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진, 하태욱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고민할 기회’”
결국 각자가 각자의 파도를 타는 거죠. 부모 스스로가 행복하려면 자기 파도를 잡아서 타야 하는 거고요. 내가 재미있는, 내가 즐거운, 내가 잘할 수 있는 파도를 타면 되는 거예요.
글ㆍ사진 신연선
201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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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하태욱교수 오른쪽 차상진 센터장

 


14년 동안 ‘하이스코프(HighScope, 아이를 자발성을 가진 배움의 주체로 여기는 교육)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유아교육을 연구해온 건신대 대안교육센터 '우리동네' 영유아센터장 차상진, 대안교육과 혁신교육, 마을교육공동체 등을 연구하며 건신대 대안교육학과 주임교수를 지내고 있는 하태욱. 이 부부가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자녀의 초등학교 생활 시작 후 3년 간이었다. 영국에서 영유아기를 보낸 이들의 자녀는 한국에서 시작된 초등학교 생활을 무척이나 힘들어 했다. 그 동안 해온 연구가 무색하게 ‘남들처럼’ 키우려고 했던 부부의 선택이 자녀를 행복하지 않게 했던 것이다. 어느 날 부부에게 ‘우리 왜 이러고 있지?’라는 물음이 사이렌처럼 떠올랐고, 이들은 그때부터 다시 자녀의 본성과 우리의 행복에 집중하는 선택을 했다. 이들 자녀는 비인가 대안학교에서 중고등과정을 졸업했다. 

 

『남들처럼 육아하지 않습니다』 는 이 교육학자 부부가 어떻게 선택의 순간 자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는지, 그 기본적인 태도가 어떻게 남들과는 다른 육아라는 형태로 뻗어나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은 “이 책을 내고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그럼 당신들 자식은 어떻게 키웠어?’예요. 하지만 저희도 어려워요. 힘들죠. 힘들지만 하는 거고요. 어렵지만 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예요. 부모는 다 어렵고, 다 잘 안 되죠. 답은 없지만 이런 길도 걸어보았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이 힌트가 될지 모르겠다. 책에서 여러 번 얘기했듯 우리는 모두 ‘함께 배워가는 중’인 완벽하지 않은 각자이기 때문이다. 평일 오후, 서울 마포에서 부모 교육을 막 마치고 온 두 저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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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왜 이러고 있지?


강연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요즘 부모들이 관심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차상진 : 일단 관심 자체를 많이 갖고 계시죠. 대안교육에 대해서도 관심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고요. 지금 이대로 키워도 될까, 하는 걱정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특히 저는 영유아 부모 대상 교육을 많이 하는데요. 영유아, 초등까지는 소신대로 키운다 해도, 이대로 중고등학교에 간다면 아이가 낙오자가 되지는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셔요. 제가 꼭 하는 얘기는 대안교육이나 그 외의 교육이라는 건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라는 이야기예요. 오직 한 길만이 정도(正道)고, 이 길을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은 벗어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많이 드리죠.

 

책에서 이른바 ‘사다리론(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이 마치 사다리를 잘 오르고 있는 아이를 끌어내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말하는 부모에게 ‘길론’으로 대답한다는 이야기도 하셨죠.


하태욱 : 내 아이의 인생을 섣불리 잘못 인도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시는 건데요. 거기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죠. 먼저 내 아이의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일 수 있고요. 또 인생이 계획해서 된 게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야 해요. 잘 가고 있는 아이를 끌어내린다는 건 어쨌든 사다리를 올라가면 도착하는 한 곳이 있다는 전제가 있는 거잖아요. 흔히 명문대, 대기업으로 이야기되는 사다리인데요. 사실 우리는 길을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그때그때 선택할 뿐이고, 그것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러니까 사다리를 잘 올라가도록 돕는 것보다는 세상에는 굉장히 많은 길이 있다, 네가 그 중 선택을 할 때 조언이 필요하면 얘기 나눌 수 있다, 때로 혼자 걷는 게 외로우면 같이 걸어준다, 라고 할 수 있는 동반자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것이 제가 얘기하는 ‘길론’이에요.

