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여행 에세이, 내가 가이드가 된 것처럼
여행의 과정과 인상적인 장면들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자신만의 느낌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다.
글ㆍ사진 김주미(작가)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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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훌쩍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방송계에서는 여행 관련 프로그램이 많다. 나처럼 패키지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JTBC 「뭉쳐야 뜬다」부터 누가 더 알찬 여행을 다녀와 방청객의 마음을 훔쳤는지를 대결하는 KBS 「배틀 트립」, 여행 가이드들이 더 많이 참고한다는 여행 프로그램의 정석 「걸어서 세계 속으로」도 있다.

 

나는 여행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패키지여행의 장점과 닮아서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장점은 그 지역의 명소를 정확한 루트로 데려다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용 버스라는 실용적인 교통수단으로 말이다. 나처럼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겐 제격이다.

 

패키지여행의 장점 두 번째, 숨어 있는 소통의 신, 여행 가이드들을 만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학 전공자인 나도 감탄할 만큼, 그들이 여행 내내 보여주는 소통과 설득의 기술들은 교과서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실전 비법만을 담은 교본 같다.

 

세 번째 장점은 패키지여행에서 한 팀으로 묶인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짧게는 2박 3일 정도, 길게는 2~3주 동안 낯선 사람들과 같은 장소를 다니며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쉬는 체험은 흔하지 않다. 실제 여행을 가면 생각보다 다양한 직업과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여행이 시작될 때 받은 첫인상과 여행이 끝나며 남겨지는 끝 인상을 비교해 그들의 인생을 상상해 보고 이해해 보는 재미까지 얻을 수 있다.

 

성공한 여행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천편일률적인 패키지여행을 지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잠재적 여행객, 즉 시청자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여행 프로그램 스토리텔링에 필요한 요소들을 찾아보자. 먼저 시청자들이 안방에서도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도록 편리해야 한다. 낯선 곳을 여행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여행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이 이러한 제약을 잊고 잠시나마 두려움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필요하면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지도나 이용방법, 주의할 점을 담은 자막 등 여타의 프로그램보다 더 상세하고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여행지와 시청자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소통을 책임져 줄 출연자가 필요하다. 이들은 때론 여행지의 정보를 전하는 충실한 안내자가 되고, 때론 여행지가 주는 여러 감정들을 생생하게 체험하여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도록 돕는 존재여야 한다. 여행 프로그램들은 고정된 출연자를 두기보다는 매회 그 여행지와 가장 어울리는 새로운 출연자를 선택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마지막으로, 여행지 소개뿐만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고국의 사람들도 좋고, 현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보는 스토리텔링도 좋다.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에는, 시청자들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시각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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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은 여행 에세이에 접목시켜도 무리가 없다. 요즘은 여행을 떠나면 SNS를 통해 그날그날 자신의 여행 일지를 사진과 남기거나 여행을 다녀온 후, 인상 깊었던 장면과 경험을 묶어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자신만의 관점에서 여행지를 둘러본 후 차별화된 여행 책을 만들어 선보이기도 한다.

 

선망하던 여행지로 달려가고 싶은 독자의 욕구를 대신 충족시켜 준다는 점, 훗날 독자가 그곳을 직접 찾았을 때 ‘아, 여기 그때 그 책에서 봤었지’ 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도움이 될 여행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행 방송과 여행 책은 맥락을 같이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행 글쓰기에서 작가는 프로그램 속 진행자나 출연자의 역할까지 해야 한다.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라 작가만의 관점을 담아야 한다. 이미 잘 알려진 여행지를 방문하더라도 작가의 독특한 시각이나 관심사가 있으면 얼마든지 특별한 여행 글이 될 수 있다.

 

예전에 고등학교 동창과 제주도로 짧은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교육공무원으로 중학교에 근무하는 친구는 같은 길을 달려도 내 눈에는 띄지 않는 학교 건물들을 단번에 찾아냈다. 그녀는 제주도의 초등학교, 중학교 건물들이 소박한 규모에 알록달록한 색채로 꾸며져 있다는 점에 매료되었고, 차를 달리다가 개성 있는 학교 건물을 만나면 멈춰 서서 둘러보곤 했다. 반면, 책에 관심이 많은 나는 제주도에 유난히 많이 들어선 독립서점과 북카페들이 눈에 들어왔고, 볼 때마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분명 둘이서 내내 붙어 다니며 여행했는데 다녀와서 후기를 서로 들어보면 기억에 남는 장소와 그곳에서 가졌던 감정이 확연히 달랐다. 결국 여행에 관한 글쓰기는 여행의 과정과 인상적인 장면들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자신만의 느낌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 당장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TV 속 여행 프로그램이나 여행 관련 글들을 찾아서 즐겨보자. 패키지여행을 하다 보면 자유 여행 또한 하고 싶은 욕심과 용기가 생기듯이, 여행 글을 만나다 보면 나 스스로 가이드가 되어 전혀 색다른 여행을 기획하고 싶을 테니까. 언젠가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과 음식, 사람들을 묘사하고 싶거나 그곳에서 받은 영감을 잊을까 조바심이 나서 짐을 풀지도 않고 글부터 쓰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망한 글 심폐소생술김주미 저 | 영진미디어
짧은 문장부터 한 편의 글까지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팁을 비롯해,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지 등 글쓰기 기법과 ‘작가’로서의 태도를 모두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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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미(작가)

방송국에서 라디오작가와 TV 구성작가로 20년 일했다. 이후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을 비롯해 공공도서관, 문화원에서 글쓰기와 드라마 인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방송작가 시절부터 겪어온 글쓰기의 시행착오를 기록, 공유하고자 카카오 브런치 매거진 『방송 스토리텔링의 비밀』을 연재했고 브런치북 프로젝트 금상을 받았다. 현재 미디어 비평가이자 작가로 살며, 읽고 쓰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