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털털한 배우 홍우진
걱정해봤자 당장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기적인 고민을 할 때도 가장 빠른 길을 찾아요.
글ㆍ사진 윤하정
20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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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처음으로 연극으로 제작돼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나미야 잡화점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기묘하고 따뜻한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소설은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 좀도둑 3인방이죠? 무뚝뚝하고 엉뚱한 것 같지만 순진한 데다 정까지 많은 이들은 무대에서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특히 아츠야 역의 홍우진 배우는 엄청난 연기 변신이 아닌가 싶은데요. 공연 시작 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홍우진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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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연습을 정말 재밌게 했는데, 확신은 없었어요. 우리만 재밌는 게 아닐까? 정식 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고 하니까 개막 전까지도 불안했는데, 첫 공연부터 많이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좋았죠.”

 

무대화하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은 했습니다. 초연이고 공연 초반인데 상당히 매끄럽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대본 읽었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요?


“그때도 불안했어요(웃음). 사실 소설은 일부러 안 봤고, 영화는 재미가 없어서 보다 중간에 포기했거든요. 제 취향과는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더 불안했죠. 리딩 때도 ‘마의 구간’이 있어서 어떻게 해결될까 걱정했어요(웃음).”

 

현재와 과거가 연결되는데, ‘시간’이 명확하게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관객들도 극장을 나서면서 그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배우들끼리도 많이 얘기했어요. ‘문’이 일종의 창구잖아요. 그럼 나갔다 들어올 때 문을 닫아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한 명이 완벽하게 이해 못한 상태에서 연기 하다 보면 결국 이상해지고. 그런 과정을 여러 차례 겪었죠. 개인적인 의견인데 그 부분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책으로 읽어도 한 번에 이해가 안 돼서 다시 앞으로 가서 읽어보고 하잖아요. 우리가 이해했으면 솔직하게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도둑 3명이 매개 역할을 하면서 ‘웃음’도 담당하는데,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습니다. 애드리브도 꽤 있는 건가요?


“애드리브는 아주 조금이요. 웬만한 건 연습 때 다 만들어졌고, 러닝타임 1시간 50분을 넘지 말자는 목표가 있거든요. 그래서 누군가 애드리브를 하면 무대 뒤에서 ‘너 그거 왜 했어!’ 질타해요(웃음). 에피소드는 공연 초반이라 너무 많아요. 훔친 돈을 나누자고 하는데, 쇼타 역의 강승호 배우가 가방을 안 들고 나와서 무대 뒤로 다시 나가기도 하고. 그 앞 대사가 ‘춤이나 출까’였는데, 가방 가지고 나올 때까지 계속 춤을 췄어요(웃음). 문이 계속 안 열려서 객석이 웃음바다가 된 적도 있고요.”

 

 

작품의 영향인지 배우들끼리 무척 친하다고 합니다.
MT를 가는 것은 물론이고 마니또 게임도 한다는데요.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그나저나 <공동경비구역 JSA>, <로기수> 등에서 강인하고 진중한 이미지가 강했던 홍우진 씨의 모습은 이번 작품에서 달라도 너무 다른데요(웃음)?


“최근 공연에서 저를 봤던 분들은 놀랄 수 있죠. 진중한 역할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처음에 <로기수> 할 때는 정말 민망했어요. 멋있는 척 무게 잡고 폼 잡아야 하니까. 연출이 부끄러워하지 말라며 소리 지르고(웃음). 평소 이미지는 아츠야와 많이 비슷해요. 연습 때 각자 맡은 인물에 대해 표현하는 발표 시간이 있었는데, 더블인 (원)종환이 형이 ‘제가 생각하는 아츠야는 우진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가만히 있을 때 무표정해서 모르는 사람들은 무섭다고도 생각하는데, 낯을 가리고 수줍음이 많은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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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의외인데, 그럼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인물은 누구예요?


