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의 의미
파킨슨병으로 인한 떨림은 대개 가만히 있을 때 생기지만, 본태성 떨림은 글씨를 쓸 때나 숟가락을 사용할 때, 물컵을 들 때처럼 손으로 일을 할 때 생겨요. 걷는 데 문제가 생기지도 않구요. 생활하는 데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지만 파킨슨병처럼 심각한 질환은 아닙니다. (2017. 12. 13.)
글ㆍ사진 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201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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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수녀님, 어쩐 일이세요?”

 

김희정 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출입문 앞에 마르타 수녀가 서 있었다. 봉사활동을 나갈 때 만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수녀가 반딧불 의원을 직접 찾은 건 개원식 이후 처음이었다.

 

“내가 너무 늦은 시간에 찾아온 거 아닌가 몰라요.”

 

“무슨 말씀을요. 진료 끝나려면 세 시간은 더 있어야 하는 걸요. 마침 적당한 때 오셨어요. 이 시간엔 환자가 뜸하거든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저야 하루하루 똑같아서 심심한 일상이에요. 수녀님은요?”

 

“좋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내 나이가 되면 큰 변화가 없는 게 다행스러운 거죠. 하루하루 탈 없이 보내는 것만도 감사해야 할 일이에요.”


마르타 수녀는 습관처럼 성호를 그었다.


“이 나무, 그때 그 아이 맞지요? 많이 자랐네요.”

 

수녀가 가리킨 화분은 일 년 전 개원식 날 그녀가 보낸 것이었다. 그날 수녀는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행운목은 10년에 한 번쯤 꽃을 피우는데 꽃이 피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은 김희정 씨의 일과 중 하나였다. 그동안 나무의 키는 몇 뼘쯤 자랐고 파릇한 색깔도 선명해졌지만 꽃이 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가끔 분무기로 물을 뿌린 뒤 잎을 닦아주며 생각하곤 했다. 이 나무에 꽃이 피는 걸 볼 수 있을까.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표류하던 그녀를 기슭으로 인도해준 존재가 마르타 수녀였다. 술에 취해 십자가에 대고 욕이라도 하려고 들어갔던 성당에서 수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는 지금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오기 전만 해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건 닿지 못할 꿈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 그녀에겐 이곳에서 보낸 것보다 더 긴 시간 이후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가능했다. 평범한 삶을 지속할 수만 있다면 꽃이 피는 것쯤 보지 못해도 상관 없었다.

 

“수녀님 오셨어요?”

 

진료실 쪽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김희정 씨의 회상은 멈춰 섰다. 그러고 보면 그녀를 기슭으로 끌어올린 건 마르타 수녀만은 아니었다.

 

“이 선생님, 옛날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진료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의사와 마주앉은 수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릴 적 외갓집에서 살았어요. 한 3년 정도였나. 마당에 큰 감나무가 있는 집이었어요. 외할아버지가 날 참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당신에게 첫 손녀였으니까요. 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곤 하셨지요. 아마 동네 친구분들께 자랑하고 싶으셨나 봐요.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자전거 뒷자리에서 할아버지 허리춤을 꼭 붙잡고 집으로 돌아오며 보던 풍경이 생각나네요. 할아버지 콧노래 소리도요.”

 

수녀는 지그시 미소를 머금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어깨 너머로 한글을 배웠는데 간판의 글자를 곧잘 읽곤 했지요. 외할아버지께선 종종 눈이 어두워져 글자가 안 보인다고 제게 신문을 읽어달라 하셨어요. 사실은 또박또박 신문을 읽는 손녀딸 목소리를 듣고 싶으셨던 거지요. 아버지 얼굴도 몰랐던 내게 외할아버지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어요.”

 

의사는 수녀의 이야기에 리듬을 맞추듯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천천히 책상을 두드렸다.

