치 않은 여인이 배를 감싼 채 뒹굴며 음식물을 토하고 있는 모습을 대하고서 적은 글이었는데요. 이 표현은 두 군데가 대단히 잘못된 문장입니다.
‘묘령의 중년 여성’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워서 그런 표현을 쓴 듯합니다. ‘묘령(妙齡)’이란 ‘방년(芳年. 이십 세 전후의 한창 젊은 꽃다운 나이)’과 마찬가지로, ‘스무 살 안팎의 여자 나이’를 뜻하는 말이랍니다. 그러니, 묘령의 중년 여성이란 표현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되지요. 묘령은 엄연히 스무 살 안팎의 나이를 뜻하는 말이라는 것, 꼭 기억해 두기 바랍니다.
‘토사광란(吐瀉狂亂)’은 어림짐작으로 잘못 쓴 말로, ‘토사곽란’의 잘못입니다. 배가 아파서 배를 움켜쥐고 미친 듯이 뒹굴면서 토하니까 마치 그게 광란(狂亂)인 듯만 해서 잘못 유추한 거지요.
‘토사곽란’은 어려운 말인데요. ‘토사’와 ‘곽란’이 합쳐진 말입니다. ‘토사(吐瀉)’는 ‘상토하사(上吐下瀉)’의 준말로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곽란’은 배가 놀라고 아픈 한의학상의 병이고요. 그래서 토사곽란은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하면서 배가 질리고 아픈 병’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한자어에의 쓰이는 한자의 정확한 의미를 챙기지 않아서 실수하기 쉬운 것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토사광란(x)/토사곽란(o); 동거동락(x)/동고동락[同苦同樂](o); 성대묘사(x)/성대모사[聲帶模寫](o); 부화내동(x)/부화뇌동[附和雷同](o); 유도심문(x)/유도신문[誘導訊問](o); 양수겹장(x)/양수겸장[兩手兼將](o); 산수갑산(x)/삼수갑산[三水甲山](o); 오합잡놈[烏合雜-](x)/오사리잡놈(o); 일사분란(x)/일사불란[一絲不亂](o); 절대절명(x)/절체절명[絶體絶命](o); 홀홀단신(x)/혈혈단신[孑孑單身](o); 동병상린(x)/동병상련[同病相憐](o); ‘풍지박산/풍지박살’x)'/풍비박산[風飛雹散](o); 호위호식(x)/호의호식[好衣好食](o); 주야장창(x)/주야장천[晝夜長川](o); 순국선혈(x)/순국선열[殉國先烈](o); 유관 검사(x)/육안[肉眼] 검사(o); 인상 실험(x)/임상[臨床] 시험(o); 체면불구(x)/체면 불고[不顧](o); 통산임금(x)/통상[通常]임금(o); 난상토론[難上討論](x)/난상토론[爛商討論](o); 옥석구분(x)/옥석 구분[玉石 區分](o); 생사여탈권(x)/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o); 삼지사방(x)/산지사방[散之四方](o); 휘양찬란(x)/휘황찬란[輝煌燦爛](o); 난리법석(x)/난리 법석(o); 중구남방(x)/중구난방[衆口難防](o); 기부체납(x)/기부 채납[寄附採納](o); 신출기몰(x)/신출귀몰[神出鬼沒](o)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한자어 표기 등은 정확하게 사용했지만, 쓰일 곳이 아닌 데서 쓰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다음 예문을 보죠.
그의 성공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자!
그의 성공적인 약진을 반면교사로 삼자.
카사노바는 희대의 바람둥이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부적절하게 쓰인 경우들입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자신의 산의 옥돌을 가는 데에 쓸 수 있다는 뜻으로, 본이 되지 않은 남의 말/행동도 자신의 지식/인격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그러니 타산지석’은 부정적인 사례에 쓰는 말이므로, 위의 문장을 놓고 보면 실패 사례의 경우에는 타산지석이 될 수 있지만, 성공사례는 타산지석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는 겁니다.
‘반면교사(反面敎師)’ 역시 ‘사람/사물 따위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을 이릅니다. 즉,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가르침에 쓰이는 말이기 때문에, ‘성공적인 약진’ 등과 같은 긍정적 상황에는 쓸 수 없는 부적절한 말이지요. 반대로, 흔히 쓰는 ‘회자(膾炙. 회와 구운 고기라는 뜻으로, 칭찬을 받으며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림을 이름)’는 좋은 일, 칭찬받을 일에 쓰이는 긍정적 표현입니다. 부정적 대상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데, 위의 예문에서는 바람둥이라는 부정적 측면에 사용되었으므로 부적절한 쓰임이 되었습니다.
그 말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어요
그 밖에도 한자어 중에는 무심코 잘못 쓰기 쉬운 것들이 적잖습니다. 모든 사례를 다루려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정도랍니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것들을 몇 가지 부류로 나누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시험은 고난이도 문제들이 많아서 점수들이 낮았어요.