 

여전히 불안함을 많이 갖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 내가 남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낯설게 느껴요.


하태욱 : 많이 낯설죠.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체감되지 않아요. 일단 저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요. 저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세대예요. 학교 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죠. 그에 비하면 지금은 어쨌든 대안학교, 혁신학교 등이 있고요. 조금씩 선택지가 늘어나고 있잖아요. 저는 그런 선택지를 더 많이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남들처럼 육아하지 않아도 된다, 라는 이야기죠. 더구나 이것이 그저 당위론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근거가 있고,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독자 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차상진 : 책에 아주 자세하게 내용을 넣었고요. 이를 통해 작은 데에 해답이 있다, 해답은 당신에게 있다, 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용기만 내면 해답은 당신, 그리고 아이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요. 사소한 데서 큰 게 만들어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아주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진짜 물어봐야 하는 질문은 다른 것이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25쪽)라는 대목이었어요. 부모됨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이런 질문을 먼저 하는 것, 참 중요하겠더라고요.


하태욱 : 저희 아이가 영국에서 태어나 8살 되던 해에 한국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러 왔어요. 이후 3년이 가장 힘들었어요. 이유를 생각하면, 우리도 남들처럼 육아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에요. 아이는 안 바뀌었는데 영국에서는 장점이라고 받아들여졌던 면들이 한국에서는 다 단점으로 받아들여진 거죠. ‘남들처럼’의 기준에 안 맞으니까요. 에너지 많은 아이가 산만한 아이로, 스스로 잘하는 아이가 혼자만 튀는 아이로. 저희는 이런 주장을 하고, 이런 공부를 했음에도 한국에 들어와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휩쓸려 간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 “우리 왜 이러고 있지?”했어요. 정말 정신이 번쩍 들었죠.


차상진 : 남들이 원하는 틀에 아이를 맞추려니까 아이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요. 아이에게 가장 미안했던, 부모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 싶은 때가 바로 그 3년이에요. 그 시간을 거치면서 저희 생각이 확고해졌고요.


하태욱 : 그 이후에 아이가 자기 본성대로 해나갈 수 있는, 다른 선택을 해나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지 깨달았어요. 아이도 행복하고, 우리도 행복한 길이 그것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죠.

 

그 3년 동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하태욱 : 학원을 보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해야 하는 일들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숙제를 잘 한다거나 시험을 잘 봐야 한다거나, 이런 거예요. 선행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요. 어쨌든 학교와 동떨어진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기본적으로 따라야 하는 질서가 있으니까요. 저희가 그 질서를 확 내려놓거나 떠나오지 못했던 거죠. 그러는 동안에도 아이는 꾸준히 ‘이건 아니야, 난 싫어, 나는 행복하지 않아’라는 신호를 보내왔던 것 같은데요. 저희는 어쩔 수 없다, 는 이야기로 그 신호를 무시해왔던 거죠.

 

책에도 자녀 교육에 있어 당위와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고 하셨잖아요.


하태욱 : 중요한 건 소통이고요. 대화도 많이 하고, 소통도 많이 했죠. 그러다가 사춘기 때는 또 벽이 확 쳐지더라고요. 힘들었죠. 하지만 아이를 보며 우리의 선택에 교육적인 의미가 있겠구나, 느꼈던 때가 있었어요. 아이가 고2때예요. 너무 불안해했어요. 비인가 학교를 나왔으니까 최종학력은 초졸이잖아요. 아이가 다닌 학교는 고등학교 2-3학년 때 인턴십이라고 해서 실제로 사회에 나가 관심 있는 분야의 일들을 한 학기씩 해보거든요. 그게 만만치 않았던 거죠. 이런 사회에서 초졸 학력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확 불안해진 것 같더라고요. 18살에게 얼마나 무거웠겠어요. 어느 날 펑펑 울면서 따지는 거예요. 무섭고, 길이 보이지 않는데 왜 부모님은 괜찮다고만 하느냐고요.