 

“독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어머니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난 고등학생이었지요. 공항에 도착했을 때 외삼촌이 마중을 나오셨어요. 외할아버지는 며칠 뒤 외갓집에 내려가서야 뵐 수 있었는데 예전에 내가 알던 분이 아니었어요. 어렸을 적 기억엔 항상 환하게 웃어 주셨는데 10년 만에 날 보고도 무표정한 얼굴로 그냥 왔냐고, 짧게 말씀하실 뿐이었지요.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그 표정이 무섭기도 했어요. 그때 왜 와락 겁이 났을까. 십 년 만에 외할아버지를 만난 자리에서 난 제대로 안아 드리지도 못했지요.”

 

수녀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그날 나에게 화가 나셨던 게 아니었다는 걸, 그리고 할아버지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었어요. 마당 감나무 밑에서 어머니 손을 잡고 구부정한 자세로 아기처럼 종종걸음을 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요. 거실의 안락의자에서 하루 내내 앉아 계시던 것도. 팔걸이에 올린 손이 덜덜 떨렸어요. 손떨림이 심해져서 나중엔 혼자 식사하기도 어려워지셨는데, 할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온 날은 어머니가 많이 우셨어요. 돌아가시기 전 몇 년은 요양원에 계셨지요.”

 

수녀는 의사를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손떨림이 심해졌어요. 손이 떨리기 시작한 건 꽤 오래되었는데 요즘 부쩍 더하네요. 아침마다 성경을 필사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해왔는데 이제 그것도 힘이 들어요. 올 가을부터 허리가 뻐근하고 왼쪽 다리가 저려서 걸음걸이가 불편했는데, 며칠 전 복도를 지나다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어요. 구부정한 모습이 기억 속의 외할아버지 모습을 닮았더군요. 그러고 보면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 연세가 지금 내 나이쯤 되었겠네요. 이 선생님, 난 내가 외할아버지처럼 파킨슨병에 걸린 게 아닌가 걱정이 돼요.”

 

의사는 몇 가지 신경학적 진찰을 한 뒤 책상 위의 종이에 간단한 문장을 쓰고 아래에 나선 모양을 그리도록 했다. 볼펜을 잡은 마르타 수녀의 손과 함께 종이 위의 글자와 나선도 물결처럼 흔들렸다.

 

“수녀님께선 파킨슨병에 걸린 게 아니에요.”


“그럼 왜 손이 떨리는 걸까요.”

 

“본태성 떨림이라고 부르는 질환입니다. 왜 생기는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 유전적인 성향이 있다고 해요. 부모님도 비슷한 증상이 있었나요?”


“어머니는 없으셨지만 아버지는 확실치 않아요.”

 

“파킨슨병으로 인한 떨림은 대개 가만히 있을 때 생기지만, 본태성 떨림은 글씨를 쓸 때나 숟가락을 사용할 때, 물컵을 들 때처럼 손으로 일을 할 때 생겨요. 걷는 데 문제가 생기지도 않구요. 생활하는 데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지만 파킨슨병처럼 심각한 질환은 아닙니다.”


“아, 정말 다행이에요.”

 

마르타 수녀는 한숨을 내쉬고 성호를 그으며 말을 이었다.

 

“또 하나 걱정은… 술을 마시면 손떨림이 멎더라구요. 그래서 요즘 술을 자주 마시게 되네요.”


“본태성 떨림은 술을 마시면 좋아지는 특징이 있어요. 그렇다고 술을 드시라는 이야긴 아니구요.”

 

의사는 말을 끊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수녀님도 아시겠지만 손떨림은 알코올중독 환자에게도 흔한 증세죠. 저도 손이 떨리는 걸 사람들이 알아챌까봐 떨림이 느껴질 때마다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두드리던 게 버릇이 되어버렸네요.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신 지 오래지만 지금도 긴장을 하거나 피곤하면 떨리곤 합니다.”


“난 전혀 몰랐어요.”


“같은 손떨림인데 수녀님은 술을 마시면 낫고 저는 술을 마시면 나빠지는군요.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푸념 섞인 말투에 마르타 수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술보다 더 효과적인 약을 처방해 드릴께요.”

 

수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이 선생님이 밤에 여는 병원을 열겠다고 했을 때는 세상과 관계를 끊고 싶어하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스스로 유배지를 택하는 것 같기도 했구요. 그런데 그동안 나름의 방식으로 조금씩 세상과 다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선생님은 진료실에 있을 때 가장 좋아 보여요.”

