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
뮤지컬 <최후진술>이 지난해 12월 초연 이후 앙코르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2인극에 인기 배우가 등장하지도 않지만 초연 때부터 입소문이 꽤 났던 공연이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이며 물리학자, 수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야기다. 1633년 갈릴레이는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 두 가지 주요한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라는 책에서 지동설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로마교회의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살아남기 위해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지지하는 내용의 속편을 쓰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속편을 완성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천국과 지옥행을 가르는 재판을 받게 된다. 재밌는 것은 이 과정에 영국 출신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떤 작품인지 감이 안 잡힐 텐데, 그래서 공연을 보며 생각했던, 객석에서 나눴을 법한 얘기들을 각색해 보았다.
1층 I열 7번 : 이 작품 뭐지? 갈릴레이와 셰익스피어의 만남이라고 해서 무척 기대했는데.
1층 I열 8번 : (15)64년생 동갑이라잖아(웃음). 같은 해에 태어나 현실에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먼저 세상을 뜬 셰익스피어가 갈릴레이의 황천길을 안내해준다, 나름 신선하네.
1층 I열 7번 : 그 신선한 상상에서 그친 것 같아.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이의 만남인데, 단순히 등장인물로 설정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뭔가 개연성 있고 좀 더 기발한 스토리 전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관객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64년 동갑내기’ 이후 줄곧 기다렸건만 결국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이 굳이 안 나와도 되는 극으로 마무리되더군.
1층 I열 8번 : 그 부분이 아쉽긴 한데, 갈릴레이가 썼다는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 두 가지 주요한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가 세 사람이 나흘 동안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라고 하잖아. 대본도 아니고, 과학자가 대화체 형식의 글을 쓴다는 것부터 이상하지 않아? 이런 형식의 글은 책 내용에 문제가 발생하면 화자의 생각이지 저자의 주장은 아니라는 식으로 발뺌하기 쉽다고 해. 그러니까 갈릴레이는 당시 종교가 중심인 세상에서 교묘하게 지동설을 지지한 거고, 그런 차원에서 문학적인 센스가 있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화체의 글이라면 셰익스피어를 빼놓을 수 없고 말이야. 동시대 사람이니까 갈릴레이가 셰익스피어의 팬이었을지도 모르지.
1층 I열 7번 : 그런 연결고리가 공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위대한 과학자지만 이 동네, 그러니까 공연계에서 사실 갈릴레이만으로는 ‘티켓 파워’가 약하지. 그렇게 호기심이 생기는 인물은 아니잖아. 그런 차원에서 무대예술의 영웅인 셰익스피어는 이른바 ‘스타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대에 등장만 했을 뿐 ‘셰익스피어’라는 스타를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갈릴레이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접은 뒤 마지막까지 고뇌하는 게 스토리의 중심축인데, 인간의 그 숱한 고뇌를 가장 많이 다룬 작가가 셰익스피어 아닌가!
1층 I열 8번 : 하긴 셰익스피어식으로 갈릴레이의 고뇌를 풀어냈으면 그 내면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을 텐데. 갈릴레이라는 인물과 그 삶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극의 전개가 빠른 데다 너무 많은 인물이 등장하니까 생을 이어가려는 의지와 신념을 저버린 학자로서의 양심 사이의 갈등이 잘 묻어나지는 않았어. 그런데 적어도 극작가가 갈릴레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대단한 것 같지 않아? 일단 과학자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적이 거의 없잖아.
1층 I열 7번 : 일대기를 그린 작품의 주인공은 대부분 예술가지. 예술가들의 삶이 드라마틱한 데다 그들의 작품은 글이나 음악, 그림 등을 무대 위에서 적극 활용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과학자는 힘들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뭔가 극적인 내용이 없을 수도 있고.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갈릴레이, 이름과 한 줄의 업적 정도만 알고 있는 수많은 역사 속의 인물들을 무대 위로 끌어내서 이야기를 만든 용기는 대단하다고 생각해. 지적 호기심 넘치는 관객들이 뮤지컬 <최후진술>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할 테고(웃음).
1층 I열 8번 : 그러게, 그것도 2인극으로. 덕분에 갈릴레이의 상대역은 대표인물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갈릴레이와 관련된 인물들,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다 화형당한 철학자 브루노, 종교재판의 불합리함을 비판하며 갈릴레이를 만난 시인 밀턴, 그리고 갈릴레이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이었을 신까지 연기하는 크나큰 시련을 겪지만(웃음).
1층 I열 7번 : 나는 양지원 배우 공연으로 봤는데, 연기를 잘 하더라고. 앞으로 대학로의 다양한 공연에서 볼 수 있겠구나 싶었어. 사실 ‘1인 다역’이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배우와 관객 사이의 ‘짜고 치는’ 긴밀한 약속이라서 잘만 소화하면 객석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지. 배우로서의 다양한 모습과 역량도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줄 수 있고.
1층 I열 8번 : <최후진술>도 배우들의 연기 보는 재미에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그리고 넘버! 인상적인 넘버가 상당히 많았어. 선율도 아름답고, 뮤지컬 음악보다는 인디 음악 같기도 하고 말이야.
1층 I열 7번 : 러닝 타임이 100분인데 23곡이면 너무 많지 않나? 등장인물도 많고, 음악도 많으니까 이야기가 깊게 들어가지 못하는 느낌이야. 이 작품의 핵심은 갈릴레이의 갈등이잖아. 종교가 모든 것의 중심이었던 17세기, ‘학자로서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쌓은 많은 것을 잃고 지옥에 가게 된다면 나라면 어떻게 할까’, ‘갈릴레이는 위대한 학자인가, 결국 세속적인 사람인가’를 좀 더 생각할 수 있게 여백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1층 I열 8번 : 창작진이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낸 것일 수도 있고, 갈릴레이처럼 교묘한 형식을 차용했는지도 모르지.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처럼 그래도 쇼는 계속 될 테고, 공연은 날마다, 시즌마다 진화한다는 데 희망을 두자고(웃음)!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