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우치스, 47분의 환각 체험
‘고립’이라는 주제어를 단 이 앨범의 매력은 역설적으로 한계를 모르는 그 음악적 확장에 있다.
글ㆍ사진 이즘
201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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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앨범 커버 위에서 뚜렷한 원색들이 적극적으로 충돌한다. 칼리 우치스의 첫 정규앨범 은 그런 앨범이다. 재즈와 알앤비, 레게와 네오 소울, 보사노바와 팝 등 다양한 장르들이 서로 잡아먹을 듯 거세게 부딪힌다.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뒤섞여 춤을 춘다. 가히 장르의 용광로다.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이 천재 싱어송라이터는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음악에 녹여내며 팝의 경계선 위를 자유롭게 뛰논다. ‘고립’이라는 주제어를 단 이 앨범의 매력은 역설적으로 한계를 모르는 그 음악적 확장에 있다.

 

그러나 종잡을 수 없는 그 혼종성의 기저에는 묘한 관능과 몽환이 은은하게 흐른다. 래퍼 비아(BIA)와 함께한 「Miami」의 그루브는 멀리서 들려오는 레게스러운 기타 반주에 맞춰 흐느적거린다. 밴드 인터넷의 멤버 스티브 래시(Steve Lacy)와 호흡을 맞춘 「Just a stranger」는 강렬한 비트에도 불구하고 기묘하게 중첩된 코러스와 어딘가 왜곡된 것 같은 전자 건반이 긴장을 준다. 「Tomorrow」에서는 아예 청자를 ‘유체이탈’시키기로 작정한 듯 연기처럼 퍼지는 보컬과 환각적인 신시사이저로 곡을 채운다.

 

신비스런 향초 연기 같은 음악의 뼈대를 확실히 잡아주는 다부진 베이스라인도 이 앨범의 매력이다. 특히 「Your teeth in my neck」에서 훵키한 베이스는 주술적인 보컬과 어우러지며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인트로 트랙 「Body language」엔 퓨전재즈 베이스 스타 썬더캣(Thundercat)이, 「After the storm」엔 무려 훵크 베이스의 전설 부치 콜린스(Bootsy Collins)가 각각 힘을 보탰다. 찰떡같은 베이스와 몽환적인 키보드의 장막, 그 위에 얹은 칼리 우치스의 녹아내리는 보컬은 그야말로 최고의 궁합을 뽐낸다.

 

반면 앨범의 주된 분위기에서 조금 떨어져 장르적 색채를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곡들도 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알앤비 「Flight 22」가 그렇고, 고향이 같은 가수 레이 콘(Reykon)과 손잡고 라틴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레게톤 「Nuestro planeta」 또한 얼마간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압권은 역시 데이먼 알반이 참여한 「In my dreams」의 ‘고릴라즈스러움’이다. 칼리 우치스의 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이 곡들은 앨범 구석구석에서 적절한 환기를 마련한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세상을 스케치하고(「Your teeth in my neck」), 현실도피적인 연애(「Tyrant」)와 집착을 노래하는 등(「Dead to me」), 전반적으로 앨범은 밝은 희망보다는 몽환적인 음악과 맞물리는 부정과 침잠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와 함께한 「After the storm」에서 칼리 우치스는 나름의 낙관을 내비친다. 구원은 결국 자기 자신에 있다는, 어찌 보면 단순한 메시지가 꿈같은 사운드 속에서 묘한 설득력을 얻는다. 언어로 표현되기 어려운 어떤 세계로 빠져드는 47분의 환각 체험. 감각이 녹아내리는 그곳에서 어쩌면 관능의 구원과 손끝이 스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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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우치스 #Isolation #고립 #Mi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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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