이번 시험은 난이도 면에서 아주 적절했다.
여기서 ‘고난이도’는 ‘고난도(高難度)’의 잘못입니다. 난이도(難易度)는 ‘어려움과 쉬움의 정도’를 뜻하고, 난도(難度)는 ‘어려움의 정도’를 뜻합니다. 따라서 매우 어려운 것은 ‘고난도(高難度)’여야 하며, ‘고난이도’는 논리적 오류를 포함하고 있어서 부적절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예문은 그 쓰임이 적절하다고 해야겠습니다. ‘난도’의 경우에는 ‘이번 시험의 난도를 매기자면 5단계 중 중간 수준인 3단계쯤 되겠군.’ 등으로 쓸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자의 뜻은 웬만큼 아는데, 정확히 구분하여 쓰려는 노력이 모자라서 흔히 실수하기 쉬운 말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고난이도(x)/고난도[高難度](o); 부과세(x)/부가세[附加稅](o); 앞존법(x)/압존법[壓尊法](o); 횡경막(x)/횡격막[橫膈膜/橫隔膜](o); 인파선(x)/임파선[淋巴腺](o); 금도[禁度/禁道](x)/금도[襟度](o); 유사어[類似語](x)/유의어[類意語](o); 강강수월래[-水越來](x)/강강술래(o)
사용된 한자를 정확히 몰라서 하는 실수
한자어인 줄 몰랐거나, 사용된 한자를 정확히 몰라서 실수하게 되는 경우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몇 가지만 훑어보겠습니다.
벼란간 굉음이 들렸다.
한복에 나염 처리된 예쁜 꽃무늬.
그에 관하여 괴상망칙한 소문들이 들려 왔다.
철썩같이 믿었던 그이였는데.
예문에 보이는 것들은 흔히 실수하기 쉬운 것들로서, 각각 별안간(瞥眼間), 날염(捺染), 괴상망측(怪常罔測), 철석같이(鐵石-)의 잘못입니다. 특히 날염(捺染)은 해당 업종의 일부 종사자들이나 용어 사전에서조차 ‘나염’으로 잘못 표기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날염’은 피륙에다 무늬가 새겨진 본을 대고 풀을 섞은 물감을 눌러 발라 물을 들입니다. ‘捺染’을 한자사전에서는 ‘무늬찍기’라고 할 정도로 누르는 일이 긴요하며, 그래서 捺(누를 날)을 씁니다. 기억할 때 ‘도장은 눌러 찍으니까 날인(捺印). 눌러서 물들이니까 날염!’으로 해두면 효험이 있습니다.
괴상망측(怪常罔測)은 흔히 ‘괴상망칙’으로 잘못 쓰기 쉬운데, 여기에 쓰인 ‘測’은 헤아린다는 뜻이고 ‘罔’은 그걸 할 수 없다(어렵다)를 뜻합니다. 그러니 ‘망측’은 알 수 없다는 뜻이 되지요. 하도 괴상해서요. 괴악망측/괴상망측/괴괴망측 등으로 쓰였는데, 이 표현들이 길어서 앞을 떼어내고 망측만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흉악망측은 흉측으로 줄었고요.
흔히 쓰는 말 중에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되는 것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중 ‘벼란간/철썩같이/괴상망칙/괴변/칠흙’ 등은 KBS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에서 문제로 나올 정도로 흔히들 실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벼란간(x)/별안간[瞥眼間](o); 어연간(x)/어언간[於焉間](o); 푸악(x)/포악[暴惡-](o); 항차(x)/황차[況且](o); 괄세(x)/괄시[恝視](o); 충진(x)/충전[充塡](o); 철썩같이(x)/철석같이[鐵石-](o); 희안하다(x)/희한하다[稀罕-](o); 괴변(x)/궤변[詭辯](o); ‘흉칙/망칙/괴상망칙’(x)/‘흉측/망측/괴상망측[모두 ~測]’(o); 폐륜아(x)/패륜아[悖倫兒](o); 칠흙(x)/칠흑[漆黑](o); 흑빛(x)/흙빛(o).
남들도 쓰기에 따라 써봤어요
어느 신문기사의 표현, ‘00씨는 출감하자마자 000 총재의 자택을 찾았다.’를 보겠습니다. 총재의 집이 그의 집으로 바뀔 수도 있는 문제적 표현입니다. ‘자택’이란 ‘자기 집, 내 집’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일 뿐이거든요. 남의 집을 높여서 이르려면 ‘댁(宅)’ 정도가 적절합니다. 물론 총재의 사무실이나 다른 곳을 찾아가지 않고 그의 집으로 갔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택’이라 적었겠지만, 그럴 경우에도 ‘댁’ 정도면 족합니다.
