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의 몽상』 이 출간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뒤늦은 편집 후기에 저자와 맺은 우정이나 제목과 표지에 얽힌 사연 등으로 채우려니 아무래도 멋쩍었다. 그러다 책이 내게 남긴 것에 대해서라면 이야기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옥의 몽상』 을 만드는 동안 나는 몇 가지 안을 마련해 그때그때 다르게 책을 소개하곤 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선배에게는 감옥 내 젠더와 남성성을 치밀하게 분석한 책이라 했고, 고등학교 동창에게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남성 저자의 글을 만났다고 했으며, 환갑이 지난 부모님께는 젊은 연구자가 쓴 감옥사회학이 곧 나온다고 말씀드렸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재미있다는 지인들에게는 그보다 더 리얼하고 흥미로운 감옥 이야기를 읽게 될 거라고 했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들께는 편집자의 노동을 인지하고 배려해주는 저자와 작업 중이라고 했다. 나는 저자 현민과 원고의 특별한 장점을 파악해 제법 잘 홍보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에는 나의 계산된 검열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민의 글을 읽다 보면, 오랜만에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솔직해도 될까. 첫 저서인데. 그가 겪은 감정과 경험이 어느 부분에서는 나의 것 같았는 데다 숨기고 눙치며 살아온 시간이 부끄러워 이 책의 배경이 감옥이고, 현민이 군대 대신 감옥을 택했다는 사실을 종종 잊었다. 그가 군대를 거부한 데에는 정치적 신념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 세계나 신체 감각이 중요하게 자리했다. 이에 대해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우니 길고 긴 답을 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출소 후에는 감옥 경험까지 더해지면서 더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계속 찾았을 것이다. 유년 시절이나 20대로 거슬러 올라가보기도 하고 관심 갖던 주제들을 공부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감옥의 몽상』 은 현민이 병역을 거부했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지만 그 시작과 끝에는 자신을 파고들어 낱낱이 밝힌 자기고백이 자리했다. 이 모든 것을 알았음에도 나는 책의 특정 부분만 주목될까 봐 지레 바빴다. 다양한 소개 글을 준비했던 것도 출간 전에 덧붙여질 어떤 선입견을 줄여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사회적 시선이나 권력에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 지를 스스로 드러낸 셈이었다.
이런 고민이 무색하게 편집하는 동안에는 영등포교도소 (지금은 ‘서울남부교도소’로 이름을 바꿔 이사했다)라는 시공간을 이해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사라진 공간을 기록하기 위해 현민의 글, 기억과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 사이를 반복해서 오갔다. 감옥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가 걷어지자 구체적인 생활 공간이 들어왔다. 영치창고, 운동장, 공장구역, 취사장, 사동, 병사, 강당 그리고 주복도, 화장실, 독방, 혼거방……. 지금도 머릿속에 절로 그려지는 곳곳에는 감옥의 질서를 유지하는 다양한 요소들과 특수한 작동 체계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간보고, 빵잽이를 따르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저마다 환상을 만들어 붙잡았다.
책이 출간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었다. 한 동료가 대체복무제가 시행되면 앞으로 감옥의 소지(교도관과 두셋씩 짝을 지어서 노동하는 재소자로, 대개 20대다)는 누가 맡느냐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크게 웃었다. 현민이 적지 않은 분량으로 소지가 갖는 예외성과 보이지 않는 노동의 의미를 분석한 맥락을 읽어내준 것 같아서다. 그러게. 제대로된 역할을 해줄 소지가 줄어들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감옥 이야기도 나오게 되려나.
돌아보면 현민과 나는 책이 나오기 전까지 각자의 이유로 절실했고,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짐작 컨대 그는 자신의 감옥 경험과 내밀한 이야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기대와 걱정을 섞어 겪는 중이었고, 나는 나대로 놓친 건 없는지 또 기존의 감옥 문학들과 성급한 비교가 될까봐 염려했다(이 책의 마지막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을 다시 읽어내는 글이 실려 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선생님들께 추천사도 받아 넣지 않고, 북토크나 강연도 하지 않아 보기로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고집스러움이 가당키나 할까 싶었지만 누군가는 이 의미를 알아줄 거라는 믿음이 한 켠에 있었다(물론 지금도 그렇다). 독자를 늘 비슷한 방법으로만 만나는 건 아닐 테니. 그렇지만 한번쯤은 책을 읽은 사람들이 조금 편안하게 모여 현민에게 못 담은 감옥 생활기도 듣고, 서로의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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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의 몽상현민 저 | 돌베개
오랜만에 등장한 2000년대판 감옥 이야기로, 기존의 감옥 문학과 다른 계보를 형성한다. 자기반성이나 깨달음을 기록하기보다 감옥의 시공간과 일과, 생리를 전달하는 데 충실하다.
윤현아(돌베개 편집자)
wonder453
2018.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