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아빠들을 위한 잡지 <볼드저널>에서 지난 3월 28일, ‘아빠의 젠더 감수성’을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세 명의 연사는 경제학자 우석훈, 시인 서한영교, 성교육 전문가 손경이. 20대 대학생부터 50대 아버지까지, 50여 명의 <볼드저널> 독자가 서울 마포구 서교동 북카페 ‘디어라이프’에 모였다.
2016년 10월에 창간한 <볼드저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으로 'Life Lessons for Modern Fathers'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현대 가정의 주체인 아버지에게 집중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최근 발행한 『볼드저널: 8호』 의 주제는 ‘젠더(Gender)’. 김치호 <볼드저널> 발행인은 “최근 연일 새로운 미투 운동이 보도되면서 딸 아들을 가진 아빠로서 소위 말하는 멘탈 붕괴 상태를 겪었다. 지난해부터 <볼드저널>은 ‘아빠의 젠더 감수성’에 관한 활발한 논의를 해왔고, 미래에 성장할 아이들을 위해 아빠들이 먼저 이 문제를 제대로 알고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강연회를 열게 된 취지를 설명했다.
올해로 50세가 되었다고 밝힌 두 아들의 아빠인 경제학자 우석훈은 『볼드저널: 8호』 에 ‘21세기 아빠에게 필요한 젠더 감수성’을 주제로 글을 썼다. 우석훈은 “젠더 감수성은 생각보다 어려운 용어다. 여기서 감수성은 sensitivity가 아니라 sensitization, 예민하게 감각하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며, “기존에 살아온 방식대로 일상을 바라보는 걸로는 충분치 않기에 일부러 감각을 증폭시켜 인지하지 못한 부분을 인지하는 것, 다시 말해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감각”이라고 밝혔다. 우석훈은 “한국은 남성의 가사 분담률은 16%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같은 나라는 40%다. 남성이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이 17%인데 한국이 16%”라며, “한국 남성이 가사에 지금보다 2.5배 정도 참여하면 우리도 일류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석훈의 최근 화두는 평등. 올해부터 아내가 상근직으로 일하며, 육아에 보다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우석훈은 아이들과 직접 빵을 구우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육아 분투기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를 출간하기도 했다.
『볼드저널: 8호』 ‘Portraits’에 참여한 시인이자 하자센터 교사 서한영교는 최혜진 <볼드저널> 편집장과 짧은 대담을 나눴다. 서한영교는 고등학생이었던 2001년, 고 박남철 시인을 둘러싼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목격한 후, 『페니스 파시즘』을 읽으면서 젠더 폭력 문제에 눈을 떴다. 이후 여성에게 가해지는 일상적인 폭력들이 눈에 들어왔고, 성 역할을 구분해 차별 구조를 공고히 하는 젠더 박스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결혼과 동시에 집을 길들이는 방법을 배워갔고, 아들이 태어난 후 육아와 살림에 보다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저는 아이와 함께 ‘시인의 감성과 시민의 감각을 지니고 시시한 일상을 잘 가꾸며 사는 사람’으로 커나가고 싶어요. 세계의 글썽거림을 알아차리고 타인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는 사람, 다양한 문제와 이슈가 엮인 사회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 무엇보다 위대한 사람이 되려는 욕심보다 요리나 청소 같은 삶의 작은 단위부터 잘 가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시인 서한영교 / <볼드저널> 8호, 80쪽)
마지막 강연자는 최근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 을 펴낸 손경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위촉 통합폭력력 전문 강사. 공공 기업, 대기업, 검찰, 학교 등을 상대로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 예방 교육을 하고 있는 손경이는 아들 손상민 씨와 함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영상(엄마와 나)으로 유튜브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볼드저널: 8호』 에서는 ‘우리 집에 필요한 진짜 성교육’ 문항에 답했다.
손경이 강사는 아이들의 성교육을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유튜브 영상을 본 사람들이 “어떻게 아들과 사정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물었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아들과 소통했다. 그는 아들이 아직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부터 몸에 대해 이야기했고, 유치원에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겼을 때 여자친구를 잘 사귀는 법을 함께 고민했다. 아들이 2차 성징을 맞이하기 전에는 자위, 사정 등에 대한 예절을 알려줬고, 중고학생일 때는 야동부터 섹스까지 함께 대화하고 고민했다. 손경이는 “언제나 올바른 성의식과 젠더 감수성도 함께 중요하게 다뤘다. 일상에서 성교육을 하며 20년을 보냈고 엄마인 나도 성장했다. 스스로 성교육, 부모교육을 하다 보니 상담 교사로 일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래는 『볼드저널: 8호』 에서 다룬 ‘성교육, 다들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의 일부다.
Q. 아이가 자기 성기를 자꾸 만지는데 어떻게 훈육해야 할까요? 자위 놀이를 할 때도 있고요.
A. 자위 놀이를 하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습니다. 자위하는 걸 마냥 금기시하거나 당연시할 필요는 없고, ‘너는 하는구나, 안 하는구나’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이세요. 아이는 자기 몸을 만지는 행동도 공간과 맥락, 감정 상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걸 배워야 해요. 아무리 자기 몸이라도 공개된 장소에서 만지는 건 에티켓에 어긋난다고 알려주세요. 다음으로 아이가 자기 성기를 만지는 이유를 들어볼 필요가 있어요. 별 뜻 없이 습관적으로 만지는 것이라면 교육을 통해 도와줄 필요가 있고, 성기를 만짐으로써 기분이 좋아져서라면 그게 자위니까 혼자만의 공간에서 본인의 몸을 소중히 여기면서 만지라고 건강한 자위법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가 났을 때 만지는 건 잘못된 스트레스 해소법이므로 아이 마음 상태를 조금 더 깊이 살펴야 해요. 술이나 야동처럼 기쁨과 관련 있는 다른 사안도 똑같습니다. 습관적으로 하기도 하고, 기분 좋으라고 하기도 하고, 화를 풀려고 하기도 해요. 좋은 감정으로 건강하게 기쁨을 즐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 손경이(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위촉 통합폭력력 전문 강사)
Q.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들이 ‘나도 예뻐’라고 말하니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너는 예쁘다고 하는 거 아니야. 멋있다고 해야지”라며 핀잔을 주더군요. 여자는 예뻐야 하고, 남자는 멋있어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하더라고요.
A. 동요나 동화 등 아이들이 즐기는 문화 콘텐츠에 성별을 분리해 특정 형용사를 붙이는 일이 빈번하지요. 아빠는 멋지고 엄마는 상냥하다고 하거나 남자아이는 파랑, 여자 아이는 분홍으로 구분하는 것처럼요. 아이 머릿속에 이미 자리 잡은 고정관념을 중화하려면 예쁘다, 멋지다 같은 형용사의 사용 범위를 넓혀 두루두루 쓰면 좋습니다. 아빠가 자녀에게 “이렇게 하니까 아빠도 예쁘지?”라고 질문하거나, 딸아이의 어떤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 “멋지다”라는 칭찬을 자주 해서 특정 성별에만 해당하는 형용사가 아니라는 걸 인지시킬 필요가 있어요. 꼭 사람에 대해서만 아니고 “어떻게 그런 예쁜 생각(멋진 생각)을 했어?”처럼 개념이나 사물로 용법을 넓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 설규주(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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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 저널 bold journal. (계간) : 8호 [2018]편집부 | 볼드피리어드
‘젠더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낯설지만 마냥 어렵게 생각할 말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물리적? 정신적 성’에 대한 이해와 그 ‘삶’에 대한 공감 능력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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