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타스틱 우먼>의 한 장면
소유냐 삶이냐, 어떤 존재로 살 것인가. <판타스틱 우먼>을 보는 동안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의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았다. 올해 제90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 작품인 칠레 영화 <판타스틱 우먼>은 배우의 힘으로 끝까지 아름다운 긴장을 유지한다.
생일은 아름다웠다. 여자 주인공 ‘마리나’는 나이 차가 많은 동거남 ‘오를란도’에게서 이과수 폭포 여행 티켓을 선물로 받았고, 중국식당에서 축하 노래를 들으며 벅찬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사랑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한밤중 오를란도가 몸의 고통을 말하기 전까지는.
그날 오를란도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마리나’는 여성의 가슴과 남자의 성기를 가진 몸. 아직 신분증에는 개명 전의 남성 이름이 기록된 현실을 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충격을 겪고 있는데도, 자신을 범죄자 취급하며 의심하는 세상이 걸어온 싸움에 대응하느라 슬픔을 녹일 겨를이 없다.
마리나에게 가장 가혹한 싸움은, 오를란도의 전 아내와 아들이 걸어온 것이었다. 당장 자동차를 빼앗고 집도 빼앗는다. 인간적인 모독도 서슴지 않는다. 마리나의 성숙한 면모는 여기에서 드러난다. 소유물에 대해서 어떤 이견도 없다. 같이 살았던 애견 디아블로만을 자신 곁에 두고 싶어한다. 그리고 오를란도를 추모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간절함을 담아 침착하게.
오를란도의 가족은 마리나의 존재가 수치스럽다. 고인의 명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 아예 장례식부터 오지 못하게 막는다. 그들은 명예도 집이나 자동차처럼 소유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인이 정말 사랑했던 존재를 내팽개치면서까지 어떤 ‘그럴듯함’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마침내 애견 디아블로까지 훔쳐간 그 가족과의 싸움에서 마리나는 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죽을 만큼의 고통이 나를 강하게 한다’는 독백 속에, 마리나는 결의를 다진다.
영화 <판타스틱 우먼>의 한 장면
베우 다니엘라 베가의 영화제 수상 소감은 매우 특별했다. “예술이 나와 내 인생을 구했다. 예술은 나의 몸과 정체성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배우가 트랜스젠더였다.
오페라 가수를 꿈꾸었던 소년이 성장해 여인이 되었고, 배우가 되었다. <판타스틱 우먼>의 마리나 역할을 한 배우 다니엘라 베가. 영화의 명장면 오페라 무대 위, 그녀의 목소리는 완벽할 만큼 영화 주제와 걸맞다. 판타스틱했다.
“이런 그늘이 없었네. 이 세상 그 어느 나무 그늘보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우며 이토록 감미로운 그늘.” 노래는 깊었고 우아했다. 오를란도를 애도하는, 사랑을 추억하는 모습이었다.
오를란도의 무덤을 찾아가 환상 속에서 포옹하고 떠나보낸 마리나는 애견 디아블로를 되찾는다. 존재 그 자체로, 어떤 현실적인 과시 없이 살아갈 그녀는 사랑은 지키고 세상 편견에는 맞서는 강한 여성이었다.
소유냐 삶이냐. 이과수 폭포를 함께 가지 못해도 마리나에게 ‘이토록 소중했던 그늘’인 오를란도를 간직하는 일은, 그 그늘이 자신의 존재에 드리웠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사랑을 지키려면 강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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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jijiopop
2018.05.04
.........! 밑줄 긋고 갑니다.
시골아낙
2018.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