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 경험을 제대로 다룬 소설
이 소설을 통해 피해자의 경험을 제대로 다루는 소설을 쓰려 했다. 성폭행으로 상처를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8.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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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선정 ‘2017년 독자가 뽑은 최고의 소설’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성폭행 당한 사실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글로 쓰는 게 부끄럽지 않으세요?” 타이완계 미국인 작가 ‘위니 리’의 답은 아래와 같다. “애초에 제 잘못이 아닌 일을 제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죠? 성폭행은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부끄러워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제 신체를 함부로 다루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가해자일 것입니다. 같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은 가햬자입니다.”

 

2017년 6월 영국에서 출간된 『다크 챕터』 는 위니 리의 첫 자전소설이다. 작가이자 영 화제작자로 영국, 싱가포르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위니 리는 200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 힐즈를 하이킹하던 중 15세 소년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끔찍한 사건을 겪은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은 위니 리에게 “수치스럽지 않냐?”고 물었지만, 그는 “성폭행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모든 것은 가해자의 잘못, 이 사회의 잘못”이라고 지적했고, 성폭행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단체 ‘클리어 라인스 페스티벌’(The Clear Lines Festival)을 설립,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페미니즘, 성폭력을 주제로 한 토론과 예술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위니 리는 2013년부터 약 5년간 『다크 챕터』 를 썼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점을 교차해 스토리에 흡인력을 높였고, 성폭행의 순간뿐 아니라 성폭행을 당한 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소설을 통해 범죄의 뿌리를 이해하고자 한 위니 리는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사회적 요인을 인식하지 못하면 미래에도 이런 범죄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 소설은 <가디언>이 선정한 ‘2017년 독자가 뽑은 최고의 소설’의 영예를 얻으며, 한국을 비롯한 5개국에서 번역되었으며, 체크, 독일 등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지난 3월 26일, 위니 리의 방한을 기념해 서울 서소문로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다크 챕터』 의 번역자 송섬별과 자리한 위니 리는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권력을 가진 가해자들이 고소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 피해자, 생존자, 페미니스트들과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다크 챕터』 는 내 이야기이지만 제 이야기를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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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트라우마, 극복 가능하다

 

성폭행 사건을 ‘소설’로 다룬 까닭은 무엇인가?

 

6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글을 쓰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됐다. 2008년 나는 29세였다. 나는 성폭행을 당한 후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성폭행 피해를 입은 후 일할 수 없었고, 성폭행 트라우마에 빠져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다. 나는 부양가족이 없기 때문에 내 회복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었지만, 많은 피해자는 그렇지 못하다. 두려움에 고통 받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공정하게 평가해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가해자를 비중 있게 다룬 이유는?


왜 이런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가해자의 성장 배경, 사회적 요인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성폭력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가해자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겨나고 더 많은 사람의 삶이 범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 사건의 가해자는 아일랜드 유랑민이었다. 그래서 실제 아일랜드 유랑민들을 만나서 그들의 특성을 조사했고 청소년 심리학자를 만나, 어떤 사람이 여성을 혐오하게 되는지, 성폭행을 저지르는지를 살펴봤다.

 

실제 가해자는 4년 만에 출소했다고.


법정에서는 8년형을 선고받았지만 4년 만에 출소했다.

 

하버드대학에서 민속학과 신화학을 전공하고, 런던골드스미스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공부했다. 이러한 이력이 성폭행을 고발하는데 영향을 미쳤는지.


사람들이 내 말을 잘 믿어준 게 사실이다. 여러 나라를 살펴보면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성폭행을 당하면 이슈가 되지 않는다.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행스러운 건 지금 세상에서는 SNS를 통한 고발, 공유, 연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말할 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중요하다.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 미디어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성폭력에 대한 공개적 담론과 소셜미디어의 역할 및 영향을 연구 중이다. 클리어 라인스 페스티벌’(The Clear Lines Festival) 공동설립자이자 아트 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5년, 2017년에 영국에서 행사를 개최해서 큰 호응을 받았다.

 

한국의 ‘미투’ 열풍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피해자들에게 “왜 과거의 일은 지금 이야기하냐?”는 말을 하지 않길 바란다. 당시에는 그것이 성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의 반응을 예민하게 살피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년이 지나고 깨닫는 경우가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길 바란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사건 이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누구도 내가 겪은 일을 모른다는 어마어마한 외로움이었다. 수많은 피해자가 우리 현실에 존재한다. 우리가 함께 성폭력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면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다. 성폭행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모든 건 가해자의 잘못, 이 사회의 잘못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믿지 않거나 탓해도 당신은 진실을 안다. 금방 회복하긴 어렵지만 훗날 언젠가 당신의 삶은 나아진다. 나도 해냈고 다른 피해자들도 해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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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챕터 #위니 리 #성폭행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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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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