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쉘>의 한 장면
헤디 라마 Hedy Lamarr, 백설공주의 모델이었다는(정말 백설공주와 똑같이 생겼다), ‘지구 최고의 미녀’로서 할리우드사에 회자되던 배우의 다큐멘터리 <밤쉘>이 ‘세계국제여성영화제’에서 화제였다.
스무 살이 채 되기 전 출연한 무성영화 <엑스터시>에서 영화 사상 최초로 ‘알몸의 오르가슴을 연기한 여배우’였던 헤디 라마는 이후 ‘섹스 심벌’이 되었다. 첫 영화의 이미지는 헤디 라마의 인생 전체를 지배했다.
‘최고 미녀’와 ‘최초 오르가슴 연기 배우’라는 최고, 최초의 기록이 다큐멘터리 <밤쉘>의 주제는 아니다. 헤디 라마의 새로운 면모, 놀라운 발견을 담은 영상이 공개된 것이다. 무선 통신, 그러니까 와이파이의 기본 개념에 해당하는 ‘주파수 도약’을 발명한 여성이었다는 것. 이 발명은 1942년 특허까지 냈으나 헤디 라마의 ‘특허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무선으로 어뢰를 조종할 수 있는 방법, 주파수를 여러 개 분산시켜 적군이 알아챌 수 없게 만드는 이 발명은 이후 군사적으로 활용되었지만 헤디 라마의 아이디어라는 사실은 가려져 있었다. 헤디 라마가 죽기 몇 년 전, 전자프런티어재단에서 이 발명을 높이 평가해 수여한 상을 아들이 대리 수상했을 뿐이다.
“나는 원래 외모보다 두뇌에 관심이 많아요”라고 헤디 라마는 말한다. 세상은 그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세상은 마치 그 말을 원하지 않은 듯했다. ‘밤쉘 Bombshell’로서 헤디 라마를 소비하고 기억하고 싶어했다. ‘밤쉘’의 사전적 의미는 섹시한 금발 미녀.
1913년 오스트리아 빈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헤디 라마는 과학 탐구, 화학 실험에 관심 높은 명석하고도 귀여운 소녀로 자랐다. 1933년 영화 <엑스터시>에 출연한 이후 헤디 라마는 곧이어 열네 살 연상의 군수업체 거물 프리츠만틀과 결혼한다.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치와 연결된 남편의 의처증과 집착이 심한 상황에서 ‘아름답고 젊은 아내’의 대외적 역할에 진저리 난 헤디 라마는 자신을 감시하던 하녀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도피한다.
유럽의 배우들을 스카웃하러 다니던 미국 MGM사와 계약, 오스트리아의 이름인 ‘헤트비히 에바 마리아 키슬러’를 버리고 새로운 이름 ‘헤디 라마’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게 된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사 MGM 제작 방식은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전속 배우들을 거의 ‘노예화’했다. 각성제(알고 보면 마약, 당시에는 불법이 아니었으니)와 수면제를 먹어가며 24시간 촬영을 해야만 하는 극한 상황에서 헤디 라마는 살아남았다.
영화 <밤쉘>의 한 장면
1949년 <삼손과 데릴라>를 통해 배우로서 입지도 강해졌지만 여전히 소비되는 ‘밤쉘’의 이미지. 오스트리아에서 건너온 이방인이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았다 싶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자신’으로 살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인지 스스로 영화 제작자로 나서서 영화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재산을 모두 날리기도 한다.
다큐 영화의 핵심은 사실 영상과 배우에 속해 있다기보다 제작자에 속해 있다. 왜 다큐 <밤쉘>을 제작했는가. 제작은 수잔 서랜던, 감독은 알렉산드라 딘, 내래이션은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이면서 그 자신이 독일 출신의 명석한 할리우드 배우인 다이앤 크루거, 여성 3인방이 새로운 헤디 라마의 면모를 보여주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먹빛 마음으로 한참 가라앉았다. 헤디 라마의 새로운 발견에 환호했을 법한데 그러지 못했다. 90세 가까이 살았던 헤디 라마는 은퇴 후 잠시 스캔들로 화제의 중심에 선 듯했지만 은둔 생활을 자처했다. 자료 영상에는 성형 수술로 망가진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인간적인 위엄을 찾기 어려운 상처 난 짐승의 호흡이 느껴졌다. 성형수술에서도 자신의 방식, 일종의 발명에 가까운 새로운 시도를 요구했다는데, 왜 세상이 요구하는 ‘미의 기준’에 자신을 놓아두었을까.
여섯 번의 결혼과 이혼, 약물중독과 도둑질 같은 스캔들, 섹시한 금발 미녀가 가십거리와 놀림감이 되어가는 모습 속에서 한 인간이 자신을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고난 행군인지 본다. 정말 이 질문이 유효하다. 너는 너로 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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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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