 

괜찮다고만 하는 부모를 원망할 만하네요.(웃음)


하태욱 : 저는 그때 ‘아, 그렇구나, 다행이다’했어요. 사실 그 고민은 각자가 언젠가 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은 살면서 꼭 해야 하는 건데 우리는 계속 뒤로 미뤄요.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 가서, 취업해서, 승진해서,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얘는 18살에 이미 그 고민을 심각하게 한 번 한 거죠. 눈물이 펑펑 쏟아질 정도로요. 이 아이가 이 시기에 이런 고민을 하는 건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는 그 고민해볼 기회를 아이들로부터 빼앗고 있는 거다, 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그 고민을 아이들에게 돌려줄 필요가 있어요. 그 두렵고, 막연하고, 힘든 시기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 더 교육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차상진 : 아이에게 잘 하는 말이 “네 인생이야. 너 좋으면 돼.”예요.(웃음) 조금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어도 말이에요. 그 태도는 아주 중요해요. 그런데 저희가 가는 길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부작용도 있고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가는 길에 있는 부작용도 생각해보면 어차피 위험은 양쪽에 다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한쪽 길은 가는 내내 힘들고 아이와의 관계도 나빠지지만 한쪽 길은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와 관계도 좋아졌어요.

 

 

각자가 각자의 파도를 타는 것


그러면서도 걱정되지는 않으셨어요?


하태욱 : 글쎄요. 소위 ‘내비맘’이라고들 하죠. 종착지를 정해두고 빠른 길을 부모가 선택해서 가도록 해요. 아이들이 그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건데요. 그렇게 해서 성공적인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고 해도 끝이 아니잖아요. 요즘은 명문대를 졸업해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요. 그 전에 이미 금수저, 은수저 싸움이 있죠. 저는 ‘서핑맘’ 이야기를 많이 해요.

 

서핑맘이요?


하태욱 : 일단 파도는 예측할 수 없어요. 서핑을 할 때는 그냥 몸으로 파도를 타야하죠. 그것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쌓이는 것이고요. 저는 실제로 방학 때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서핑을 해보라고 말씀드리는데요. 서핑할 때 옆에서 잡아주는 건 불가능해요. 잡으면 빠져요. 결국 각자가 각자의 파도를 타는 거죠. 부모 스스로가 행복하려면 자기 파도를 잡아서 타야 하는 거고요. 내가 재미있는, 내가 즐거운, 내가 잘할 수 있는 파도를 타면 되는 거죠. 아이를 파도에 잘 태우는 게 나의 파도라고 생각할 때 불행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이가 한 번만 빠져도 절망하는 거죠. 각자 파도를 타다가 나도 때로는 빠지고, 아이도 어떨 땐 짠물을 먹고 그러다가 다시 신나게 파도를 타기도 하고, 해야죠. 중요한 건 부모가 뭘 해줄 수 있다고 믿지 말라는 이야기고요. 부모가 뭘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사회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도 하니까요.


하태욱 : AI가 모든 걸 다 해준다고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의 절반이 사라진다고 하는 시대에 미래를 안다고 하는, 나에게 지도가 있다고 하는 태도는 아주 큰 오만이고요. 어찌 보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에요. 나는 모른다, 라는 태도가 오히려 정답이죠.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함부로 말할 수 없어요.


차상진 : 중요한 것은 나도 살아 있고, 너도 살아 있고, 우리가 살아 있는 그런 삶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부모가 뭐든 해줄 수 있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죠.

 

각자의 파도를 탄다, 함께 배운다, 는 태도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책에는 아주 작은 생활의 한 부분에서도 그런 태도를 강조하고 있거든요. 가령 놀이를 할 때도 “부모도 아이의 놀이에 뛰어들어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129쪽)고 말해요.


