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담서원에서 열린 『디어 맑스』 출간 기념 청년담론 북콘서트
지난 5월 26일, 옥인동 길담서원에서 『디어 맑스』 출간 기념 북 콘서트가 열렸다. 『디어 맑스』 는 카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이자 팩션이다. 『디어 맑스』는 카를 마르크스의 친구이자 오랜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카를 마르크스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한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더해 카를 마르크스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카를 마르크스라고 쓰지만, 저자는 ‘칼 맑스’로 표기했다. 손석춘 작가는 “생전에 ‘칼 맑스’로 불렸으며 오늘날 유럽과 미국에서도 그렇게 불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길담서원에서 펼친 북 콘서트는 언론인이자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손석춘 작가와『청년, 리버럴과 싸우다』 의 저자이기도 한 청년 단체 청년담론의 김작가(김창인 씨), 정선생(정경직 씨), 최시흥(최원정 씨)이 『디어 맑스』 에 관해 대화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북 콘서트는 이후 청년담론이 만드는 팟캐스트 ‘이상한 청년들의 고급진 상식’에도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맑스에게 혹은 맑스를 모르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
김작가 : 김작가, 정선생, 최시흥입니다. 오늘 손석춘 작가님과 함께 대화를 나눌 저희 셋은 ‘청년 더하기 새로운 생각’이라는 모토로 다양한 지적 담론을 생산하는 청년담론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 진보 캠프나 언론 캠프에 연설자로 참여하셨고, 작가님의 저서인 『신문읽기의 혁명』 으로 세미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작가님을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최시흥 : 먼저 선생님의 약력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대학 시절엔 철학을 전공하셨고 1984년부터 한국경제신문, 1987년부터 동아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셨습니다. 1988년에는 전국언론노조연맹을 만드는 데 활약하셨고, 1991년 한겨레신문으로 거처를 옮겨 논설위원과 기획의원으로 계셨고요. 2006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직을 맡으셨고, 2011년부터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손석춘 : 요즘엔 거의 서재와 학교만 오가고 있습니다. 다른 일 하는 것은 없고, 다음 세대를 위해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글로 써야겠다. 그런 생각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청년담론 여러분과 함께 제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되어서 기쁜 마음입니다.
정선생 :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작가님은 언론인이나 사회를 비판하는 지식인으로 익숙했습니다. 사회과학 서적을 더 많이 봤던 것 같고요. 그런데 문학으로 장르를 변경해서 쓰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작가님의 문학론이 궁금합니다.
손석춘 : 1978년 대학에 갔을 때는 학생 운동을 하려고 간 건 아니었어요. 좋은 문학을 쓰고 싶었던 꿈이 있어 철학과에 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1학년 때부터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고, 현실이 훨씬 문학적인 것 같아 문학을 접었어요. 언론사에 입사했을 때는 1980년 5월을 왜곡하는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언론이 변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가능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론사에 들어가서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1984년 수습 기자일 때 다른 언론사 수습 기자들과 모여 연수할 때 우리끼리 다짐했죠. 10년 안에 꼭 노동조합 만들자. 그런데 1987년에 언론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그때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젊은 시절 내 안에 남아있던 문학에 관한 생각이나 꿈이 떠올랐고, 『아름다운 집』을 발표하며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정선생 : 전작 『유령의 사랑』 도 맑스를 다루고 있고, 이번 책 『디어 맑스』 도 맑스를 다루고 있습니다. 두 책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손석춘 : 『유령의 사랑』 은 1883년 세상을 떠난지 120주기가 되던 해인 2003년에 출간했습니다. 120주기를 나름대로 기념하기 위해 맑스와 하녀 헬레네 데뮤트의 이야기를 쓴 것이고요. 이번 책은 엥겔스의 시선으로 본 것이기 때문에 헬레네 데뮤트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김작가 : 『디어 맑스』 의 부제가 ‘엥겔스가 그린 칼 맑스의 수염 없는 초상’인데요. 우리 사회에서 맑스는 좌파의 신성한 우상 혹은 악마 맑스, 두 이미지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한국사회에서 오해하는 맑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책에서는 어떤 맑스를 소개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손석춘 : 말년에 맑스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북아프리카 알제리를 걸었습니다. 그의 부인 예니는 이미 죽었고, 그도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이었죠. 북아프리카 해안을 걸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질문자의 말씀처럼 한국 사회는 맑스에 관해 잘 모르면서 함부로 이야기하거나 맑스를 교주처럼 받아들이곤 합니다. 실제로 맑스는 맑스주의자라는 말에 반대했으며, 본인은 맑스주의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노동인의 싸움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무모한 실천이나 행동을 반대했으며, 미래 사회의 희망은 노동 계급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 계급의 지적 발전에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한국에서 노동 운동 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노동인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김작가 : 그런데 소설의 형식이라 의문이 들었던 점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맑스가 수염을 잘랐나요? 또 실제로 맑스와 엥겔스가 주고받은 편지를 인용하신 건지, 궁금했습니다.
