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소설의 한 돌연변이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잠재력”(문학평론가 류보선)을 지닌 신예라는 평가와 함께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던 소설가 배지영이 5년 만의 신작 장편 『안녕, 뜨겁게』로 돌아왔다. 작가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겪고 무미건조하게 살아오던 한 여자의 인생에 어느 날 UFO, 외계인 그리고 외계 존재와의 교신을 통해 실종된 사람을 찾아주는 한 남자가 끼어들게 되면서 벌어지는 유쾌하고 가슴 뭉클한 해프닝을 그렸다. 여전히 톡톡 튀며 시선을 끄는 문체와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유머와 함께, 독자들은 신작 『안녕, 뜨겁게』를 통하여 이전보다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숙하고 새로워진 배지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께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입니다. 2012년 장편소설『링컨타운카 베이비』출간 이후 5년 만인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5년 동안 게으르면서도 성실하게, 다양한 버전의 『안녕, 뜨겁게』를 썼습니다. 현재 출간된 이야기 말고 주인공 이름은 물론이고 성격, 인간관계, 사랑 등 전혀 다른 삶과 아픔, 추억을 가진 『안녕, 뜨겁게』의 소설들을요.
처음 이 소설을 쓰려고 했을 때, 어깨에 힘을 빼고 즐겁게 쓰자고 다짐하며 썼어요. 그리고 그렇게 쓰는 동안 인천으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서울 모래내로 돌아왔습니다. 소설을 쓰는 ‘장소’가 글의 결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도 이번 작품을 쓰면서 깨닫게 됐어요.
저의 데뷔작인 『오란씨』를 썼던 서울의 모래내에서 어쨌든 이번 『안녕, 뜨겁게』도 마무리한 셈입니다. 두 작품의 느낌이나 성격은 매우 다른데요, 아마도 그것은 제가 다시 모래내를 마주하는 느낌이 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훨씬 더 이 장소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다고나 할까요. 모래내는 저의 고향이자 제가 자란 곳이니까요.
『안녕, 뜨겁게』는 어떤 소설인가요?
이별에 관한 이야기지만 또 중점 두고 싶었던 건, 스물아홉 여성의 성장담이었어요. 저는 지금 이 세대를 사는 여성에게 ‘스물아홉’이란 나이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 세대의 스물아홉과 지금의 스물아홉은 너무 다릅니다. 대학을 졸업하여 가까스로 사회에 편입하고 나서도 막상 몸으로 부딪혀 배우고 뭔가를 성취하는 것을 기성세대는, 이 사회는 여러 방법으로 막죠. 그들은 이 여성들이 여전히 말 잘 듣고, 잘 배우는 학생으로 남기를 원하죠. 그러니 그들의 조언은 계속됩니다. 젊은이들의 성장을 막고 유보시키면서도 자기 계발서와 가짜 위로를 담은 힐링 책들은 넘쳐나고 있죠. 저의 스물아홉도 실은 그랬고 아마도 지금의 스물아홉은 더 힘들 거란 생각이 들어요.
우리의 삶이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기에, 저는 그저 기성세대의 같잖은 조언들과 성장을 막는 가짜 위로와 조언들을 과감히 무시하고 비로소 성장하는 스물아홉의 여성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써봐야겠다’라고 마음먹은 어떤 특정한 순간이 있을까요.
이십대 때 적은 한 메모에서 시작됐어요. 당시 제겐 꿈이 없었고, 무엇보다 열정이 없었어요.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 시절 일기처럼 적어뒀던 수첩 속 메모엔 그런 제 자신에 대해 자책이 주를 이루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중고 물품을 파는 ‘아름다운가게’에서 자신이 신고 있던 낡은 보세 구두를 버리고, 더 나아 보일 것도 없어 보이는 중고 구두를 신고 나가는 이십대 여성을 보게 됐어요. 그녀가 신고 나간 중고 구두는 이른바 대기업에서 만든, 한때는 고가였을 구두였죠. 그러나 유행은 조금 지난 것 같아 보였고, 딱히 발이 편안해 보이지도 않았어요. 그 순간 저는 그녀의 열아홉을 떠올렸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녀는 그 구두를 사러 친구와 함께 백화점 매장을 찾았겠죠. 이른바 금수저였던 친구는 어렵지 않게 샀지만, 그녀에겐 그 구두가 너무 고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요. 결국 디자인은 훨씬 예쁘지만 인조 가죽으로 만들어진, 오래 신으면 발이 너무 아픈, 저렴한 보세 구두를 마련했을 거예요.
그렇게 10년이 흐르게 되고, 성적도 비슷해서 서울에서 조금 벗어난 대학을 다녔지만 두 친구의 졸업 후 삶은 너무 달라져 있었을 겁니다. 백화점에서 구두를 살 수 있는지 없는지 정도의 다름은 아니었을 거예요. 친구는 대기업을 다니고 있었고, 여자는 그 대기업을 하청 받는 중소기업에도 못 들어가 이력서를 넣고 인턴을 전전하는 처지가 됩니다. 어쨌든 여자는 누군가가 몇 번 신지 않고 신발장에 보관만 해둔 것 같은, 새것은 아니지만 새것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어쨌든 지금도 백화점 매장에서 잘 나가는 브랜드인 중고 구두를 산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처지가 아주 딱하지는 아닐 거예요. 누군가의 동정을 받거나 위로를 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아직은, 아닌 것이죠.
