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향순은 서울예술단 예술조감독, 백제예술대학교 전통공연예술과 교수, 중앙대 타악연희과 학과장, 대전시립무용단 상임안무자 등을 거쳐 현재 채향순 중앙무용단 단장, 중앙대 공연영상창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국전통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밖에 국격을 높이는 국가 브랜드적 공연을 다수 하면서 세계적 공연을 통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문화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데 이바지 하고자 노력하는 무용가다.
세종대왕전통예술경연대회를 개최하고 계시죠?
네. 올해로 3회를 맞게 되었어요. 2015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제가 위원장으로 있는 한국전통예술위원회가 주관하여 시작했고, 2016년에는 동대문구청이 공동주최 기관이 되었습니다. 전통예술 가운데 판소리, 기악, 무용, 민요 등 네 개 부문을 명인부와 일반부로 나누어 경연하고 있고 지난해부터 대학생부를 신설했습니다. 동대문에 위치한 세종대왕기념관 세종공원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한글과 우리 국악 창제의 세종정신을 바탕으로 전통예술인의 육성과 인재발굴은 물론, 전통예술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이바지하고자 개최하게 된 행사입니다. 올해에는 9월에 열리는데 지난 대회들보다 많은 예술가가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예술에 관심을 둔 것이 참 반가운 일입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창제로 유명하지만, 전통예술의 발전과 혁신을 주도한 치음치세(治音治世)의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어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는 이러한 세종대왕의 국악 창제 및 민족문화창달의 업적을 이어받아 오늘날 전통예술을 보존하고 선양하고자 ‘한국전통예술위원회’를 창립했고 제가 위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세종대왕전통예술경연대회’는 세종대왕의 여민락(與民樂) 정신을 바탕으로 국내 최고의 예술 명인들이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경연의 장으로 숨겨진 유능한 인재들이 큰 기백으로 솟아오를 수 있는 전통예술의 등용문이 될 것입니다. 경연대회 외에도 ‘한국전통예술위원회’에서는 문화예술과 관련한 강연회 개최, 전통 예술의 저변 확대를 위한 국제 교류를 주도하는 등 다양한 문화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시상내용 중 ‘전통에술명인상’이 인상적입니다. 수상자들에게 주는 상금도 보기 드물게 크네요.
부문별로 대상(국회의장상), 금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최우수상(서울시장상), 우수상(대회장상), 준우수상(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상), 장려상(전통예술위원장상) 등에 상패와 상금을 시상하고 있어요. 종합대상인 세종대왕상은 본선 각 부문 1등 끼리 경합을 벌여 최종 선정하는데 수상자에게는 상금 2천만 원이 수여됩니다. 그 밖에 특별상인 전통예술명인상은 이 시대 명인을 기리는 상으로 1회에는 권명화 선생님, 2회는 김란 선생님께서 수상하셨습니다. 우리 대회는 전통무대의 원형적 본질인 가무악의 총체적 분위기와 올바른 특성을 살리고자 판소리, 기악, 민요, 무용 등을 한데 어울려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재현의 조화로운 융화에 역점을 두고 있어요. 제3회 대회 역시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전통춤들을 이수하셨고 상도 많이 받으셨죠?
1990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인 승무, 1997년에는 제97호 살풀이춤, 그리고 2016년 무형문화재 제20호 살풀이춤 이수자 자격을 얻었습니다. 의식하지 않고 춰온 것에 비해 감사하게도 큰 상들을 받아서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 중 1986년 제12회 전주 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일반부 무용 장원을 받은 것은 잊을 수 없어요. 제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았고 더 넓은 물로 나아갈 용기를 얻은 터닝 포인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는 2013년 한국무용제전 최우수상 수상작 <사당각시>가 같은 해 대한민국무용대상 대통령상을 받고, 22회 전통공연예술경연대회 종합대상(대통령상), KBS 국악대상 무용부문 대상과 제33회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최우수예술가 상 등 굵직한 상 5개를 모두 한 해에 받은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언제, 어떻게 춤을 시작하셨나요?
여섯 살 때 어머니께서 대전국악원에 데려가 주신 것이 제 춤의 시작이었어요. 춤추기를 좋아했던 저에게 아버지 몰래 춤을 배우게 해주신 것이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 시작하며 신동 소리를 들으니 아버지도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셨어요. 방학마다 서울에 가서 춤과 창을 배웠는데 박귀희 선생님께 가야금병창을, 김문숙 선생님께 춤을 배웠습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대전 보문산에 있는 대흥사에서 스님께 장구를 배우기도 했어요.
중학교부터는 서울에서 공부하셨죠?
대전 양도일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에 올라와 국악예술중고등학교를 다녔어요. 학교에서는 한영숙선생님께 춤을 배웠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박귀희예술단 단원이 되어 세계 투어를 다녔습니다. 춤뿐 아니라 악기와 노래에 능한 15명의 정예단원으로 활동했는데 많은 것을 배운 경험이 되었어요. 그 후 뒤늦게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진학했고, 대학원은 동 교육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했습니다. 박사학위는 경희대학교에서 받았어요.
춤뿐 아니라 전통 연희 등 폭넓은 분야를 어우르시는 이유가 교육과정에서 드러나는군요. 지금까지 어떤 스승들을 만나셨나요?