손석춘 : 그럼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지요. 편지를 인용한 것도 전부 있었던 거고요. 맑스를 연구하는 학자 중 일부는 맑스가 수염을 자른 사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수염을 잘랐다고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마음이 바뀌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맑스가 그렇게 변덕스럽지 않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김작가 : 책의 화자를 엥겔스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손석춘 : 편집진과 논의하며 이야기가 나왔고, 저 역시 엥겔스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이 매우 매력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엥겔스와 맑스의 우정 때문이었는데요. 한국 사회의 진보 운동에서도 두 사람의 우정과 같은 모습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손석춘 작가, 청년담론 김작가, 정선생, 최시흥 씨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해왔다. 중요한 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 139쪽
김작가 : 최시흥 씨는 책을 어떻게 읽었나요?
최시흥 :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가 정치외교학과를 다니고, 현재 학부 3학년이다 보니 맑스의 이름을 많이 듣는데요. 그럼에도 맑스 삶의 굴곡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맑스의 가족, 아이들 등 개인사에 등장하는 인물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책을 읽으며 생긴 질문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독서 토론 모임에 함께하는 1학년 학생들에게 맑스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는데요. 이상주의자, 사상가 중 한 명, 정치학에서 한 번쯤 나오는 인물로 인식하고 있더라고요. 모두 단편적으로 맑스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꾸준히 맑스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왜 현재 맑스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손석춘 : 요즘 헬조선이나 청년 실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청년 실업에 분노해 촛불을 들고, 행동하는 것 모두 좋습니다. 그러나 맑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관한 지적 탐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선행되지 않으면, 헬조선이 극복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과연 맑스를 이해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현대 사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드는 겁니다. 강의할 때도 주로 맑스나 니체를 강조해 설명합니다. 노동이 무엇인지, 노동 상권이 무엇인지 대학에서 배우지 못하고 사회에 나간다면, 헬조선에 분노하다가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현실에 순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를테면 바로 얼마 전까지 촛불이 타올라 정부가 바뀌었지만, 부익부빈익빈이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건지, 이유가 무엇인지, 논리적인 탐구가 필요하죠. 거기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침잠해서 현실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현실에서 싸움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젊은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합니다.
김작가 : 여러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혹시 작가님이 특별히 애정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요?
손석춘 : 물론 맑스죠. 만약 맑스를 빼고 이야기한다면 데모트입니다.
김작가 :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가족 관계와 맑스가 넘어서려는 새로운 사회에서의 가족 관계는 다를 수 있을까요?
손석춘 : 서로 구속하지 않는 사랑을 전제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부일처제는 사실은 일부다처제라고 할 수 있죠. 맑스도 엥겔스도 돈 있는 부르주아가 노동자의 젊은 아내와 딸을 제 마음대로 부린다고 했는데요. 그건 엄청난 통찰이었습니다. 현재도 벌어지는 현실이고요. 일부일처제를 실천하지 않으면서 주장하는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을 합니다. 한 남성과 여성이 인간으로 자유롭게,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게 맑스와 엥겔스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맑스와 엥겔스의 사랑관이나 가정관에서 유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것은 결코 사회 경제적 기반에 관해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맑스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며, 자본주의 사회 역사 역사적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사랑마저도 차디찬 이해관계 속에 집어 던집니다. 최근 독일에 간 미국 변호사의 책에도 나오는데요.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는 남녀가 만났을 때 서로 연봉이 얼마인지 묻고, 서로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이나 중국도 비슷하게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 변호사가 독일에 갔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서로 연봉을 묻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고, 사회가 함께 사는 데 기반을 만들어 주니까요.
정선생 :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속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가족 형태를 강제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서 맑스가 비판한 지점이죠. 실제로 엥겔스가 이후에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서 보여주기도 했죠. 권력과 자본이 개입된 사랑은 어쩌면 자유롭고 진정한 사랑이 아닐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최시흥 : 이 책의 마지막에 “학습하라, 토론하라, 사랑하라.”라고 마무리됩니다.
손석춘 : 책에는 엥겔스가 한 말로 되어 있는데요. 원래는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라는 말로 맑스와 엥겔스의 친구이기도 한 노동 운동가의 이야기입니다. 노동 운동 하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말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선전과 조직이라는 게 요즘에는 와닿지 않다 보니 현대어로 바꾼 겁니다. 사랑하라는 말은 맑스가 한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현실을 지켜만 보는 것과 실제 변화하는 데 뛰어들어 실천하는 것은 자위행위와 사랑의 차이와 같다는 말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라의 의미는 실제 삶에 들어가 사랑하고,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노동인의 해방은 노동인 자신의 일이어야 한다.” - 370쪽
김작가 : 작가님이 책을 읽는 사람들과 여기 계신 분들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요.
