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피아노와 록을 앞세운 당찬 소녀 윤하의 등장은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음악을 막 알아가던 십대들은 윤하를 통해 록을 배웠고 마니아들은 아이돌 위주 시장에 밴드 사운드를 전면 배치한 어린 천재를 기특해했다. 이후 윤하 앞에는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보컬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짐과 동시에 팬들의 '음악적 우상'으로의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전자는 지금까지도 노래방 애창곡으로 자리하는 「기다리다」와 「오늘 헤어졌어요」 「괜찮다」의 발라드 트랙이 있지만, 후자에 있어선
11월 10일, 5년 만에 다시 만난 윤하는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계획을 차분하면서도 활기차게 풀어놓았다. 혼란했던 과도기를 거쳐 아티스트로의 자신감과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그는 불안함과 위태로움 대신 성숙과 성장으로 그 기간을 정의했다. 특히 인터뷰 내내 거듭 자신을 성원해준 팬들에 대한 감사를 강조했다.
최근 대학 축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네요.
SNS 노출 빈도수가 많아서 그런지, 빈도 자체는 과거보다 적은데도 많은 분께 알려지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연말 크리스마스 콘서트 <#RE>도 공개했는데요, 전체적인 구상이 어떻게 되는지?
새로운 시도가 많이 들어간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미발표곡이나 캐럴도 셋리스트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때는 새 앨범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음… 아직 정확히 결정된 건 없습니다. 논의 중이에요.
2012년
음악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아서 어떻게 말씀 드릴지 고민이 되네요. 우선 크게 생각하는 부분으로는 팬들의 니즈를 자각하는 게 오래 걸렸던 것 같습니다.
'음악 만들기'라는 측면에서 볼 때 윤하 씨는 작업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여유롭게 하는 편인가요?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작업이 엎어졌던 경우는 제작 환경 때문인가요, 윤하 씨가 원해서 그런 건가요.
제가 중단했죠. 실제로 녹음을 했던 것도 있고, 가이드 단계만 된 것도 있고, 시도했다가 한 곡도 완성 못하고 끝난 것도 있었고요. 제가 원하는 게 뭔지, 해야 하는 건 뭔지, 사람들이 원하는 건 뭔지, 계속 고민하다 보니 작업이 길어지게 됐어요. 대중이 좋아하는 부분을 연구하고 따라간다고 해서 맞출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고, 그렇다고 제가 진심으로 원해서 만든 것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수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윤하의 자아와 팬들이 원하는 음악 사이의 적절한 조절이 담겨있다고 해도 될까요.
그렇습니다!
윤하 씨가 새 앨범에 작곡, 작사로 참여한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요새 작업 방식이 많이 달라져서 트랙 메이킹, 탑 라이닝 따로따로 하는 부분도 있고, 여러 가지 섞어서 공동 작업을 하기도 해서 얼마 정도의 비중이라고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최대한 모든 곡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크레딧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작업 내내 같이 있으려고 노력 중이고요. 모든 진행 과정을 같이하기 때문에 저의 비중이 작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곡을 같이 만들었어도 다른 분께서 생각하신 라인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다면, 그분 이름으로 크레딧에 올라가겠지만요.
한창 앨범 작업 과정 중에 있으신 거네요.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작업 하시는 동안 윤하 씨를 즐겁게 하는 것, 버티게 만드는 것들이 있을까요.
즐거움보다는 책임감 같아요.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제일 컸고, 팬분들이 저의 버티는 힘이었죠. 그래도 즐거운 걸 꼽자면… 떠오르는 친구들을 만날 때? 이제 막 시작하는 신예 뮤지션들, 그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런 아티스트들을 볼 때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연락도 하면서 '나도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 오랫동안 공백이었으니까요.
그 중 가장 관심이 갔던 음악이 있다면?
이제까지 제 기준에선 록 같은 백인 베이스의 음악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최근에는 흑인 베이스의 음악을 연구하고 많이 들었어요. 사운드 클라우드(Soundcloud)에서 유행하는 음악들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공백기라고 하셨지만 최근 <변혁의 사랑>의 「Love u」, <최고의 한방>의 「꿈은」, <닥터스>의 「Sunflower」,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의 「I believe」 등 각종 드라마 OST를 통해 활동을 이어오시기도 했습니다. 그사이에 왜 윤하 씨가 화제의 중심이 되지 못했을까요.
너무 단발성 작품들이니까요. 팬들도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던 것 같고… 물론 그건 제가 자처했던 거죠. 제 내면을 보다 깊이 파악하고 싶어서 동굴 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 인상적이었던 팬의 지적이 있었을까요. 팬들과의 사이는?
저에 대한 지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젠 서로 지적할 만큼의 나이가 아니기도 하고요. (웃음) 팬분들과는 시간이 갈수록 더 두터워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최근 발매한 싱글이 유승우와 함께한 「티가 나」인데요. 자이언티의 「꺼내 먹어요」를 쓴 브라더수와 함께했습니다.
'콜라보레이션'이라기보다는 프로젝트성의 싱글이었어요. 브라더수가 1절까지 쭉 작사를 해서 보내줬고, 이후 2절 맞춰서 쓰다 보니 공동 크레딧으로 올라갔어요. 메일로만 진행하고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던 작업이었습니다.
