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책이 잘 도착했습니다. 상자에 붙어 있는 도토리 스티커를 보고 흐뭇해서 웃었네요. 꼼꼼하게 포장된 책을 열어 보면서 온라인서점에서 주문하는 것과는 다른 온기가 느껴졌어요. 바쁘신 와중에 배송을 위해 들인 정성에 감사합니다. 새 책과 함께 즐거운 주말이 될 것 같아요.” 손님의 문자를 받고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진심은 반드시 전해진다는 것을. 크고 작은 확신이 쌓여 가는 서점 주인의 나날.
서점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대구에 사는 손님 한 분이 사적인서점에서 진행하는 북토크에 참석하셨다. 행사가 끝난 뒤 손님은 서점 SNS에 소개된 책을 찾았는데, 마침 재고가 떨어져 주문해야 하는 책이었다. 사정을 말씀드리자 손님은 결제를 미리하고 택배로 배송받는 방법도 가능하냐고 물어보셨다. 택배 주문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가능하긴 한데, 정가로 구입하시는데 택배비도 따로 내셔야 해서… 배송도 최소 2-3일은 걸려요. 그 책은 그냥 온라인서점에서 주문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서점 주인이 책을 안 팔겠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손님 입장에서 헤아려 보면 똑같은 책을 사는데 사오천 원 가량의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한다. 온라인서점의 10% 할인과 배송비 무료 혜택 때문이다. 도서 정가에 택배비까지 받으며 책을 팔아도 될지 고민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금전적인 부담을 결정하는건 손님이 판단할 몫 아닌가? 사적인서점에서 책을 사고 싶다는 손님을 왜 막아야 하지? 나는 책을 팔아서 먹고사는 서점 주인이잖아?’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점 주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손님의 입장 사이에서 마음을 저울질했다.
그날 이후 택배 주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적인서점은 책처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택배 회사와 계약이 되어 있고, 포장 상자 같은 비품도 준비되어 있어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적인서점에서 책을 사야만 받을 수 있는 책싸개 서비스도 있고, 일정 권수 이상 책을 구입하면 책처방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마일리지 제도도 있으니, 이 정도 혜택이면 온라인서점과 겨뤄 볼 만하다 싶었다. 문제는 배송비였다. 고민 끝에 5만 원 이상 주문하면 배송비 무료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책을 5만 원어치 판매하면 서점에 남는 순수익은 1만 3천 원 정도. 3천 원 가량의 배송비를 서점에서 부담하는 건 수익의 일부를 포기하는 셈이지만 사적인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분께 작은 이득을 드리고 싶었다.
“아마존과 경쟁할 수는 없어요." (중략) "우리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한다면 매번 지겠죠. 가격이나 배송으로는 경쟁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선택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워드는 서점에 갖추어진 책의 종류로(물량보다는 품질), 개인에 맞춰진 서비스로, 기발한 이벤트로(특히 학교와 연계한 도서 축제) 승부한다. 그중 가장 주요한 승부처는 바로 (고객들의) 마음이다. 이는 워드에서 판매하는 책을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누구든 저를 공익 단체로 생각하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누구든 우리 매장에서 사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사람들이 우리 매장에서 사고 싶어 하기를 바랍니다.” - 『아날로그의 반격』 261쪽
사적인서점의 가장 주요한 승부처 역시 손님들의 마음이었다. 가격 할인이 되지 않아도, 주문 과정이 불편하고 배송이 느려도 사적인서점에서 책을 사고 싶은 강력한 이유. 그건 사적인서점만의 책을 전하는 방식에 있다고 믿었다. ‘어떻게 하면 이 책의 매력을 사적인서점답게 전달할 수 있을까’ 매일 치열하게 고민했다. 책 한 권을 소개하더라도 정성 들여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2017년 봄부터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사적인 라이브’를 시작했다. 예약제 운영이라는 문턱 때문에 서점에 오기 힘든 이들에게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듯 친밀한 방식으로 내가 읽은 책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어떤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지 등을 이야기하고, 책을 읽으며 힘주어 밑줄 그은 부분을 낭독하기도 했다. 방송을 보다가 손님이 책에 대해 궁금한 점을 댓글로 달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답변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온라인상이지만 손님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한 시간 동안 서너 권의 책을 소개하고 방송이 끝날 무렵에는 꼭 사적인서점에서 책을 구입해달라는 얘기를 했다.
“제가 라이브 방송을 통해 책을 소개하는 건 이 책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물론 제 직업은 서점 주인이고 책을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적인서점에서 책을 사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빼놓을 수 없고요. 오늘 방송을 통해 읽어보고 싶은 책이 생겼다면 그 책은 사적인서점에서 구입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속 가능한 서점 운영에 큰 힘이 되니까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여서 괜히 손님들께 부담을 드리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됐지만 이 책들을 전하기 위해 들인 나의 시간과 품을 존중받고 싶었다. 사적인서점의 엄선된 큐레이션과 정성이 담긴 소개 방식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사적인서점으로 인해 책이 사고 싶어졌다면, 도서 구입으로 그 수고를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의 돈을 써서 최대 이익을 얻는 ‘합리적 소비’가 아닌, 자신의 가치관을 넓히거나 공감하는 것에 돈을 쓰는 ‘투표적 소비’. 좋았으니까, 응원하니까, 돈으로 1표 행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셔서 자꾸 책을 사고 싶습니다.”
“책값을 계산해주는 가게 주인이 아닌 책을 즐겨 읽고 권해주는 책방 주인은 난생 처음이에요.”
“원래 책에 크게 흥미가 없었는데 요즘 아침 업무 전에 수혈하듯이 책 읽으려고 일찍 출근하고 있어요. 사적인서점에서 소개해주는 책이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좋은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지난달에는 약 200권의 책을 택배 주문으로 팔았다. 처음 택배 주문을 받았던 날을 떠올려보면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온라인서점에서 주문하면 당일 배송, 할인과 적립, 사은품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적인서점에서 사고 싶어요”라는 말과 함께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불편을 감수하는 손님이 꾸준히 늘고 있다. 똑같은 책도 다르게 사는 재미를 알아버렸다고, 이 번거로움이 참 좋다고 말씀해주시는 손님, 사적인서점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 되었으니 나도 이 서점에 바람직한 손님이 되겠다고 응원해주시는 손님. 이렇게나 든든한 손님들이 있어서 매일매일 서점을 꾸려갈 힘을 얻는다.
“이런 공간에서 이익을 내야 합니다.” 도블린은 자주 서점에 와서 지갑으로 투표를 하여(즉 돈을 써서-옮긴이) 원하는 서점, 이웃, 도시를 만들어달라고 호소력 있게 말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찾아오는 한, (언제까지나) 여기에 있을 겁니다.” - 『아날로그의 반격』 273쪽
정지혜(사적인서점 대표)
한 사람을 위한 큐레이션 책방 '사적인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의 만남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cococherry
2018.04.06
jijiopop
2018.04.06
상생............은 소중하니까요. 사적인서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