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 박민정의 첫 번째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 가 오늘의 젊은 작가 20번으로 출간되었다. 『미스 플라이트』 는 근무하던 항공사에서 노조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끝내 죽음을 택한 딸 ‘유나’와 평생 몸담았던 군대에서 관성처럼 비리에 가담하고 침묵했던 아버지 ‘정근’의 이야기다. 항공사, 승무원, 갑질, 인권 침해, 공군, 방산 비리, 내부 고발. 작가는 이 뜨겁고 복잡한 단어들을 성실한 자료 조사와 정교한 플롯으로 엮어 낸다. 『미스 플라이트』 를 통해 박민정은 그간 인정받아 온 ‘신중한 관찰자’의 모습에서 한 걸음 나아가, ‘유능한 스토리텔러’로서 독자 앞에 선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먼저 첫 장편소설을 펴내신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작가의 말’을 읽어 보면 2년 전 초고를 썼다고 하셨는데, 2016년의 초고와 2018년의 작품이 방향이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나요? 퇴고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미스 플라이트’라는 제목을 2018년에 짓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중요하게 언급되는 단어인데도 제목 삼을 생각을 못했던 것이지요. 제목을 짓고 나니, 유나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더욱 디테일하게 그려 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무원 동료와의 에피소드로만 언급되었던 ‘항공사 엑스맨 제도’와 아버지가 연루되었던 ‘KF-16’사건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손보게 되었습니다. 방향과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종류의 팩트와 디테일이 초고보다는 좀 더 확보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인 유나의 목소리와 중년 남성인 아버지의 목소리를 동시에 듣게 되는 경험은 낯설지만 소중하다고 느껴집니다.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듣는 경험은 많지 않으니까요. 작가님은 성별도, 가치관도 ‘유나’ 쪽에 가까울 것 같은데, 아버지 ‘정근’의 입장을 쓰면서 어떤 기분이셨나요?
저는 ‘정근’에게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익숙하게 보아온 인물이기도 하지요. 평생을 걸쳐서 말이에요. 작가 개인적 삶에서는 운 좋게도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비슷한 인물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데, 실은 대부분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들과의 사랑이 가능한가? 연대가 가능한가? 이 부분에 있어서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한 인물의 강력한 회심(回心)이 저에게는 필요했고, 그래서 그의 입장에서 소설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영훈과 혜진 부부와 유나가 사이의 연대감, 그들이 함께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은 세 사람의 삶에 중요한 순간으로 남습니다. 세 사람의 에피소드를 쓸 때 작가님이 가장 좋아했거나 마음 쓰였던 부분, 혹은 작품 안에서 중요한 지점이라고 의식하고 쓴 부분은 어떤 장면인가요?
아무래도 차를 돌려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는 그 장면, 유나가 훗날 느끼기엔 ‘잘못된 충동에 사로잡혔’고, 아저씨 스스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었던 감정에 휩싸여 유사 가정을 만들어 지낸 3일간의 장면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 장면에서 ‘유나는 유괴를 당하고도 가해자를 걱정하는 매우 선한 인물’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어쩌면 이 납치가 ‘자발적인 납치’가 될지도 모르며, 그것 또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조차 유나의 충동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머무른 시간이 흘러가고, 나중에 유나 엄마가 그 집에 찾아와서 집 정리를 해 주는 장면을 공들여 썼습니다.
작가님의 다른 소설들에서 잘 등장하지 않던, ‘무해하고 다정한’ 남자 친구가 등장해 조금 웃었습니다^^. 더불어 유나의 친구 철용 캐릭터도 이 힘든 이야기 속에서 숨 쉴 틈이 되어 주는데요. 애인인 주한과 친구인 철용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다른 소설에서는 ‘남자친구’조차 잘 등장하지 않는데, 저에게 있어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주로 대학 시절의 친구들을 모델 삼아 썼습니다. 제가 그려내는 이성애 연애관계란 대체로 폭력적이거나 불신으로 가득한데, 이 소설에서의 유나와 주한의 관계는 동등하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 관계에 가깝습니다. 이성애 관계에서 제가 꿈꾸는 판타지일 수도 있겠지요. 유나-아저씨의 관계도 그렇고 유나-철용의 관계도 그렇고 든든한 이성 친구가 가능하리라는 믿음(자신의 경험도 일부 넣어서) 이 반영된 장면들인 것 같습니다.
이번 소설로 항공사와 군대 내에 만연한 부정과 폭력성에 대해 묘사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셨는데요. 자료 조사를 하며 알게 된 사실 중 가장 흥미로웠거나 재조명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나요?
자료 조사를 하면서도 물론이지만, 출간 기사가 나간 후 달린 댓글들을 보면서도 이게 바로 제가 작품을 쓰면서 느꼈던 굴욕감과 수치스러움의 현주소구나, 생각했습니다. 대략 훑어보니 이런 내용들이 있더군요. “어차피 여자는 눈요기감이다, 외국 항공사에서는 승무원에게 비키니를 입혀 내보낸다”, “승무원이 구호요원이라면 전원 특전사 출신으로 채워라”, 제 인터뷰 핵심어만을 보고 그렇게 지껄이는 것을 보면서, 소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세상의 그 혐오스러운 부분을 ‘전경화’할 수는 있겠구나,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작가님께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유나를 만났다면, 그 이후로 이십 대 내내 유나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면 유나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었을 것 같으신가요? 평상시에는 유나와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눴을 것 같으세요?
저는 아줌마와 아저씨처럼 유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철용처럼 실없는 말을 지껄이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승무원이 되고자 할 땐 일단 말렸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 꿈을 이룬 후엔 누구보다 든든하게 격려해 주고자 노력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껏 친구들이 동의할 수 없는 선택을 하거나 실패와 성과를 이룰 때 역시 그러했던 것처럼요.
작가님이 이후에 관심을 가지게 될 소재들이 궁금합니다. 구상 중이신 다음 작품이나, 현재 주목하고 있는 소재로서의 사건이 있나요?
다음 작품은 실종된 삼촌과 이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모, 고모, 삼촌, 아주머니, 아저씨 등 가까운 이웃이나 친인척들에 관련한 비밀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밝혔지만 저는 제가 사회적으로 ‘의식화’ 되기 이전의 사건들에 마음이 쓰이고, 그 사건을 성인이 된 내가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배경은 몇 십 년 전과 지금을 오갈 예정입니다.
『미스 플라이트』 가 출간된, 뜨거운 여름입니다. 잠들기도 힘들고 식욕도 사라지는 이 계절에 작가님에게 힘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올여름을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요즘의 즐거움을 알려 주세요!
요즘의 즐거움이라면 무엇보다 낮잠 자기, 아침잠 많이 자기……잠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소설에 대한 리뷰를 찾아보는 것이 저의 길티 플레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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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플라이트박민정 저 | 민음사
뜨겁고 복잡한 단어들을 성실한 자료 조사와 정교한 플롯으로 엮어 낸다. 한국적 몰상식의 장면을 피하지 않고 응시하며, 그 위에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 것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