 

“그런 거창한 생각까지 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밥벌이를 해야 하고 밤에 일하는 게 편했을 뿐입니다.”

 

또 저런 무심한 말투. 그나저나 밥 잘 챙겨 먹어요. 혼자 산다고 매번 냉동식품 같은 걸로 대충 때우지 말고.”

 

진료실을 나오는 마르타 수녀에게 김희정 씨가 처방전과 함께 작은 갈색 종이 가방을 건넸다.

 

“지난달 강릉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수녀님 생각이 나서 샀어요. 커피 좋아하시잖아요. 다음에 드려야지 했는데 마침 오늘 뵙게 되네요.”


“고마워요, 희정 씨. 난 매번 받기만 하네요.”


“향기가 좋다고 너무 많이 드시진 마세요, 수녀님. 카페인이 든 음료를 많이 드시면 손떨림이 심해질 수 있거든요.”

 

뒤따라 나온 의사의 냉랭한 말투에 김희정 씨는 마르타 수녀를 바라보고 어깨를 으쓱하며 혀를 쑥 내밀었다.

 

“어머, 꽃망울이 맺혔네. 곧 꽃이 필 것 같아요.”

 

행운목 잎을 찬찬히 바라보던 수녀가 탄성을 질렀다. 그녀의 손짓에 김희정 씨도 신기한 듯 꽃망울을 바라보았다.

 

“내년엔 좋은 일이 있을 건가 봐요.”


“희정 씨, 혹시 국수 얻어먹을 일 생기는 거 아니에요?”


“아유, 수녀님도. 그럴만한 일이 전혀 없는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네요.”

 

두 눈이 동그래진 김희정 씨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인 마르타 수녀의 웃음소리가 대기실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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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태성 떨림(Essential Tremor)은 가장 흔한 떨림증 중 하나다. 흥분하거나 불안할 때 몸을 떠는 것은 누구나 겪는 현상이지만 본태성 떨림의 경우엔 이런 상황과 무관하게 떨림이 발생한다.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가족 구성원 내에 동일한 증상이 있는 경우가 많다.

 

손떨림이 생기면 대개 중풍이나 파킨슨병을 걱정해 병원을 찾는다. 병력에 대한 상담과 신경학적 진찰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이들 질환과 본태성 떨림을 구별할 수 있다. 본태성 떨림은 글씨를 쓸 때, 숟가락을 사용할 때, 컵으로 물을 마실 때와 같이 손을 사용한 작업을 할 때 주로 나타난다. 반면 파킨슨병은 가만히 있을 때 본인도 모르게 떨림 증상이 나타난다. 또한 본태성 떨림은 떨림 외에 다른 증상이 드물지만 중풍이나 파킨슨병으로 인한 떨림은 보행 장애나 동작 이상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파킨슨병의 경우 다리를 끌면서 걷거나 몸의 동작이 느려지는 등의 증상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본태성 떨림이나 파킨슨병 이외에 갑상선 항진증 등의 질환도 떨림을 유발할 수 있다. 이 경우 체중 감소나 더위를 잘 못 참는 등의 전신 증상이 함께 있을 수 있으며 갑상선 기능에 대한 혈액 검사로 쉽게 진단할 수 있다. 천식 환자에게 쓰는 기관지 확장제나 기침약도 손떨림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와 같은 약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약으로 인한 증상이 아닌가 의심해보아야 한다.

 

본태성 떨림은 손이나 고개가 떨리는 증상 이외에 다른 이상은 나타나지 않으며 비교적 심각하지 않은 병이다. 그러므로 증상이 심하지 않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꼭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 약물 치료 효과가 좋은 편이므로 일상생활과 대인 관계에 지장이 생길 정도의 증상이 있다면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단기간 치료한다고 완치되지는 않으며 대개 약을 평생 먹어야 하지만 부작용이 심한 약은 아니므로 적절히 복용하면 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다. 술을 마신 뒤에 떨림이 일시적으로 좋아질 수 있지만 술로 치료하려는 것은 금물이다. 알코올중독이 되면 떨림이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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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