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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 와 있다. 별을 본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친구와 운동장 스탠드에 나란히 앉아 별을 보며 “앞으로 우리는 무엇이 되어 이 세상을 살게 될까”를 이야기했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렸을 때 상상하곤 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지워져버린 질문. 별에는 이런 상상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시간의 테이프를 돌려 보면 그때의 상상 중에 현실이 된 건 거의 없다. 하지만 꿈이란 이루어졌을 때 가치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상상하려 애쓰는 마음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 바람이 현실이 되지는 못했어도 그리 마음 아프지는 않다.
누군가 나에게 “너의 두뇌 기능을 한 가지만 빼놓고 다 앗아간다면, 남겨두고 싶은 단 하나는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기억력이나 이해력, 언어나 수리 능력이 아니라 “상상력”이라고 나는 대답할 것이다. “제발, 상상할 수 있는 그 힘만은 가져가지 말라”고 애원할 것이다. 만약 신이 지금 내 앞에 나타나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면 어린아이마냥 “상상력이 더 커질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할 것이다.
현재의 고통과 팍팍한 현실 안에서도 낙관적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상상할 수 있어서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 사라질 시간을 상상하고, 지금은 없지만 앞으로 있을 그 무언가를 마음에 그릴 수 있어야 좌절하지 않는다. 극한에서도 긍정을 품고,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건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고통으로 가득 찬 현실을 살아갈 힘도 상상 없이는 구할 수 없다.
정신건강을 증진시켜준다고 알려진 이 세상의 모든 심리기법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상상력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환원될 수 있다. 변화의 동기는 언제나 달라질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할 때 생긴다.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면 머릿속에서 달라질 내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당신 앞에 놓인 문제를 그대로 둔다고 가정해봅시다. 5년이 흐른 뒤 당신은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라는 상상의 질문으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찾게 만들 수도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말하는데, 이건 상상력이 빈약한 사람들을 위한 변명일 뿐이다.
자유와 순수,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덧없다는 느낌과 뻔한 일상에 질식할 것 같다면 칼 구스타프 융이 제안한 ‘적극적 상상’(active imagination. 분석심리학에서는 적극적 명상이라고 부르고 있다)을 시도해보면 좋겠다. 적극적 상상이란,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감정, 환상, 백일몽을 경계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의식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마치 자기 밖에 있는 객체처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인간 최고의 정신활동이며, 의식과 무의식의 성격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작업으로도 일컬어진다. 이렇게 설명하니까 무척 심오한 기법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렵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림 그리기, 진흙놀이, 춤추기 등을 통해 심상이 활성화되면서 따라오는 정서적 감동과 연결되는 체험에 깊숙이 빠져드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아이처럼 놀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보겠다는 마음으로 자기 내면으로 다이빙을 하여 들어가는 것이라고 여겨도 좋겠다.
공감은 상상력의 혜택 없이 절대로 성립할 수 없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타인의 내면세계를 내 안에서 재현할 수 없다면 공감도 없다. 상상이라는 불확실한 도약 없이 공감은 시작되지 않는다. 어디 공감뿐이랴. 친절과 배려와 겸손 같은 미덕들도 나 아닌 다른 사람과 그의 삶을 상상할 수 있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건 모두 다 상상력 때문이다.
사랑도 상상의 산물이긴 마찬가지. “사랑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주는 거야.”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어쩌면 사랑이란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터무니없는 것을 상상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상을 발판 삼아 투신하는 사랑 뒤에 언제나 아픔이 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사랑이 식는 것도 마찬가지. 아무리 노력해도 연인의 마음이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을 때 사랑도 사라진다.
지리산 묵계사
지리산을 파고드는 길의 맨 끝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 묵계. 계곡의 물도 소리 죽여 흐르는 곳이다. 세상과 단절하듯 겹겹이 쌓인 봉우리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 그 어느 예술로도 느낄 수 없는 숭고함이 느껴진다. (아, 그러고 보니 숭고, 라는 이 감정은 우리의 상상으로 그 실체를 알 수 없을 때, 그래서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때 느끼는 것이 아닌가.) 그곳에 자리 잡은 아름답고도 아늑한 사찰의 대웅전 앞뜰을 수놓은 연등을 보며 기도했다. “제발 좋은 일만 있기를...”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두 손을 모았다. 그래, 기도는 간절한 상상이다.
현실이 되기 힘든 무엇이 현실이 되게 해달라고 두 눈 감고 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는 기도의 행위는 상상으로 시작되고 상상으로 끝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우리는 또다시 상상이 이끄는 기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제발 좋은 일만 있기를...” 지리산 밤하늘에는 별들도 많아, 상상도 별만큼 많아졌다.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김병수(정신과의사)
정신과의사이고 몇 권의 책을 낸 저자다. 스트레스와 정서장애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진료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교수 생활을 9년 했고 지금은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의 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