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조금 다른 의사입니다. 의학을 전공했지만, 병원을 접고 음식을 만들고 사업을 하고, 진화의학을 강의합니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어마어마한 나는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사실 의학은 굉장히 유용한 학문이어서, 내가 다른 것을 공부하는데 큰 바탕이 됩니다.
어릴 적 외딴 시골에서 자라 바깥 세상과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습니다. 그때 유일하게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었던 것이 책이었죠. 책이 좋아서 혹은 모범생이어서 어려서부터 책을 봤던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책 읽기의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집을 짓는 데는 시멘트도 필요하고, 벽돌도 필요하고, 철근도 필요하고 인테리어 부자재들도 필요합니다. 인생이라는 건축물을 짓는 데는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이 그런 재료가 됩니다. 멋진 집을 혹은 자신이 원하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재료들이 풍부하고 다양해야 합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한정적입니다. 독서는 다른 사람들의 압축된 경험과 생각들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줍니다.
다독(多讀)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생각의 깊이나 경험에 따라 같은 책도 다르게 다가옵니다. 책을 읽고 저자와 토론한다고 생각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거의 편향된 독서를 해왔습니다. 내가 연구하고, 관심 있어 하는 것만 읽었던 탓에 그 동안 읽어왔던 책들은 진화와 관련 책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진화의학을 연구할수록 이 학문이 비단 “건강”이나 “의학”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과 세상의 이치, 자연의 섭리를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속 시끄러운 일들이 많은 요즘입니다. 뉴스를 보면서 일련의 사건들에 군중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해결해 나가는지 자연의 섭리에 비추어 예상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바탕엔 진화의학이 있습니다.
철학에는 원래 관심이 많습니다. 기독교도 불교도 이슬람교도 결국은 세상의 큰 이치에 대해서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화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없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닥친 불행이 혹은 실패가 후에 돌아보면 정말 행운이었다라고 생각하는 때가 옵니다. 최근에 가볍게 읽으려고 소노아야코의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책을 샀습니다.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나와 비슷한 것 같아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어볼 계획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닙니다. 강의라면 훨씬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아직 원시시대』는 독자들이 강의를 듣듯이 편하고 쉽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단순한 건강서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들여다보면 진화의학엔 사회학도 있고, 심리학, 철학, 경영학도 있습니다. 자연에서는 절대 선도 악도 없습니다. 아토피도 열도 모두 나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증상들입니다. 자연의 섭리를 알면 우리 삶의 이치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깊고 심오한 내용들은 아니지만 가볍게 생각의 전환을 해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을 짓는데 철근과 콘크리트처럼 메인이 되는 재료는 아니지만, 꼭 필요한 “나사” 처럼 내가 전하는 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나사 같은 재료였으면 하는 바랍니다.
명사의 추천
군주론
니콜로마키아벨리 저 / 강정인, 김경희 공역 | 까치(까치글방)
군주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는 뜨거운 논쟁거리인 책이다. 군주론이라 하면 먼저 냉혹한 정치, 술수 그리고 권력 추구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이유를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을 꿈꾸며"라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한쪽으로만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다시 한번 읽어봄 직하다.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
소노 아야코 저 / 오경순 역 | 리수
일본의 소설가 소노 아야코가 1972년에 발표했던 베스트셀러이다. '허용', '납득', '단념', '회귀'라는 4가지 주제를 통해 어떻게 나이들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한다. 행복하게 나이 드는 비결을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이다. 작가는 노년을 고독감과 자괴감에 빠져들지 않고 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을 위해 경계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어서 좋았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저 / 김선욱 감수 / 김명철 역 | 와이즈베리
마이클 샌델은 우리나라에도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정의'에 대한 확고한 답을 내리지는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덧 '정의'에 대한 생각이 계속 수정됨을 알 수 있다. 위대한 사상가들의 생각과 비교하며, 자신이 '무엇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도록 한다.
음식의 제국
에번 D. G. 프레이저, 앤드루 리마스 공저 / 유영훈 역 | 알에이치코리아(RHK)
저자는 음식을 통해서 역사의 흥망성쇠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음식은 자연에서는 양보 할 수 없는 것이다. 경쟁의 정점에 있는 먹이를 획득하는 것이 곧 생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도 일종의 먹이 경쟁을 하고 있음을 이 책은 보여 주고 있다. '음식'을 프리즘으로 인류 문명사를 새롭게 펼쳐 보인다.
잡식동물의 딜레마
마이클 폴란 저 / 조윤정 역 | 다른세상
이 책은 잡식동물로서 인간의 먹거리와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잡식동물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필연적으로 음식과 관련된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먹을 것을 발견할 때 먹어도 될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잡식동물의 딜레마'이다. 다면이론에서의 주장처럼 먹거리의 폭이 확장되면서 동시에 많은 위험과 부작용도 발생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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