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의 도발은 새로웠고 손대현과의 작업은 허망하고도 당돌했다. 이센스의
2018년이 밝았다. 근황이 어떻게 되나.
요즘 운동만 하는 것 같다. 피쳐링 위주로 음악 작업도 틈틈이 한다.
올해는 XXX의 새 앨범
이미 앨범은 작년에 다 완성했고, 올해 중순 정도 발매할 예정이다. 뮤직비디오 촬영 정도가 남은 정도다. 사실
만든지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웃음) 내가 막 '싸지르고', 진수형(FRNK)이 정리한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랩 했다는 건 아니다. 특정한 스토리 없이 그때 그때 느끼는 감정들을 일기처럼 쓴 것이다. 그걸 음악으로 엮어내는 일은 진수형이 다 했고.
프랭크와의 작업 과정은 어떤가?
내용상으로 터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나도 편곡 부분은 안 건드린다.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결과물에 맞춰가는 식으로 작업한다. 이를테면 메시지가 좀 다른 의도로 나오면 진수형이 그에 따라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진수형 비트가 어렵다고 생각되면 내가 그 느낌에 맞춰서 새로운 가사를 쓰는 식이다. 진행 방향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만 작업에 들어가면 중국에서 아이폰 만드는 사람들처럼 착착착. 이렇게 만든다.
XXX의 스타일을 생각하던 이들에겐
원래는
그렇다면
힙합LE와의 인터뷰에서 '짜치지 않는 사랑 노래'를 하고 싶었단 얘기가 있는데.
악행으로 이어지는 관습 같은 거랄까. 음악계를 둘로 나눠서 잘 나가는 매체들에서 다루는 음악과 소위 말하는 '소수가 좋아하지만 무브먼트 있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나눈다고 치면, 그 언더에 있는 사람들이 좀 뻔한 대중적인 사랑 노래를 '짜친다'라 표현했다. 뭐랄까...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까지 가져다가 다 먹여주는 느낌이라 보면 되겠다. 찰리 카우프먼의 영화 <시네도키, 뉴욕>같은 느낌이 '짜치지 않는다'와 유사하다.
'사랑 같은 건'이 대표적인 곡일까. '나중에 해, 뭐 그리 급해'라는 건조한 구절이 인상적이다.
안 짜치는 사랑 앨범을 만든다고 했을 때는 진짜 드레이크(Drake)의
'Dance'도 그런 '짜치지 않는 사랑 노래'랄까. 조금 튀는 느낌이 있지 않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노래도 좀 짜치는 것 같다. 사실 'Dance'는 제작년 말에 만든 노래고 나머지 곡들은 작년 말에 만든 노래라 결이 좀 다르다.
이제 사랑 얘기는 그만하자 (웃음). 앨범을 듣고 나서 '심야가 XXX때 못한 말이 정말 많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힙합 앨범' 대신 '대중음악'으로 봐달라는 말도 그런 의도인가.
힙합 음악보다 대중음악이 돈을 더 많이 벌지 않나(웃음). 단순한 뜻이다.
레드 벨벳의 'Dumb dumb'과 'Ice cream cake'로 살짝 끼기도 하지 않았나(웃음).
가이드 곡이 먼저 오고 그 바탕으로 가사를 입힐 때도 있고 랩 메이킹을 할 때도 있고... 기획사와의 협업은 회사에서 전담하는 일이라 잘 모른다.
다시 앨범으로. 디 샌더스(손대현)가 TDE(Top Dog Entertainment) 소속이라 그런지 비트 스타일이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디샌더스가 찍은 비트를 들어보면 무조건 켄드릭이 랩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업하면서 신경 쓴 부분이긴 한데, LA 프로듀서에게 멤피스 스타일, 더티 사우스를 찍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딱히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Moonshine'과 'Money flows'에서는 결국 잘 팔리는 건 돈, 어차피 아무도 듣지 않을 음반이라는 등 자조적인 메시지가 강하다.
XXX 활동으로 해외 매체의 주목을 받았을 때는 어땠나.
진짜 신기했다.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접하면 되게 신나 하고 되게 멍청해진다. 분석을 못하고 우와우와 하다가 빨리 질리는 편이랄까.
'Manual'과 같은 트랙들에서 힙합 씬 전체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도 견지된다.
이제 스물넷밖에 안돼서 제대로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중고등학교 때부터 7년 정도 지켜보니까 우리나라는 문화의 씨앗 자체를 심을 수 없는 땅 같다. 좋은 땅에 뭔가를 심으면 뭐든 잘 자라겠지만, 한국같이 아무 양분 없는 땅에는 건물을 올리기가 너무 좋다. 환경을 파괴한다는 느낌도 잘 안 들지 않나. 한국에서 문화 운운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계속 움직이고 바쁘고 쓸모 없으면 버려지는 문화랄까... 떨어지기 싫어서 뭐라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앨범을 듣다 보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래퍼들 상당수를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가장 큰 건 취향 차이다. 예를 들면 나는 제이지(Jay-Z)를 영웅으로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영웅으로 여기는 래퍼가 다른 거다. 이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내고자 하는 사운드가 내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다. 물론 거기도 개인이 노력하고 능력이 들어간 결과물이지만...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항상 가난한 사람이 화나 있지 않나. 내 상황을 따지면 가난한 상태인 거다.
