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까부는 ‘지금주의자’의 이야기 『한번 까불어보겠습니다』 , 번아웃에 빠져 제주도로 떠난 일러스트레이터의 에세이 『딱 한 달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 박완서 선생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책 『박완서의 말』 을 준비했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 『한번 까불어보겠습니다』
김종현 저 | 달
‘퇴근길 책 한잔’이라는 독립책방을 운영하고 계신 김종현 씨가 만든 에세이집이에요. 책방을 운영하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나 생각하고 계셨던 이야기들을 풀어 놓으셨는데요. 까불고 계시고, 정말 잘 까부세요(웃음).
여러 가지로 본인을 소개하는데 ‘자발적 거지’라는 타이틀도 있어요. 사업을 하기도 하셨는데 ‘이게 내가 살아갈 방식이 아닌 것 같다’고 해서 접고 돈은 안 되지만 ‘내가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모토로 독립 책방을 여셨어요. ‘퇴근길 책 한잔’은 마포구 염리동에, 이대입구역 쪽에 있고요. ‘퇴근길 책 한잔’이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독립 책방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요. 한창 신문 같은 데에서 ‘놀러 가면 좋을 법한 독립 책방 베스트’ 이런 기사에 실리는 힙하고 핫하고 작은 독립 책방의 선구주자였던 거죠. 그런데 책에서 보면 하루에 한 명도 안 올 때도 많았다고 해요. 작가님 스스로도 돈을 염두에 두고 운영을 하시지 않았고요. 마음이 끌리는 대로 문을 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했어요. 그렇게 까부는 일이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에세이로 알리는 것도 되게 매력적이다, 한 번쯤 놀러가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작가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채널예스>에 막 들어왔을 때 특집으로 독립 책방을 다루면서 찾아갔었는데, 정말 쿨한 분이셨어요. 이 분은 ‘싫어요’를 되게 잘 하세요. 어렸을 때부터 청개구리파였다고 하는데요. 남들이 볼 때는 ‘쟤는 눈치도 없고, 저런 식으로 살아도 되는 거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책에서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인용하셨어요. “굶어죽지 않고 감옥에 가지 않을 정도로만 여론을 존중하면 된다”고요. 정말 까불면서 사시는 분인 거죠. 그런데 그렇게 까불면서 사는 게 책에 계속 나오니까 하나의 가치관으로 인정이 되고 ‘저것도 하나의 인생의 가치관이 될 수가 있겠구나’라고 설득이 돼요.
본인을 ‘실존주의자’라고 하시기도 했는데, 제가 봤을 때 이 책의 키워드는 ‘지금주의자’ 같아요. ‘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해야 한다’는 주제가 쭉 이어지는 거죠.
그냥의 선택 - 『딱 한 달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윤동교 저 | 레드우드
‘제주도에서 한 달 살아보기’ 경험이 담긴 책이에요. 에세이를 바탕으로,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자신이 경험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문장이 정말 찰져요(웃음). ‘이 언니 너무 재밌다’ 하면서 깔깔거리면서 보게 되는 책입니다.
윤동교 작가님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고요. 결혼 9년차에 번아웃 증후군에 빠져서 힘드셨다고 해요. 대한민국의 직장인 10명 중 9명이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아주 특이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작가님의 경우에는 너무 무기력증이 심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해요. 이런 상태를 어떻게 개선할까 고민하다가,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가지고 공간을 확보하려면 물리적으로도 거리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대요. 그래서 제주도로 떠나셨는데요. 남편 분도 참 멋있어요. 한 달 동안 혼자 제주도에 머물고 싶다고 했더니 ‘그래, 너한테 필요한 거니까’ 하면서 100만 원을 입금해주셨대요.
제주도에 가서 좋은 거 보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힐링했다는 이야기가 담긴 책은 아니고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감정 상태가 변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 처음에는 정말 홀가분하고 신났는데, 조금 지나니까 관성적으로 불안해지는 거예요. ‘내가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서 방황을 하다가 뒤에 또 변하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정말 흥미진진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흥미진진합니다.
톨콩의 선택 - 『박완서의 말』
박완서 저 | 마음산책
마음산책에서 나오는 ‘말 시리즈’ 중의 한 권을 가지고 왔습니다. 기획과 디자인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시리즈 같아요. 표지가 예쁘고 안에 들어가 있는 사진들도 참 잘 고른 것 같고요. 이곳저곳에 게재되었던 인터뷰를 선별해서 묶어서 낸 책이에요. 『박완서의 말』 의 경우에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가져왔다기보다는, 이 책 속의 글을 통해서 박완서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잖아요. 그게 좋았고요. 그리고 이 신간을 빌미로 박완서 선생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은 제가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신간을 내시고 인터뷰를 하셨던 분이신데, 지금은 돌아가신지 7년이 지났는데, 더 이상 신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아쉬운 거죠. 그래서 『박완서의 말』 이 나왔을 때 반가웠고요. 만약 박완서 선생님의 책이 익숙하지 않은 청취자가 계시다면, 다시 한 번 선생님을 리마인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뷰이는 한 사람이지만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사람들이 인터뷰를 한 것인데, 인터뷰 전체의 퀄리티는 조금 들쑥날쑥해요. 한 교수 분이 던지는 질문들은 아주 무례하고 불쾌하다고 느꼈어요. 『서 있는 여자』 라는 소설에 대해서 ‘당신은 페미니스트이냐’ 부터 시작해서 던지는 질문들이 지금과 똑같아요. 그런데 박완서 선생님을 훨씬 전에 이런 질문과 원성을 받아내고 정말 이성적으로 명료하게 대답을 하시는 부분들이 실려 있어요. 아주 명료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일관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가 않고 다 옳은 이야기예요. 그런데 인터뷰어들은 그렇지가 않아요. 그래서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을, 이들의 도태됨으로 인해서 알 수가 있고요. 가장 좋았던 인터뷰는 마지막에 있는 두 인터뷰였는데요. 권영민 교수님이 한 인터뷰와 피천득 선생님과 함께 나눈 대담이 있어요. 그 두 개가 참 좋더라고요.
말이라고 하는 게 글이랑 다르잖아요. 글은 아주 정제되어서 많이 생각해서 계속 고칠 수도 있지만, 말이라는 것은 조금 더 즉물적이고 날 것의 느낌이 있잖아요. 말투 안에서 품성도 배어나오고 말 특유의 호흡 같은 것도 있는데요.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을 쭉 읽어 보면 말인데도 리듬감이 참 좋아요. 소설을 읽어 봐도 리듬감이 너무 좋잖아요.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