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과 새 학기의 계절, 봄. 그중에서도 3월은 새로운 교실에서 새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마냥 설레고 즐거워 할 수는 없다. 고등학생이라면 개학하고 며칠 뒤에 보는 3월 모의고사, 낯선 교실과 선생님, 성적에 대한 고민, 부모님의 시선과 학원. 여기에 교우관계까지 더해진 갈 곳 잃은 학생들의 '멘탈'은 누가 챙겨줄 수 있을까. 이런 상황 속에서 힘이 되는 건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다. 모든 곡을 다룰 수 없어 아쉽지만, 10대에게 위로를 주었던 잊을 수 없는 가요 9곡을 선정했다.
안치환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90)
사회를 노래한 안치환의 첫 앨범에 담긴 곡이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도입부, 뒤이어 나오는 경쾌한 합창과 비장한 보컬은 마치 행복의 본질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도 같다. 그의 또 다른 대표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는 요즘 세대도 어디선가 들어본 곡일 테다.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그의 많은 노래 가운데서도 이 곡은 특별하다. 단순 유행어처럼 전해 내려오는 노래도 아니고, 공부하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노래도 아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꿈이 들어있지 않은 짐을 지고 살아가는 학생들의 입장에 서준 고마운 노래다.
서태지와 아이들 - '교실 이데아' (1994)
백마스킹으로 국내에 이토록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을까. 당시 '교실 이데아'를 거꾸로 재생해 들으면 '피가 모자라'라는 말이 들린다는 논란이 있었다. 말 그대로 소문에 불과했기에 악마의 메시지 소동은 수그러들었다. 학생들에게 공포와 호기심을 불러왔던 노래. 그렇지만 이 곡은 단순한 자극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입시 경쟁에 방치된 학생들의 응어리를 풀어준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주입식 교육에 머물러 있는 교육 제도를 향한 저항의 외침. 잊을 수 없는 이들의 메시지는 한국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H.O.T. -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 (1996)
앨범 제목인 '우리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증오한다'에 맞는 타이틀 곡 (그러나 후속곡은 귀여운 'Candy'였다) '전사의 후예'는 학교 폭력을 묵직하게 그려낸 노래다. 이들을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SMP(SM Music Performance)'와 함께 연상되는 작곡가 유영진이다. “유영진이 다시 사회에 분노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감하고, 파격적인 노랫말을 써낸 그였다. 학교 폭력을 반대하는 멤버들의 날카로운 보컬 또한 당시 10대들의 기억과 마음속에 강렬히 새겨졌다.
젝스키스 - '학원별곡 (學園別曲)' (1997)
'교실 이데아'의 두 번째 부활을 꿈꾼 여섯 개의 수정. '학원별곡'은 단어 그대로 '학원에 대한 노래'라는 뜻이며, 한국의 교육 제도를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학교 성적만 좋으면 다 된다는 사회상을 시원하게 풀어낸 곡이다. 더불어 아이돌 데뷔곡에 타령을 포함해 독특하다는 인상을 줬다. 마치 응원가를 듣고 있는 듯한 '학원별곡'은 거리의 시인들로 활동했던 박기영(Ricky P)과 젝스키스의 음반 작업에 다수 참여한 이윤상이 쓴 곡이다. 단순하고 직설적인 노랫말은 지금 들어도 공감되는, 변함없는 현실을 파고드는 힘을 지녔다.
언타이틀 - '학교' (1999)
최근 KBS2에서 방영한 드라마 < 학교 2017 >은 7번째로 만들어진 학교 시리즈이다. 꾸준히 제작된 덕에 많은 스타를 배출했으나 원조는 배두나, 장혁, 최강희를 비롯한 배우들이 등장했던 1999년의 < 학교 >다. 첫 번째 시리즈 OST였던 '학교'는 다소 얌전한 축에 속하는 노래다. 다른 학교 비판 노래들이 적나라하게 문제를 파헤쳐 놓았다면, 이 곡은 '학교가 너를 힘들게 할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자'는 희망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경쾌한 댄스 비트와 어우러지는 유건형, 서정환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아닌 더 나아질 미래가 담겨 있다.
김진표 - '학교에서 배운 것' (2004)
권상우의 “옥상으로 따라와”로 유명한 영화 < 말죽거리 잔혹사 >의 OST다. 서정적인 선율에 김진표 특유의 읊조리듯 내뱉는 랩으로 기억되는 곡이다. 김진표는 패닉 때 발표한 '벌레'에서도 권위와 선생을 향해 신랄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러한 그의 사실적인 태도는 영화에서 드러난 '폭력은 권력이다'를 적나라하게 가사로 표현해낼 수 있는 비결이 됐다. 힘이 센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지배와 피지배가 공존하는 학교를 담담하게 풀어낸 곡은 영화 전체를 압축하며 여운을 남겼다.
이승기 - '음악시간' (2004)
'내 여자라니까'로 연하남 열풍을 일으켰던 풋풋한 고등학생 이승기의 데뷔 앨범에는 이런 반항적인 노래도 있다. 싸이가 작사하고 언타이틀의 유건형이 작곡한 '음악시간'은 당시 상계고등학교 전교 회장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완성된 곡이다. 학생회장에다 우수한 성적을 보유했던 그가 돌연 가수의 길을 선언하고 '학교 교육'에 반기를 든 셈이다. 이때의 날카로운 보컬은 시간이 흘러 완숙해졌지만, 그 당시 소년의 목소리로 부른 덕에 호소력 짙은 노래가 됐다.
일리닛 - '학교에서 뭘 배워' (2010)
2010년에 10대였던 이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뭘 배우냐'며 교육 제도를 전면으로 무시한 래퍼는 많은 학생이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써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이런 음악을 하게 됐나'라는 궁금증이 학생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오갔다. 알고 보니 그는 교수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한국의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학창시절에 방황의 시기가 있었음을 밝혔다. 학교 문제를 가차 없이 비판하는 이 노래 덕에 용기를 얻은 학생들은 학교를 향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 'N.O' (2013)
'No more dream'으로 꿈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경종을 울렸다면, 이 곡에서는 1990년에 안치환이 노래한 '학생의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되짚는다. 꾸준히 또래의 생각을 대변하고 편견을 막아내는 음악을 발표한 이들. '방탄소년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뮤직비디오에서도 획일화된 교육 환경 속 멤버들의 투쟁이 펼쳐진다. 많은 뮤지션이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이라는 확성기로 외쳐온 학교 문제는 이 소년들을 통해 다시 전달되고 있다. 진짜 문제는 '학교'가 아니라, 그런 학교를 만든 '어른들'에게 있다는 학생들의 목소리와 함께.
정효범(wjdgyqja@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