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재미를 느낀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책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생겼던 것 같아요. 그즈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던 큰 형님이 결혼하셨습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지금의 형수님께서 어린 시동생에게 뭘 갖고 싶으냐고 물으시길래 형수님 손을 잡고 동네 인근 서점에 갔고요. 제가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뽑았는데 문고판 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고른 책을 모두 형수님이 계산해 주셨고, 그다음 작은 형님 결혼식 때도 똑같았습니다. 저는 그냥 책이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책을 읽으면 현실과는 다른 세계로 가볼 수 있고, 거기에서 현실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서는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유학 초기에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외국어로 대화하거나 토론할 때 소재가 빈약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외국어 실력이 향상되면 좀 나아지겠지’하는 생각을 하곤 했고요. 하지만 그것은 외국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독서를 통해 사고하는 힘이 부족해서라는 걸 알게 됐죠. 다시 말해서 내 안에 없는 것은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내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젊은 학생들도 외국어라는 스킬(skill)에만 전념할 게 아니라 그 기술에 담을 내용에도 노력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 가운데는 독서가 유용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요즘 저자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관심사와 관계해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정확히 내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두 권의 책입니다. 한 권은 『유럽법의 기원』에 대한 전면 개정판이고, 다른 한 권은 『(가칭) 로마법의 법률 격언』입니다. 준비하는 두 권은 『라틴어 수업』과는 다른 학술서고요. 학술서임에도 대중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제 부족함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전면 개정판 『유럽법의 기원』은 로마법, 교회법, 보통법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데, 일반 독자가 다가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죠. 그래서 일반 독자가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주제와 로마법의 이야기를 찾는 중입니다. 『로마법의 법률 격언』은 원래 중세시대 법학자들이 방대한 로마법의 내용을 다 알 수 없어서, 요약본 형식으로 외워 사용했던 것인데요. 이를 중세의 법학자들은 ‘브로카르티’라고 불렀는데 오늘날로 하면 ‘서머리’ 정도가 될 겁니다. 하지만 로마법이 방대한 만큼 그 요약본의 양도 방대합니다. 이 법률 격언 가운데 중요한 주제들을 선정하고 그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해요. 그래서 요사이 로마법, 로마사와 관계된 원서들을 읽고 있습니다.
저자님의 최근작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학술서나 전공서만 써온 저에게 최근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반응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경험입니다. 사실 학술서에 대해서는 ‘한 줄 평’도 찾아보기 힘든데, 최근 발행한 『라틴어 수업』에는 많은 분이 서평,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만의 느낌을 전해줍니다. 그 내용이 진솔하고, 또 어떤 부분은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이야기도 있어서 감사하더라고요. 그래서 저의 생각도 독자분의 생각과 비슷한데요. 부족한 저의 책 『라틴어 수업』으로 누군가의 눈과 귀를 위로하기보다는 제 미천한 경험과 생각을 통해 삶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일상과 사회에 대해 잠시나마 멈춰서 생각해보고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우리 각자가 또 우리 사회가 사람 살기에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은데요. 책 제목 때문에 정말 라틴어를 배우려고 이 책을 고르신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분들께 미안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실제 수업에서는 라틴어 학습에 중심을 두었고 책 『라틴어 수업』에 있는 내용은 수업 말미에 학생들과 함께 나누고자 던진 이야기들입니다. 그 점 너그럽게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명사의 추천
굳은 손가락으로 쓰다
이원규 저 | 동아일보사
이 책은 저의 고등학교 은사님인 故 이원규 선생님께서 루게릭병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와중에 중지 손가락 하나로 몇 년에 걸쳐 쓰신 책입니다. 선생님께서 책을 집필하실 당시는 제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중일 때였습니다. 사지 멀쩡한 제가 공부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선생님의 책은 큰 귀감이 됐고, 다시금 마음을 다 잡고 공부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 책입니다.
신의 역사
카렌 암스트롱 저 / 배국원, 유지황 공역 | 동연출판사
'신의 역사'라고 하면 케케묵은 옛 이야기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실상 신에 관한 역사 이야기는 동시에 인류의 역사 이야기도 되니까요. 신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 현대 세계에서도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이죠. 그 속에서 우리는 신을, 또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합니다. 그것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요. 그래서 신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는 현대 세계에서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담론 가운데 하나인데, 이 책이 그 이야기를 훌륭하게 보여줍니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저 / 홍승수 역 | 사이언스북스
이 책은 특별히 설명이 필요 없는 명저인데, 최근 모 매체에 소개되면서 대중의 더 큰 관심을 게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책을 목록에서 뺄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말씀드립니다. 이 책은 제가 좀 더 먼 미래에 준비하고 있는 <신과 과학>이라는 주제하고도 깊은 연관이 있기도 합니다.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APA 저 / 권준수, 김재진, 남궁기, 박원명 등역 | 학지사
사실 이 책이 일반인에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수업을 듣는 법학도들에게는 꼭 이 책을 필독서로 권합니다. 그것은 법에 대한 이해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법의 천편일률적 적용은 인간을 위한 법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조인들이 인간 행동에 담긴 현대 세계의 정신질환을 좀 더 잘 이해하여 양형과 판결에 신중하였으면 하는 바람에 이 책을 추천합니다.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손기태 저 | 글항아리
이 책은 인간의 욕망과 스피노자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놓은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인간 내면에 숨 쉬고 있는 욕망과 인간 본질에 대해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훌륭한 책입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