<쇼 미 더 머니>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나는 거기 나간 래퍼들이 가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짜'였었다'라고 생각하지. 힙합을 한 게 아니라 유행에 맞춰서 흘러가는 거다. 사실 내 잘못이 크다. 5~6년 전 소위 '진짜'라 불리던 음악을 보고 저게 진짜인가보다 하면서 가사를 다 믿고 하다가 갑자기 변하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났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던 거다.
<쇼 미 더 머니> 얘기가 나왔는데, 심야의 개인적인 생각은 어떤가.
일단 힙합이 유행인 게 아니라 <쇼 미 더 머니>가 유행인 건 확실하고, 방영을 안 하니까 힙합의 영향력이 작아지는 것도 확실하다. 그럼 <쇼 미 더 머니>가 나쁜 건가? 나는 그 프로그램을 욕하던 사람들이 거기 나가서 성공을 하고 그 후광을 얻어서 '나는 진짜 음악을 한다’라고 말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뒤가 다른 사람이나 말을 잘 바꾸는 사람을 싫어한다. 특히 힙합은 가사에서 쓴 대로 행동하지 않거나 어기거나 하면 욕을 먹는 문화인데,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 비판을 했다면 그걸 지키는 게 소위 말하는 '간지' 아닐까.
사실 <쇼 미 더 머니>를 하고 나서 제대로 된 앨범을 낸 래퍼도 없고 그 전의 커리어보다 뛰어난 앨범을 낸 사람도 별로 없다. 그 사람들은 예전에 그냥 그런 가사가 유행을 했기 때문에 가사를 쓰고 랩을 한 거다. 그리고 유명해진 다음엔 한국 힙합 씬 전체보다는 자기 앞가림만 하려고 하니 나나 내 회사 같은 사람들만 문화를 계속 유지해가는 거다. 그래서 그들이 가짜였었더라고 말한 거다.
맘에 드는 한국 힙합 앨범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거나 인정하는 아티스트가 있을 텐데.
자이언티의
센스 형이 저를 대한민국 1등이라고 하는 걸 거품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무래도... 센스 형을 안 좋아하는 게 아닐까?(웃음) 거품이라는 것도 사실 잘 모르겠고... 만약에 거품이 꼈다고 하면 다른 래퍼들처럼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많아야 하지 않을까. 적당히 알바 하는 대학생 정도만 버는데 그것마저 거품이면 좀 문제다.
심야가 말하는 이센스라는 사람은 어떤가.
진짜 생각이 엄청 많고, 염세적이거나 짜증 많이 내는 거 보면 나랑 비슷한 점도 많다.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의리 있는 사람이다.
'Bitch'단어를 많이 써서 장인이라는 별명이 있다.
나는 그 단어가 발음이 예뻐서 쓰는데 요즘에는 자제하고 있다. 다른 한국 래퍼들에 비해 발음이 좋다고 생각해서 많이 쓴 것도 있다. 그런데 해외에서 공연을 하는데 좀 부끄러웠다. 동양에서 온 어떤 애가 '개년 개년'하는데 얼마나 웃겼겠나.
단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직도 가사 한영혼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 있다.
내 가사에서 영어를 다 뺀다면 한국 느낌이 안 나는 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싶다. 영어를 써야 내가 원하는 음악의 느낌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딜레마는 느끼고 있다. 가사를 중요하게 여기고 한국에서 음악을 파는 입장이면 당연히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하는데... 어렵다.
릴 우지 버트, 포스트 말론 등 멈블 랩이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도 멈블이 유행할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변화돼서 들어오는 것 같긴 한데 멈블 랩을 제대로 하려면 한영혼용을 꼭 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한국에서 멈블이 유행한다면 그걸 한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진짜 인정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섞어서 하는 거라면 그걸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긴 하다.
정확한 딜리버리가 강점인 심야는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난 죽어도 안 듣는다. 멈블 특유의 리듬감을 좋은 랩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요즘 걸 들을 필요가...(웃음)
XXX, 디 샌더스와의 프로젝트 이후 심야가 추구하는 음악 방향은 무엇일까.
일단 생각이 읽히는 음악을 할 것 같다. 일단은 음악 하는 것 자체에 흥미가 좀 떨어져서 그걸 다시 불러일으키는 게 필요할 듯싶다.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김심야가 꼽는 인생의 3대 앨범?
현재로는 클립스(Clipse)의
인터뷰 : 이택용, 김도헌
사진 : 김도헌
정리 : 김도헌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