환상처럼 떠올랐던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에게도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고, 이별의 순간이 있었을 거예요. 젊다는 이유만으로 노동 착취를 당하기도 하고 조언을 핑계로 갖은 모욕의 순간을 견뎌야 했던 시간도 있었을 겁니다. 실은 그녀의 아픈 발, 낡은 구두에서부터 이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물론 소설 속엔 이 에피소드가 없고요.
보세 구두를 신고도, 남이 신던 구두를 신고도, 결국은 너무 발이 불편해 집에 와서 침대 위에 누워, 창문에 뜨거워진 발을 대고 잠이 드는 스물아홉 제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사실 스물아홉의 제이에게 정말 필요한 구두는, 생각만 해도 불편한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아닙니다. 비싼 명품 구두도 아닌, 유행에 민감한 구두도 아니에요. 그저 부드럽고 좋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제 발에 꼭 맞고 딱히 예쁘지 않더라도 굽이 적당해서, 오래 걸어도 아프지 않는 그런 구두일 겁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스물아홉의 월간지 비정규직 기자 ‘윤제이’입니다. 이외에도 외계인 교신 전문가 ‘배명호’, 성인용품점 사장 ‘미스터 리’ 등 특색 있는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소설 속 인물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합니다.
각기 다른 이별을 대하는 방식을 지닌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별의 아픔이 너무 컸기에 좋았던 추억마저 깡그리 잊고 더 이상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려는 사람, 그것이 외계인이 됐든 섹스돌이 됐든 자신만의 방공호에 들어간 사람, 이별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처에도 굳건히 자신을 지키는 사람.
그렇다고 어떤 사람이 더 옳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빨리 방공호에서 나오라고, 혹은 상처를 극복하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러한 사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인물로 떠올리며 제이와 미스터 리, 설계자 그리고 제이의 주변 인물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때 저도 월간지를 내는 잡지사에 근무한 적이 있었어요. 상당히 정치색이 강한 잡지사기도 했죠. 하지만 그런 것을 제외하고는 ‘윤제이’란 인물을 만드는 데 있어서 상당 부분은 앞서도 이야기했던, ‘아름다운 가게’에서 구두를 샀던 여성을 떠올려 가며 썼고, 제 이십대 때 고민했던 부분들을 녹여가며 쓰려고 노력했어요.
UFO, 외계인을 소재로 사랑과 이별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은 그간에도 드물었고 앞으로도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렇듯 특이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엮어나간 이유가 있을까요?
UFO, 외계인을 소재로 사랑과 이별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 드물까요? 제가 많은 작품을 찾아 읽어보지는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 외계인은 좀비 못지않게 문학적으로도 많이 쓰이는 소재이기도 하고요(아마 그럴 거예요).
사실 작가의 입장에선, 어떠한 소재를 잡고 쓰느냐보다는 주제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 그리고 그 소재가 주제를 적절히 드러내는데 효율적이냐가 더 중요할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 소재들이 저의 주제를 적당히 드러내고 인물의 심리를 나타내기 위해 가장 효율적이며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선택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이 결국엔 많은 판타지적 요소들, 에스에프적 현상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로 표현하자니 그것이 유에프오나 외계인이 소재가 되어 형상화되었지만, 현실은 이보다 더 황당하지 않은가요?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누구도 구조하지 않은 채 세월호라는 거대한 선박이 그대로 가라앉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요. 가족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애타게 살려달라 애원하고 있을 때, 전 국민이 밤잠을 설치며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그 시간에 일국의 대통령이 성형 시술을 받고 있었다니. 차라리 대통령이 외계인이었다는 것이, 아니 실은 외계인에게 납치당해 당시 생체 실험 당하느라 옴짝달싹 못했다는 편이 더 현실적이지 않나요. 앞으로도 저는 이러한 지극히 ‘현실적인’, 그리하여 다분히 공감되는 소재들로 소설을 쓸 생각이에요.
〈작가의 말〉, 그리고 작품 전반에 걸쳐 두렵고 불안하기만 한 삶을 살아나가는 이십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님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무작정 괜찮다고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힘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요. 사실 전혀 괜찮지 않겠죠. 괜찮지 않은데 자꾸 괜찮다 하면 정말 화가 나는 거고요. 그리고 누군들 힘을 내기 싫을까요. 힘내고 싶어도 정말 힘이 없으니까 못 내는 거겠죠. 위로나 응원의 말조차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제 작품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고 하면 고맙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또 슬프기도 해요. 고작 소설 ‘따위에’ 위로나 공감이 됐다는 것 때문에요.
신작 『안녕, 뜨겁게』는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의 다음 작품,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다른 분위기로 쓰고 싶어서 어떤 면에선 작정하고 쓴 것이긴 하지만 실은 전작들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어둠을 그린 소설 속에서도 전 늘 빛을 그리고 싶었어요. 이 소설이 발간되었을 때 한 인터넷 서점에서 분야가 ‘로맨스’로 분류되어 있는 걸 봤는데 사실 좀 즐겁기도 했어요. 많은 분들이 전작에 비해 조금 더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라고 말씀해주시는데, 심정적으론 더 아프게 썼습니다.
다음 소설은 일종의 추리소설입니다. 오이디푸스처럼 비밀을 알아가면서 결국엔 파멸을 맞고 마는 한 사내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아프고도 즐겁게 작업하고 있으며 인간과 삶에 대한 탐사를 멈추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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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뜨겁게배지영 저 | 은행나무
작가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겪고 무미건조하게 살아오던 한 여자의 인생에 어느 날 UFO, 외계인 그리고 외계 존재와의 교신을 통해 실종된 사람을 찾아주는 한 남자가 끼어들게 되면서 벌어지는 유쾌하고 가슴 뭉클한 해프닝을 그렸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