차상 : 저는 이른바 ‘엄마표 놀이’에는 조금 회의적이에요. 거기에는 아이에게 무엇이 재미있는지가 빠져 있거든요. 엄마표 놀이는 엄마 욕심인 경우가 많아요. 요즘 유행하는 놀이, 요즘 유행하는 교구, 이런 것들이죠. 엄마가 공부한 걸로 아이에게 보여주고요. 엄마가 기대하는 성과를 아이에게 기대해요. 하지만 똑같은 재료를 줘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거든요. 아이는 각자 다 다르니까요. 또 아무리 부모 눈에 별 것 아니어도 아이에게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죠. 그 의미를 찾아 읽어주는 게 중요해요. 같이 놀 때도 마찬가지예요. 부모 방식으로 놀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이 놀이 안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걸 읽고 그 의도대로 움직이게끔 해주는 게 중요해요. 어리석어 보이고, 웃겨 보이더라도 너무 재미있어서 깔깔거리게 되는 그 ‘놀이성’이 살아 있는 놀이를 해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역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존중’이 아닐까 싶네요.


차상진 : 맞아요, 그리고 존중이라고 할 때는 우리 모두에 대한 존중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해요. 아이에 대한 존중, 엄마에 대한 존중, 아빠에 대한 존중이 모두 있어야죠. 우리 모두는 존중 받아야 하고요. 우리 모두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해요.


하태욱 : 흔히 오해하시죠.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고요. 강연에서 질문을 받았어요. 한 분이 이런 말을 하셨어요. “나는 아이 감정의 하수구가 되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요. 아이는 어떤 감정이든 나한테 발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였어요. 그러다 아이가 부모를 때리기 시작했는데 그걸 받아줘야 하는지 고민이다, 가 질문이었어요. 하지만 그 존중에 아이에 대한 존중은 있지만 나에 대한 존중은 없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우리 사회가 존중이라는 말을 쓰든, 자기주도라는 말을 쓰든 오직 아이의 성공만이 의미 있어지는 상황으로 남게 될 거예요.

 

체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체벌이라는 ‘손쉬운’ 교정법은 대화와 설득이라는 ‘수고스러운’ 교육 방법을 배제하게 만듭니다.”(116쪽)라고 하셨잖아요. 원칙 있는 훈육 방법에 대한 말씀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하태욱 : 앞서 받은 강연에서의 질문에도 이렇게 대답했는데요. 일단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 중요하죠.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소통이에요.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기분이 드는지도 분명하게 아이에게 전달되어야 해요. “너의 분노는 내가 이해하겠지만 네가 나를 때리면 나는 이런 감정이 든다.”라고요. 그것 없이는 안 돼요. 또한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야죠. 폭력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대해서도 잘 소통해야 해요.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해요. 아이들은 한계를 정해줘도 살짝 넘어보거든요. 그럴 때 네가 민다고 해서 이 원칙이 밀리지는 않아, 를 분명하게 가르쳐줘야죠. 핵심은 소통이에요. 아이를 때리면 문제를 쉽게 멈추게 할 수는 있겠지만 실은 문제가 하나도 해결이 안 돼요. 그냥 덮여버리는 거죠. 무서움 때문에요. 하지만 아이가 언제까지 부모를 무서워하겠어요.


차상진 : 체벌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면 해요.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에 체벌은 없어야 하고요. 그건 폭언도 마찬가지예요.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네가 이런 행동을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인과관계를 충분히 설명해주고요. 그래서 다음에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죠.


하태욱 : 강연에서 “저는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때려도 되죠?”라고 질문하시는 분께 저는 “지금 제 강의 들으러 오셨으니까 제가 때려도 되나요?”라고 반문해요. 권력 관계 문제잖아요. 내 아이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맞았다고 하면 분노하면서 나는 내 아이를 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이가 나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든요. 이건 아이를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아이를 주체성을 가진 하나의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소통하고,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야 하는 문제가 돼요.