손석춘 : 맑스에 관심을 둔 것은 오래전입니다. 서울 출신이 아닌 제가 1969년 서울에 처음 와서 목격한 풍경은 확연한 빈부차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를 따라간 공덕시장에서 노점 하는 분께 깡패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각목을 들고 좌판을 뒤엎는 광경을 목격하고, 매우 충격을 받았죠. 반공 교과서에 맑스가 나왔을 때 알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던 것도, 어린 눈에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일찌감치 철학과에 진학하고 싶었고, 입학하자마자 대학 도서관에서 맑스와 맑스주의자를 읽으며 맑스를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맑스가 평생에 걸쳐 강조했던 건 지적 발전을 이루지 않았을 때 어떠한 변화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맑스 탄생 200년이 지난 지금, 맑스에 관한 소설을 쓰고자 했던 이유는 여전히 한국 사회 대다수 구성원이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는 걸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맑스의 선언에 나오는 구절로 본다면,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한국 사회 역시 사랑도, 우정도, 거룩함을 느끼는 경외의 감정조차도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 던져 놓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것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4월 혁명, 5월 항쟁, 6월 대항쟁, 가까이는 촛불 혁명을 지나며 꿈꾸었던 세상이 과연 이런 것인가. 아니잖아요. 사람 사이에 사랑과 우정이 있고, 경외하는 감정을 만들 수 있는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에는 여전히 맑스의 통찰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복지를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순한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를 이야기하죠. 노동으로 내면에 있는 세계를 내보이고,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세상을 꿈꾸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내면의 세계를 마음 놓고 창조적으로 구현할 수 없죠. 이것이 불가능한 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이상주의로 취급한다면, 아마 지금도 신분제가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남녀 모두 투표권을 갖는 세상은 오지 않았겠죠. 제 생각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맑스로 다시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맑스와 관련해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먼저 맑스는 시민혁명이 지닌 한계에 관해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해관계와 어긋나면 대량학살로 나타난다는 점을 꼬집는 거죠. 그렇게 보면 한국 사회도 촛불 혁명 이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섣불리 판단할 때는 아니지만, 여전히 복지 확산이나 노동 문제가 변화의 가능성을 보이지 않고 있죠. 학습하는 촛불이 미래의 희망입니다. 촛불 혁명에 나왔던 사람들이 맑스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맑스의 노동 가치에 관한 관심도 없을 때 답답함이 큽니다. 언론도 마찬가지고요. 맑스는 시민사회가 아닌 인간적 사회를 말합니다. 모든 것을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던져버리고 사는 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성을 가지고 서로 대하고, 소외시키지 않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두 번째는 노동인이 강렬하게 투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인으로 의식이 분명하게 학습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투쟁하기에도 벅차고, 학습할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하지만 노동인의 자기 해방이 노동인에게, 또 노동 운동에도 자산입니다.
세 번째로 맑스는 노동인의 자기 조직, 자기 정당을 강조합니다. 노동인이 뭉치고 단결해서 정당을 만들고, 정치세력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에 의존하거나 기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정당을 만들어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 사회 현실은 암담합니다. 이는 운동하는 사람 사이에 학습하는 전통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문장을 ‘학습하자, 토론하자, 사랑하자.’라고 이야기한 것 역시 맑스는 내내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노동인의 지적 발전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인이 지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면 불평, 불만으로 끝나고 맙니다. 노동 운동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NL이나 PD를 생각하며 운동한다면, 게으른 겁니다. 새 시대에 맞으면서 맑스의 정신을 따라가는 언어를 창조하고, 그렇게 발전하면서 운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고요.
저 역시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다만 청년담론과 같은 세대에게 기대하는 건 지금 청년들이 40~50대가 되었을 때는 이 나라에도 노동인을 대변하는 정당이 뿌리 깊게 내리고, 그들이 집권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정당이 집권해야 대학 등록금이나 병원비가 없어지고, 사랑과 우정, 경건한 담론이 경제 논리로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싸워야 합니다.
맑스에게 삶의 비밀을 물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투쟁’이라고 말했습니다. 투쟁은 학습하고, 토론하고, 현실을 바꾸려고 행동하는 실천입니다. 저 역시 젊은이들이 잘 싸우는 데 미진한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김작가 :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평택에서 쌍용자동차 파업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을 따라서 현장에 갔고, 공장 주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어떤 의지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우르르 친구들과 함께 갔던 거죠. 그때 목격한 것들이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당시 파업한 노동인들은 공장 안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공장 밖에는 천막을 치고 가족들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함께 천막에 있었고요. 어떤 날 새벽, 천막에서 자고 있는데 환경미화원으로 변장한 용역 깡패들이 쇠파이프로 만든 빗자루를 들고 와 제 주변에서 자고 있던 가족들을 때렸습니다. 자다가 일어난 어머니들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주변에 있던 경찰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경찰은 꿈적도 하지 않았고요. 그 장면은 제가 알던 한국 사회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용인하고, 정당화하는 논리나 이념, 사상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그에 반대해 싸울 수 있는 무기는 맑스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님께서 중학교 때 시장 상인에게 폭력을 가하던 깡패를 목격한 사건과 제가 쌍용자동차 파업 현장을 경험한 것도 그사이에 놓인 몇십 년이란 시간이 무색하게 비슷한 모습입니다. 그것 역시 탄생 200주년이 된 오늘까지도 맑스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디어 맑스손석춘 저 | 시대의창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자본이 횡횡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하에 착취와 피착취의 경계선마저 모호해지고 있다.
이수연
재미가 없는 사람이 재미를 찾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