앞서 다뤘던 묘령의 중년 여인도 이처럼 ‘묘령’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남들 따라서 짐작만으로 사용한 경우입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김 군은 장래가 촉망되는 재원이야.’도 있습니다. ‘재원(才媛)’은 ‘재주가 뛰어난 젊은 여자’를 뜻하므로 남자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말이거든요. 몇 가지 사례를 더 살펴보지요.
‘까보면 흠결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에서 ‘흠결’은 ‘흠’이 더 적절한 표현입니다. 흔히 흠결을 ‘단점/결점/잘못/흠’의 뜻으로 쓰지만, ‘흠결’은 흠축[欠縮]과 같은 말로서 구체적으로 양이 축나서 모자라거나 부족할 때 쓰는 말이기 때문에 비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지만, 예문에서와 같이 일반적인 의미로 충분할 경우는 ‘흠’이 더 적절합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지면 관계로 설명은 생략하고 예시만 하겠습니다.
-‘천방지축마골피’는 희귀성들을 모은 거야 : 희성의 잘못.
-그 아이 병은 희귀 질병이라고나 할까 : 희유병(혹은 드문병)의 잘못.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 우레의 잘못.
-이번의 비리 사건은 회사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 : 유례의 잘못.
-농민들의 항의 시위로 시내 진입로 일대가 봉쇄되었다. : 일부 지역의 잘못.
태풍으로 남해안 일대에 주의보가 발효되었다 : 맞음.
시행사 측은 북한산 일대 1만 평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 (일부) 지역의 잘못.
-놀이시설 이용 시 노약자와 임산부는 유의하세요 : 임신부(혹은 임부)의 잘못.
-서행하면서 2차선으로 달리면 사고 나기 십상이지 : 2차로로의 잘못.
-앞뒤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따따부따 하기는 : 가타부타(혹은 왈가왈부하기는)의 잘못. ←논리적 오류.
-금슬(琴瑟) 좋은 부부는 금실로 엮인다 : 맞음. ‘금실’도 가능함.
‘피고’와 ‘피고인’은 같은 말일까? 다른 말일까?
마지막으로, 퀴즈 풀이 하나를 해보죠. 생활 속에서 흔히 대하는 말 중에서요.
“피고는 반사회적인 폭력 집단의 수괴로서 ... 등을 저질러 온 바, 일벌백계의 차원에서 엄벌에 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사형을 구형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아주 유명했던 드라마에서 검사가 재판장에게 구형하는 장면인데요. 이 드라마 작가는 아주 크게 망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불성실한 작가들의 작품에서 흔히 대할 수 있기도 합니다. 무엇일까요?
그것은 ‘피고’라는 말입니다. 짧게 말하자면, 죄인을 다루는 형사 재판에서는 ‘피고인’이라 해야 합니다. ‘피고’는 소송을 당한 쪽을 이르는 일반적인 용어로(소송을 제기하는 쪽은 ‘원고’) 우리나라에서는 민사 재판에서 쓰입니다. 피고인은 형사 피고인의 준말로,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형사 피의자 신분인데, 일단 재판정에 나오면 소를 제기한(이것을 ‘기소’란 합니다) 원고 측인 검사에 대향적인 위치에서 피고인이 됩니다. 즉, 원고는 검사가 되고, 피고는 피고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형사재판에서의 원고와 피고는 소를 제기하는 측과 당하는 쪽을 구분하는 용어이고, 그 신분/직위의 명칭은 아닙니다. 피고 측의 법적 신분 호칭은 ‘피고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피고는 민사재판에서 쓰이는 용어이고, 피고인은 형사재판에서 쓰이는 용어라고 알아두시면 됩니다. 그러니, 형사 재판정에서 ‘피고인’을 향해 ‘피고’라는 말을 꺼내드는 작가들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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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공 우리말최종희 저 | 원더박스
『열공 우리말』은 우리말에 대한 130가지 질문과 답을 통해 1천여 표제어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다시 그 표제어와 분류별, 유형별, 실생활 사용례별로 연관된 1만2천여 단어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설명한 우리말 어휘 공부의 보고이다.
최종희
“언어는 그 사람”이라는 소신을 지닌 우리말 연구가이다. 언어와생각연구소 공동 대표이며, 경기교육청 ‘학교로 찾아가는 인문학’ 강사이다. 충남 서천에서 나고 자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퇴직하고 나서 꼬박 5년을 바쳐 완성한 『고급 한국어 학습 사전』은 현재 국립도서관에 “마지막으로 납본된” 중대형 종이 사전이 되었다. 『박근혜의 말』, 『달인의 띄어쓰기·맞춤법 워크북』, 『내가 따뜻한 이유』(공저) 등을 썼고,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셀프 혁명』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