 

분명히 학교에서도 체벌이 금지되어 있고, 사회적인 인권 감수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가정 내 폭력, 부모의 체벌은 아직도 제대로 문제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하태욱 : 실제로 통계를 보면 아동폭력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일어나요.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자기가 폭력을 저질렀다고는 생각 안 하죠. 내 자녀이고, 내가 아이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한 일이니 문제가 없다, 라고 말해요. 또 폭력이 나쁜 걸 알면서도 왜 하느냐면요. 그만큼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게 없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즉각적인 효과 때문에 계속 하게 되는 대표적인 것이 중독약물이죠. 그렇죠? 그러니까 체벌을 그만두는 것은 마약을 끊는 것처럼 한 번에 딱 끊어야 하는 일이에요. 천천히 줄여나간다, 는 불가능해요. 저는 체벌이 그만큼 나쁜 일이고, 그만큼 역효과가 많이 나는 거라는 인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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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안타까운 것은 이런 책을 읽는, 이 인터뷰 기사를 읽는 분들은 문제의식이 있는 분들이라는 점이에요. 정말 공부가 필요한 분들은 관심이 없잖아요.


하태욱 : 맞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의미가 있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함으로써 확산이 된다는 거죠. 이것이 담론의 형성이잖아요. 내 입을 통해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고, 그 이야기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점점 더 전달될 때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로 전환되기 때문에요. 의미가 있죠. 과거에는 한 번에 사회를 전환시킨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는 지났어요. ‘마이크로 폴리틱스(micropolitics, 미시정치)’라고 하죠. 삶의 정치에서 어떻게 우리 목소리가 들리도록 할 것인가, 라는 고민을 늘 해요. 책을 쓴 이유도 그것이겠죠.

 

책에서 한 문장을 꼽는다면 “결국 한 인간이 사회화되는 과정의 질은 일상의 작디작은 경험이 모여서 결정되는 것”(66쪽)이라는 문장이었거든요. 지금 말씀과 닿는 것 같아요.


차상진 : “교육은 삶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여야한다”는 말이 중요할 거예요. 제가 공부하면서 계속 마음에 두고 있는 말이기도 해요.


하태욱 : 우리 교육의 큰 비극은 삶과 교육을 분리하면서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부모의 삶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 이유기도 한데요. 아이는 학교에서 잘 배워야 하지만 나는 막 살아도 된다, 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집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거죠. 나는 퇴근한 후 집에서 스마트폰 게임 하다가 잠들면서 아이에게는 게임하지 말라고 하면 절대로 안 먹혀요. 일 년에 책 한 권 안 읽으면서 책 읽으라고 하는 것, 안 먹힌다는 거죠. 내 삶, 아이의 삶, 우리의 삶이 아이의 교육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그것을 우리가 깨달을 필요가 있죠. 삶과 교육이 분리가 되니까 지금 삶은 희생되어도 되는 거잖아요. 교육을 통해 얻을 성취들을 위해 지금의 삶은 지옥이어도 되고요. 이것이 지금의 교육 지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여요.

 

변해야 한다는 것 알지만 걱정이 된다, 다른 길로 가기 불안하다, 세상은 아직 그렇지 않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께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하태욱 : 사다리론-길론과 더불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이 세상-저 세상론’이에요. 우리 아이는 이 세상에서 존중하며 키웠는데 저 세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저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가령 대안학교에 오는 아이들 중에 공동육아부터 시작해 오는 아이들과 일반 학교를 거쳐 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문화가 확연히 달라요. 1학년 때는 충돌이 굉장하죠. 하지만 그러다가 변해요. 일반 학교에서 온 아이들이 욕설을 쓰다가 이런 것을 안 써도 충분히 쿨하고, 충분히 괜찮구나, 깨닫는 순간 이 선한 영향력, 그 질서 안에 들어오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던 아이가 저 세상에 가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니고요. 저 아이들이 이 세상에 와서 살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가 문제를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달나라에 가서 사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사회 안에서 사는 거니까요.

 

대안교육을 연구하시면서 최근 느낀 변화는 무엇인가요?