“우울한 작품을 몇 번 했는데, 그때 가장 힘들었어요. <사이레니아>의 경우 배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청혼했다 사고로 여자는 죽고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에 등대에 들어가서 10여 년을 사는 인물이었어요. 객석이 30석 정도 되는 작은 극장에서 죽으러 무대 밖으로 나가는 역할인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30대 초반까지는 잘 몰랐는데, 일이 조금씩 많아지고 누적돼서 그런지 감정적으로 힘들면 몸까지 아픈 거예요. 그 작품 이후로는 감정적으로 힘든 역할은 다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공연에서 아츠야 같은 인물이 흔치는 않잖아요. 배우는 캐릭터 욕심도 있을 테고, 특히 관객들이 좋아하는 인물은 힘든 캐릭터가 많고요.


“맞아요, 그런 인물이 많기는 하죠. 그런데 저도 살아야 하니까(웃음). 영화나 드라마는 한 번 촬영하고 털어내면 끝인데 공연은 매일 해야 하니까. 재밌자고 하는 일인데 아프면서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리고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인물은 많이 해봤다고 생각해서 딱히 욕심은 없어요. 저는 같이 하는 사람이 누구냐를 가장 먼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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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굉장히 ‘심플’한데, 나미야 잡화점 같은 곳이 있다면 상담하고 싶은 고민은 있나요? 과거에라도 있었나요(웃음)?


“별 생각이 없나 봐요, 고민을 별로 하지 않거든요(웃음).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포기가 빨라요. 잘 까먹기도 하고.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 좋아하는 선배들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외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걱정해봤자 당장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기적인 고민을 할 때도 가장 빠른 길을 찾아요. 너무 안 풀리면 조언을 구하고, 죽어라 반복해서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배우생활을 하면서도 ‘이건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부분들이 보이기도 하고요.”

 

요즘 배우들 사이에서는 노래든 연기든 매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지면서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하지 않나 고민할 것 같은데요.


“그건 20대 때 고민했어요. 사람들도 만나고 연락도 하라고 하는데, 성격상 잘 못하기도 하고. 특히 공연하면서 만난 선배들, 이성민, 진선규 형처럼 제가 좋아하고 연기 잘한다고 생각했던 선배들이 묵묵히 자기 할 일 하면서 성공하더라고요. 연기를 확장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너무 목매거나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리고 극단(간다) 작품을 하면 단원들끼리 척하면 척, 착착착 맞아가는 조화로움이 있고, 그 안에서 느끼는 희열이 엄청나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배우들끼리 호흡이 굉장히 좋다고 하셨는데, 처음 대본을 볼 때는 불안했지만,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며 느끼는 매력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원작 소설이 스테디셀러라서 마니아가 아닌 관객들도 많은 것 같아요. 공연 많이 보는 분들은 공연에 방해될까봐 잘 안 웃는데, 사실 아무데서나 빵빵 터지는 게 저희한테는 큰 힘이거든요. 너무 숨죽여 보시면 어느 지점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피드백이 바로 오니까 객석과 함께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배우들도 많이 좋아해요.”

 

그럼 연극이 가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매력은 어떤 걸까요?


“연극을 본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소소하게 벌어지는 일들 사이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감동이 있다고. 책이 어떤지도 궁금하다고요. 예전에 <나와 할아버지> 할 때도 느낀 건데, 자극적이지 않고 수필처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것에서 사람들이 감동을 얻는구나 싶어요. 연극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그런 이야기이고,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것들이 무대에서 구현되는 신기함, 직접 보고 듣는 흥미로움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지금껏 객석에서 봤던 홍우진 씨는 정말 그 작품의 그 인물이었나 봅니다. 무대 밖에서 만난 홍우진 씨에게서는 강인한 인상도 강렬한 눈빛도 똑 부러지는 말투도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웃음). 바로 무대에 올라도 될 정도로 아츠야와 꼭 닮은 털털하고 어리숙한 모습에서 새삼 ‘배우’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제작진이 보기에 행복할 정도로 사이좋은 배우들이 꾸려가는 연극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10월 21일까지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1관에서 공연됩니다. 참, 홍우진 씨와 극중 ‘시간’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으나 제대로 된 설명과 이해는 불가능했습니다. 공연을 보는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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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