서태지 데뷔 25주년 기념으로 「Take five」를 리메이크하기도 했죠. 원곡의 활기찬 스타일 대신 부드러운 분위기가 도드라졌는데요.
「Take five」는 제가 직접 고른 곡인데요, 워낙 좋아하는 트랙이다 보니 저도 처음에는 편곡을 세게 가고 싶었어요.
실제 서태지의 반응이 있었다면?
과거 2009년 ETP 페스티벌에서 섭외 제안이 오고 가면서 전해 들은 칭찬은 '기특하다'는 말씀이었어요. 정확한 음악적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저의 존재를 선배님께 각인시킨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이번 작업 과정에는 담당자를 통해 연락이 오고 갔는데, 서태지 선배가 메일을 통해서 정확하게 수정할 점을 짚어 주셨어요. 덕분에 서로가 원하는 대로 잘 완성된 것 같아요.
윤하의 콜라보레이션 하면 에픽하이를 빼놓을 수 없죠. 최근 에픽하이도 앨범이 나왔는데요.
저는 '제4의 멤버'니까요!(웃음)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부를 수 있는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고요, 이번 앨범도 잘 들었습니다. 오히려 리스너 입장에서 들을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타블로 씨의 프로듀싱을 언제나 믿고 또 존경하고 있어요.
지난 해 비중격 만곡증 수술을 받았는데. 정확히 어디가 불편하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비염이 심했었는데 확인해보니 코뼈가 휘어 있었어요. 데뷔 이후로 1년씩 2년씩 계속 수술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못 하게 된 시점이 있었어요.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비염 수술로는 안 된다고 진단을 받아서, 뼈를 잘라서 똑바로 붙이는 수술을 받게 됐어요.
비염은 어떻게든 목소리와 연관이 될 수 있는 부분인데요.
질타를 많이 받기도 했어요. 작년 <투유프로젝트 : 슈가맨> <복면가왕> 출연했을 때는 가창력 논란도 있었고요. 수술하기 전의 일들인데, 이후에는 노래 부를 때 콧소리가 좀 덜 나서 훨씬 편하고 귀도 또렷하게 잘 들려서 확실히 나아진 것 같습니다. 건강도 잘 관리하고 있고요. 다만 나이가 점점… (웃음)
제 시각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패턴에 맞춰서 한다면 순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고, 이 환경 속에서 뭘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더라도요.
윤하가 바라보는 음악계의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술도 좋고 사운드도 너무 좋아졌는데, 이걸 큰 스피커에서 들을 만한 기회가 없다는 게 제일 아쉬워요. 요즘은 스마트폰 스트리밍이 일반적인 감상 방법인데, 아무래도 제일 크고 제대로 듣는 건 녹음실, 마스터링실에서 가수 본인이나 작업자뿐이니까요.
2013년
제 의지가 강했어요.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게 더디다고 생각했었고, 고집스러운 부분도 있었죠. 그래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것이 왜 인기 있고 매력 있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이었어요. 처음에는 대중의 니즈로부터 출발했지만 저의 니즈로 옮겨오면서, 그것이 굳어져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안이 온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제가 예능을 나가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하면 나갈 생각입니다. '기회가 오면 재밌게 해야지' 정도랄까요. 음악을 제가 후회하지 않는 정도에서 만든다면, 이미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윤하 씨가 2006년 「Audition」 「비밀번호 486」 「혜성」으로 한국에서 데뷔했을 때 10대의 예쁘고 가녀린 여자 가수가 밴드 사운드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파격적이었습니다. 그 부분은 유지하려 하시나요? 혹은 새로운 플랫폼을 짜고 계신가요?
정말 결정적인 고민인데… 예리하신 질문이에요(웃음). 저는 욕심이 많아서 둘 다 가져갈 생각입니다. 음반 제작에서의 작업 방식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따라가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는 플랫폼의 변화가 있겠지만, 라이브에서는 아무래도 밴드 사운드를 고집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윤하가 가지고 있었던 밴드 사운드는 꼭 갖고 가고 싶어요.
완전 있죠! 그 꿈은 항상 가지고 있을 거예요. 실현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고요. 콜드플레이가 내한했을 때 따로 만나서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서로 CD를 교환하고 저의 음악을 들려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의외로 생각이 비슷해서 '나도 할 수 있겠는데?'하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밴드 사운드에 대한 갈증과 희망은 계속 갖고 있을 거고, 공연에서도 또 다양하게 시도해볼 거예요.
크리스 마틴과 나눈 대화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었다면?
저의 고민을 크리스 마틴에게 이야기 했을 때, '듣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하지 말라'고 대답해줬어요. 듣는 이가 누구든 좋은 음악은 좋은 음악이고, 그 좋은 결과는 자신을 얼마나 믿느냐, 확신을 갖고 한 음악은 리스너를 가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많은 힘을 냈습니다.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흡족한 음악적 결과물이 있다면?
정규 앨범 중에서는
2017년은 한국 데뷔 정규 앨범 <고백하기 좋은 날>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중의 음악적 선택지를 넓힌 그 당찬 모습은 지금까지도 윤하를 기억하는 핵심 장면인데요.
정말 감사하죠. 그때 받은 사랑이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있으니까요. 평생 잊지 못할 자부심이자 자신감, 기억입니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정효범, 정연경
정리 : 김도헌, 정효범
사진 : 김도헌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jijiopop
2017.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