훌륭한 스승님들을 만난 것에 감사합니다. 대전에서는 양도일 선생님께 설장구, 꽹과리 등 악기를 배웠고, 춤은 김란, 박미숙 선생님께 배웠어요. 서울에 와서는 박귀희 선생님께 가야금 병창을, 한영숙선생님께 춤을 배웠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중요무형문화재인 전승자, 성우향, 선생에게 판소리 심청가, 춘향가를 사사받았고, 이매방, 김천흥, 박병천 선생님 등을 만나 춤을 공부했습니다. 이 모든 스승님들 덕분에 제가 가무악에 능한 예인(藝人)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작품을 만드셨는데 애작愛作 으로 꼽는 것은 어떤 작품인가요?
데뷔작 <물의 소리춤>부터 쭉 돌아보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도리화>에 애착이 갑니다. 그리고 많은 관객이 좋아해 주었던 북춤 <풍고>도 저에게 특별한 작품이에요. 최근작 중에는 저에게 많은 수상의 기회를 준 <사당각시>를 애작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전통과 창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한국무용가로 전통에만 안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을 잘 보존하면서도 당연히 새 것을 창작해나가야 하죠.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춤을 만드는 작업은 동시대 무용가들이 후대를 위해 해야 할 일입니다. 물론 이 시대 관객에게 <승무>, <살풀이>와 같은 전통춤의 원형을 바르게 보여주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젊은이들,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한국적 창작품도 끝없이 개발되어야 해요. 가끔 한국 창작춤 무대에서 국적불명의 음악이나 춤사위가 우리 것인 듯 흡수되는 일은 우려스럽습니다. 우리 고유의 움직임과 정서라는 근본은 지켜져야겠지요.
제자들에게는 어떤 스승이신가요?
좀 엄한 편이죠. 제자들이 이 말을 들으면 ‘좀’이 아니라 ‘많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저 자신은 무대에서 박수를 받으며 희열을 느끼고 칭찬에 기뻐하면서 정작 제 제자들에게는 왜 엄해지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정말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관심이 없으면 내버려 두었겠지요. 혹독하게 연습하는 제자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제가 그동안 배워온 것들을 제자들에게 다 주고 싶어서 욕심이 생기네요. 제자들을 편하게 해주고 싶지만 그게 잘 안돼요. 끝장을 봐야하는 제 근성 때문인가 봅니다. 이 모든 것은 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과 정신수련까지 바른 무용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입니다.
지난해 뉴욕에서 공연된 ‘천강(千江)에서 춤추는 달’이 큰 호평을 받았죠?
지난 7월 한국전통예술위원회가 뉴욕의 맨해튼 심포니스페이스에서 ‘천강에서 춤추는 달’을 공연했어요. 현지 관객의 갈채를 받은 것도 기쁘지만 이 공연을 통해 한국전통예술위원회가 나가야 할 공연 문화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일회성으로 그치는 행사공연에서 탈피, 세계무대를 겨냥하며 세계인들에게 감동의 울림을 전하는 국가 브랜드 공연으로 성장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천강에서 춤추는 달’은 세종대왕의 예술적 혼과 한글의 아름다움을 빛나는 달로 표현하여 뉴욕의 허드슨 강을 거쳐 천개의 강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그려낸 기획입니다. 한국 예술의 전통적 초석을 다져내신 세종대왕의 위업과 한글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흐름 속에 올해에는 중국에서 국가 브랜드적 공연을 다시 한 번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저는 요즘도 세계군악대회 영상을 즐겨봅니다. 채향순무용단의 활약이 정말 대단했어요.
타투(Tattoo)요? 몇 년 간 채향순 무용단이 세계군악대회에 참가했었죠. 이 역시 가무악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제 스펙트럼 덕분에 가질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스테디움에서 열리는 군악대회에서 수만 명의 기립박수를 받는 일은 감동이상의 전율이었어요. 대회의 부대행사인 극장 공연 역시 기립박수를 받곤 했죠. 군인들로 구성된 취타대와 호흡을 맞춰야 하고 짧은 시간 안에 야외 스테디움에서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국내 무대공연에 비하면 정말 고생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고생만큼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2008년 캐나다 퀘벡 대회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데, 사전 콘서트에서 1,800석 극장의 관객들이 장면마다 기립박수를 쳐준 순간은 잊지 못할 겁니다.
춤으로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예술성 높은 작품을 만들어 관객의 사랑을 받는 예술창조작업을 끝없이 해나갈 것입니다. 또한, 세계 속에 한글의 우수성을 선보이고 국격을 높일 수 있는 국가브랜드적인 공연을 지속해서 펼쳐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더 의미 있는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이들이 우리 무용계를 밝은 미래로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좋은 스승이 되고자 합니다.
춤은 선생님 인생에서 무엇인가요?
춤은 제게 삶 그자체입니다. 6살에 정식으로 배우기 전부터 춤을 너무나 사랑했고 지금까지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추어왔습니다. 지난 제 인생에서 춤을 빼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춤에 대한 정의가 그냥 떠올라요. 바로 ‘삶’이죠.
글 김예림 (무용평론가 yelim110@naver.com)
춤과사람들
월간 <춤과사람들>은 무용계 이슈와 무용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전문잡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