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의는 얼마나 큰가
최근 『내 감정에도 그림자가 있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자니 이때의 일이 떠올랐다. 제목은 요즘 추세에 맞는 에세이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무려 칼 융의 분석 심리학을 다룬다.
글ㆍ사진 조영주(소설가)
20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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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3년 사이 3번 이사를 했다. 첫 번째 이사는 동생의 결혼으로 분가를 한 탓이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각기 이웃을 잘못 만난 탓이었다.

 

첫 번째 이사를 간 아파트는 바퀴벌레투성이였다. 불을 켤 때마다 사사삭 하고 바퀴벌레가 떼를 지어 움직이는 것이 영화 <조의 아파트>에 버금갔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새벽의 산책자였다. 누군가 새벽마다 복도에서 신음소리를 내거나 혼잣말로 욕설을 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느 여름 새벽, 너무 더워 복도 쪽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잤다가 누군가 내 방 창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순간에도 바퀴벌레는 떼를 지어 지나갔다) 이 때의 일로 나는 질려버렸다. 이사를 결심한 후 계약기간 2년을 채우자마자 다른 아파트로 도망갔다. 문제는, 그렇게 이사를 간 두 번째 아파트에서도 기이한 일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두 번째 아파트는 보일러를 안 틀어도 바닥이 따듯해지는가 하면 가끔 핸드폰 진동 오듯 바닥이 드르륵 드르륵 울었다. 처음엔 희한한 일이 다 있군 하고 넘겼으나, 자다가 전기충격을 받은 후로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가위눌림, 폴터가이스트 현상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같은 방향에서 열기와 진동, 전기 충격이 오자 깨달았다. 이건 공포소설의 영역이 아니라 내 주특기인 추리소설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니 옆집 아저씨, 혹은 아줌마가 밤낮 구별 안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공업용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기계를 바닥에 놓고 다뤘기에 기계에서 오는 열이며, 진동이 우리 집 바닥을 통해 있는 그대로 전달되며 가끔 전기충격파까지 온 것이었다.

 

바로 대응방안을 강구했다. 옆집에 가서 조심해 달라 부탁도 하고, 관리사무소에 민원도 넣어봤지만 소용없었다. 옆집 사람은 민원을 넣을 때만 “네, 네” 하고 잠깐 멈췄다가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기계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내심이 동났다. 운동하려고 산 아령을 옆집에서 소음을 낼 때마다 벽에 던졌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옆집 사람의 납품 마감 정신은 나의 원고 마감 정신보다 훨씬 굳건했다. 한 달쯤 소음을 두고 새벽마다 실랑이를 벌이고 나자 내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만 남았다. 그건, 강렬한 살의였다.

 

오래 전 수능 잘 보라는 의미로 친구에게 받은 손도끼를 한손에 불끈 쥐었다. 그대로 옆집 철문을 내리찍으려고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지금 뭘 하는 짓이지.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나. 기가 막혀 하며 집에 돌아왔다.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며 육두문자를 내뱉은 후 주섬주섬 이불을 챙겼다. 엄마 집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렇게 반 년 가까이 엄마 집에서 머물다가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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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 감정에도 그림자가 있다』 라는 제목의 책을 읽자니 이때의 일이 떠올랐다. 제목은 요즘 추세에 맞는 에세이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무려 칼 융의 분석 심리학을 다룬다. 왜,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원형이니 그림자니 하는 이야기 말이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나오는 건 OX퀴즈다. “내 감정의 그림자는 얼마나 클까?”라는 제목 아래 이어지는 56개 문항을 풀고 책에서 지시하는 대로 오각형을 그리면 홀쭉이형, 건장형, 우향형, 좌향형 등 크게 네 가지 성향으로 나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중 우향형(그림자 내향형)에 해당했다. “머리는 가볍고 다리가 무거운 경우”로 “비이성적인 신념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러므로 적절한 때에 자아가치관을 이루는 맥락을 정리해서 부적절한 신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몇 번이고 이사를 반복할 때  『내 감정에도 그림자가 있다』 를 접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감정을 잘 다스렸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해 버텼을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무엇을 아는 것과 그것을 해내는 일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 그래도 일단 이 책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절절한 때에 자아가치관을 정립”하는 건 잊지 않기로 한다. 만에 하나 ‘부적절한 신념’에 사로잡혀 살인이라도 저질렀다가는 말짱 도루묵정도가 아니라 인생 종칠 테니 말이다.

 


 

 

내 감정에도 그림자가 있다쉬하오이 저/리루팅 그림/최정숙 역 | 스핑크스
당신이 ‘감정의 그림자’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의식의 층위로 끌어올려 반복적으로 사고함으로써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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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