하태욱 : 국내에 대안교육 운동이 일어난 게 벌써 20년 정도 됐고요. 혁신학교가 지난 10년 간 확산된 것도, 모두 대안학교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안학교가 굉장히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봐요. 왜 부모가 돈을 들여가며 저런 특별한 공간에 아이를 보내야 해? 공교육 안에서는 그게 왜 불가능해? 라는 문제제기를 했던 많은 교사와 학부모가 혁신학교라는 또 다른 물꼬를 틔운 거고요. 예전에는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주는 것만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어떤 선택지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느냐 하는 질적인 고민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다양한 대안들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또 그것의 문턱을 낮추고요. 돈 있고, 정보력 있는 중산층 부모뿐 아니라 모든 부모가 대안을 인지하고, 혜택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중요할 거예요.

 

공교육에 대한 제언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태욱 : 이제 산업 사회의 역군을 길러내는, 군사를 길러내는 방식의 교육은 유효기한이 다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공교육이 망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구질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늘 있죠. 다만 기존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요. 결국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인데요. 나머지를 다 AI가 해준다면요. 인간의 감정, 관계, 소통, 협력 등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가르칠 수 있겠죠. 이때 교육은 기존처럼 밑줄 긋고, 정답 고르는 식으로는 할 수 없어요. 직접 해봐야 알죠. 싸우고, 협력 안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경험해봐야 알 수 있어요. 우리에게는 그 경험들을 아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과제가 있어요. 교육이 그렇게 가야 한다고 봐요. 공교육의 핵심 화두 중 하나도 ‘마을교육공동체’라고 하는데요. 결국 마을이란 관계잖아요. 관계망들이 해체된 지금 사회에서 그것을 되살려내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요.


차상진 : 공교육이 틀렸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다만 공교육 안에서 다름을 인정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예요. 지금까지 얘기한 존중과 소통, 아이의 입장, 이런 것이죠. 그동안 이것들을 무시해왔다면 이제부터는 존중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학교 밖에서 아이를 키웠지만 학교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다르게 산 것이고요. 학교에서도 학교 바깥에서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틀렸어, 문제야, 가 아니라 그 인생도 훌륭할 수 있다, 각자 인생은 다 다르다, 라는 얘기를 해주면 좋겠어요.

 

이 책을 어떤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권해주고 싶으세요?


차상진 : 책에 한 이야기는 제가 하이스코프에서 배운 내용이 굉장히 많아요. 제가 14년 동안 하이스코프를 붙잡고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 제 삶과 제 사고를 변화시켰기 때문이에요. 교육학을 통해 내 삶을 바꾼 이야기라서요. 다르게 살고 싶은 분들, 어떻게 살면 좋은지 고민하시는 분들도 이 책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임신하신 분이나 이제 막 아이를 키우는 분들도 작은 도움이나마 받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말 작은 도움이요. 강연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강연을 한 번 듣고서 좋은 부모가 될 거라고 절대 기대하지 마시라는 거거든요. 제 얘기 중 딱 하나만 실천해서 바꾸실 수 있으면 성공이라고 말씀드리는데요. 책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태욱 : 남들처럼 육아하고 싶지 않은 사람, 이겠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많은데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게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용기도 나지 않아요. 이런 분들이 읽으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에는 오늘 저녁에 당장 아이와 할 수 있는 일도 있고요. 지향점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도 있으니까요. 이 책이 용기를 드리고, 힘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남들처럼 육아하지 않습니다차상진, 하태욱 저 | 휴(休)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고, 또 부모가 아이의 욕구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아이 주도 육아’가 훗날 아이가 주도적인 인생을 사는 데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다양한 연구와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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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처럼 육아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파도 #자녀의 목소리 #차상진 하태욱 #eBook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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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3354

2018.09.14

가끔 걷는 길이 외롭다느껴질때가 있는데..오늘 선생님들인터뷰를들으니아.앞서가신길을 내가 지금 걸어가고있구나..싶은생각에
위로받습니다
무리져서 웅성대는 엄마들의 모임에 휩쓸리지않으려 버티고있는 저를 볼때 이런 상황 자체가 가끔은 지칠때가 있거든요..
ㅎㅎ근데 인터뷰를 보면서..자꾸 웃게되네요ㅎㅎ
또 나자신의 삶을 도리어돌아보게됩니다
아이가 아닌 나를요 감사해요~^^오늘 좀 진짜로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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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