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영화 속 주인공 같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화 속 주인공들은 빼어난 매력으로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거나, 탁월한 능력으로 지구를 구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조그만 책상에 앉아서 이 책상을 박차고 일어날 그때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 이미화는 영화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나 보다. 주인공이 첫 키스를 나누던 장소, 함께 음악을 듣던 레코드 숍, 함께 걷던 거리 등 영화 속 주인공을 따라 걸으며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을 펴냈다. 덕분에 우리는 책 한 권으로 아홉 편의 영화와 여섯 도시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함께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모두의 시간이 일치하니 덜 외로워진다는 이미화 작가. 그녀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과 그녀는 같은 시간 속에서 같은 곳을 보고 있을 것이다.
먼저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Moved by Movie’라는 주제로 오랜 시간 작업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출간 소감이 어떠신지요?
감사합니다. ‘Moved by Movie’ 프로젝트는 수익과는 상관없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영화 촬영지를 찾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체력적으로나 비용적으로 지출이 크지만, 막상 눈앞에 영화에서만 보던 장소가 나타나면 ‘이걸로 됐다’ 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런데 그 당시의 기분으로만 남아 있던 걸 책이라는 형태로 만나게 되니 4년이라는 시간을 또 다르게 보상받은 것 같아요. 제가 보낸 시간을 눈으로 보고 만져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요?
‘영화 속 도시 여행’이라는 콘셉트가 참 재미있습니다. 영화 속에 나온 장소를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마케팅 대행사에 다니던 때였는데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집에 가면 영화 한 편씩은 꼭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몸은 너무 피곤한데 멍하니 앉아 영화 보면서 상상하는 게 참 좋았어요. ‘파리에서 시간여행을 하면 기분이 어떨까’ ‘외국에서 카페를 차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혹시 런던에서 톱스타와 사랑에 빠지지는 않을까’. 마케팅 대행사라는 게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스스로가 영화 속 주인공은커녕 주인공 친구도 못 되는 엑스트라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이렇게 상상으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직접 들어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가 2014년 4월이었어요.
책을 쓰며 방문했던 곳 중 영화 속 분위기와 가장 비슷했던 곳과 가장 달랐던 곳은 어디인가요?
가장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곳이 비엔나의 레코드 가게인 ‘알트운트노이(ALT&NEU)’였어요. 20년도 더 된 영화에 나온 장소인데도 영화 속과 90% 일치하더라고요. 1994년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어요. 다른 점은 그곳이 일상적인 공간이라는 점이었어요. 실제로 비엔나 시민들이 레코드를 사고파는 장소라는 점이 이곳이 단순히 영화에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 주더라고요.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은 영화와 책, 여행 이 세 가지를 모두 담고 있는데요. 영화와 책, 여행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좀 느린 아이였어요. 수업시간에도 멍하게 있는 경우도 많고 다른 친구들보다 무언가를 받아들이는데 느리다고 해야 하나. 저는 그게 제 삶의 속도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른이 되니까 그냥 좀 느린 아이가 아니라 남들보다 뒤처진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결혼이나 취업 같은 걸 해야 하는 마땅한 시기를 놓치다 보니 집에서 걱정거리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과 저 사이에 시차가 존재하더라고요. 그런데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할 때는 사람들과의 시차가 줄어드는 기분을 느꼈어요. 저와 같은 속도로 사는 사람들을 저는 책, 영화, 여행 안에서 찾았어요.
영화를 따라 여행하시면서 만났던, 가장 영화 같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비엔나에서 <비포 선라이즈> 촬영을 하는 내내 나에게도 제시 같은 남자가 나타나진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거든요. 혹시라도 운명의 남자를 만나진 않을까 계속 의식을 하면서 다녔는데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아무런 만남도 없었어요. 아쉽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베를린으로 돌아왔는데 메시지가 하나 와 있더라고요. 4년 전에 저와 같은 <비포 선라이즈> 여행을 했다는 남성분이셨는데 이 세상에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비엔나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보내주셨더라고요. 그 남성분이 현재의 제 남자친구랍니다.
책에서 촬영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가 있다고 하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떤 상황이었고,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 보면 네 명의 여인이 핀란드식 사우나를 끝마치고 나와서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나와요. 헬싱키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사우나인데, 사우나를 하고 나와서 바다를 보며 마시는 맥주가 끝내주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우나 방문을 헬싱키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정하고 여행 내내 이날만을 기다렸는데 전날 비를 쫄딱 맞고 돌아온 여파로 완전히 심한 감기에 걸려 버린 거예요. 그래서 결국 사우나는 가지도 못하고 숙소에 있는 3평짜리 가정식 사우나를 하면서 땀을 뺀 기억이 납니다. 비록 대단한 사우나는 아니었지만 핀란드 가정식 사우나도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책을 끝마치며 영화 <패터슨>의 이야기와 함께 소소한 일상도 영화가 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이미화 작가님이 주인공인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요?
최근에 영화 <소공녀>를 봤어요. 보면서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친구들이 소공녀의 여자주인공 미소가 저랑 너무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남들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어 ‘집’을 포기하는 대신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를 선택하는 미소의 모습이 저랑 닮았다고요. 저는 그런 걸 포기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집이나 차, 번듯한 직업 같은 것들이 사는 데 그리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소공녀를 보고 저를 떠올린 게 아닌가 싶어요. 저도 이 영화가 싫지 않으니 이 영화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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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이미화 저 | 상상출판
리스본, 비엔나, 파리, 런던, 더블린, 헬싱키 거리를 걸으며 써 내려간 글은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극대화하면서 공감을, 위로를, 추억을,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