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되려면 먼저 기억해야 한다
아직 백 년의 역사와 관련 있는 인물들이 생존해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건설하는 데 있어 필요한 지식으로 배우기만 하면 되지만 내 부모님과 조부모님에게는 삶일 수 있습니다.
글ㆍ사진 모지현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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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억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기억하는 것은 그리 환영하지 않습니다. 한국에 있어 현대사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신채호 선생님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민족의 미래는 없다”는 말이 유행처럼 될 정도가 되었을까요.

 

일어났던 사건들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온전하게 책임져 마음을 다쳤던 사람이 회복되었다면 그 모든 것은 기억만이 아니라 추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현대사는 기억조차 힘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존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국정 교과서를 사용하는 ‘국사’에서 분리되어 나왔고 검인정 교과서를 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과목이었지만, 학생들은 과목명을 듣기만 해도 재미가 없고 암울하다고 했습니다. 대입 시험에서 한국사에 비하면 성적이 잘 나오는 편이니 택해서 듣는 것이었죠. 전 ‘한국 근현대사’ 수업을 담당하면서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우리 민족에 대한 어이없음을 심어주지 못하거나 울분으로 피가 끓게 만들지 못한 수업은 잘못된 수업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일본이나 부패한 지도자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실패한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상을 좀 더 살아본 지금 드는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미워하고 분노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수 있을까? 속이 시원해진 후 우리와 그들과의 관계 속에 남을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할 것 같았죠. 그들이 우리에게 용서를 제대로 구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것은 우리보다 그들 자신에게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그들이 용서를 구하지도 받지도 못한 가해자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자신들과 후손들의 삶을 계속 과거에 묶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의 모습과는 별도로 우리들도 과거에 우리 스스로를 묶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정말 일본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민주주의를 피로 물들였던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다 묻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풀고 불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객관적으로 돌아보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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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ㆍ1독립만세운동

 

 

이제 3ㆍ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 수립 100년입니다. 100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이 모양인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임정을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로 학자들은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 속에 대립하고 있고, 그 문제로 다투는 학자들을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 무슨 소리냐’며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국민들도 있죠. 그러나 한반도의 실정만 바라보면 ‘헬조선’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대도, 영국, 프랑스, 미국, 중국 등이 자신들에게 걸맞은 정치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백 년간의 혼란이 필요했던 세계사의 숨 가쁜 장면들과 비교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들은 상당히 짧습니다. 지금은, 누군가의 희생을 밟고 달려왔던 대한민국이 그 아팠던 자들의 눈물을 바라보고 닦아주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기를 지나는 중입니다. 그렇기에 그동안의 빛 같은 성장 뒤에 숨겨둔 어둠이 드러나 힘겹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한 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대립합니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집회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발전의 증거입니다. 혼란의 긍정적인 면은 다양성입니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 위진남북조 시대는 혼란스러운 분열기였지만 그 대립 속에서 그 어느 시기보다 경제 발전과 학문과 사상의 다양성이 나타났습니다. 다양성들을 하나로 모아내는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이 앞으로 우리 한국의 미래를 담당할 젊은이들의 몫일 것입니다. 근현대사 속의 우리 스스로와 화해해 잘 기억하고 물려주어 우리 후손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발전된 조국을 있을 수 있게 한, 고난의 시기이지만 그러기에 의미 있는 추억이 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면 그들의 조상으로서 우리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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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의정원 신년기념

 

 

아직 백 년의 역사와 관련 있는 인물들이 생존해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건설하는 데 있어 필요한 지식으로 배우기만 하면 되지만 내 부모님과 조부모님에게는 삶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서술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부족한 지식과 식견, 그리고 잘못된 관점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의견의 가운데에 서려고 노력했고 사실을 담담하게 서술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럼에도 혹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저자의 부족함 때문이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학교 현장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어려워했던 부분들, 그러면서 그 시대에 대해 말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어르신들에게는 생활이었지만 우리들에게는 역사가 되어버린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사에서의 결정적 계기를 기점으로 총 5개의 시간으로 나누어 기억을 꺼내보았습니다. 첫 출발은 이 책의 저술 동기이기도 한 100년 전에 벌어졌던 3?1운동의 배경에서부터입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을 끝으로 1920년대까지 마무리한 뒤, 두 번째 장에서 브나로드 운동으로 시작된 1930년대 한국의 기억은 1945년 8?15광복으로 끝납니다.

 

세 번째 장은 신탁통치 파동으로부터 출발해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 시대의 기억을 지납니다. 5?16군사정변으로 출발한 1960년대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가 네 번째 기억 부분이며, 북방정책 이후 2018년 BTS 현상을 거쳐 남북정상회담까지의 우리들 기억을 마지막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모든 부분들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시험이나 취업에 도전하는 분들, 아울러 대한민국의 지난 삶의 기억을 잊고 싶지 않은 분들과 한국의 100년 동안 100개의 장면을 떠올리며 그 모든 것을 각자의 삶에 추억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모든 분들과 함께 한국 현대사 100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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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집회

 

 

추억이 되려면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억이 추억이 되는 데에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 한국인이 한국 현대사를 ‘당한 자’로서의 스스로와 화해하지 못하는 아픔의 역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성장을 이루어낸 우리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이해의 역사로 바라보며 아픔을 극복할 수 있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지금 그런 아픔을 겪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을 그리고 우리 안에서도 혹여 그런 아픔을 아직도 겪고 있는 자들을 보듬어낼 수 있는 성숙한 우리가 되는 밑거름으로서의 역사로 100년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한국 현대사 100년 100개의 기억모지현 저 | 더좋은책
대한민국이 지나온 100년의 길을 한 권으로 꿰뚫고 싶은 사람, 대한민국의 살아 있는 역사의 맥을 쉽게 잡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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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