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요즘 너무 늦게 잔다. 9시가 넘으면 이제 자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이는 너무 쌩쌩하다. 아이의 놀이는 아직 정점에도 이르지 못한 느낌이다. 내가 현실적으로 지키고 있는 방어선은 자정이다. 12시를 넘기느냐 넘기지 않느냐.
저녁을 먹고 나서도 한참을 놀고 있으니 당연히 배가 고파온다. "뭐가 좀 먹고 싶은데" 하며 우유도 찾고, 젤리도 찾고, 토스트도 찾는다. 일찍 재워보겠단 마음으로 이미 이도 다 닦인터라, 이 닦았으니까 이제 그만 먹어야지 얘기하면, "먹고 다시 닦으면 돼지 뭐"하며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는듯 호기롭게 말한다. 그래 놓고는 다시 닦자할 때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건 함정.
체력이 점점 좋아지는지 에너지도 넘친다. "아빠 나 찾아봐요"하며 이불 속에 숨는데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침대 위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수십 번 반복하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수십 번 내달린다. 야심한 밤에 옆집과 아랫집을 의식하게 된다.
훈육이 필요하다. 10시까지는 자야 한다는 규칙, 이를 닦은 후에 우유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규칙, 밤에는 특히 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규칙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아이는 이런 규칙의 뒤에 있는 이유들을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다. 너의 성장과 휴식을 위해 (그리고 엄마 아빠의 휴식을 위해!)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는 것도, 치아의 건강을 위해 자기 전에 우유를 먹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도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은 다행히도 공감을 한다. 잠시나마 목소리를 낮추고 살금살금 걷는다. 하지만 크게 웃고 떠들고 뛰고 싶은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납득은 안 되고, 욕구는 사라지지 않으니 아이의 훈육은 설득과 이해로만 구성될 수 없다. 엄마 아빠의 부드럽던 태도가 사라지고 엄격한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 공기의 무거움이 훈육이라는 말의 의미를 마저 채운다. 그런다고 아이가 곧장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이 분위기가 두렵고 슬퍼서, 아이는 발버둥을 친다. "아빠 미워! 미운 사람이야! 저리가!" 소리 치거나 물건을 던지고 혼자 들어가 방문을 닫는 일도 생겼다.
그런 아이를 보면 괜한 스트레스를 준 건가 싶어 아이를 보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실 나도 아이와 노는 게 좋기 때문에, 밤에 같이 놀지 않으면 평일엔 하루 한 시간도 같이 놀 수 없으니까, 그저 아이도 나도 지칠 때까지 함께 놀고 싶다. 아빠가 힘껏 놀아주면 아이도 온 몸으로 즐거움을 발산한다. 인생 뭐 있나, 그런 순간들이 삶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아이의 훈육이 중요하다는 생각, 규칙을 수용하면서도 충분히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경험을 주고 싶은 마음, 타인을 배려하는 아이로 자라야 한다는 책임감이 즉시 고개를 든다. 그래서 짐짓 엄격한 태도를 갖추려 하다가도, 아이의 감정을 잘 받아주어야 한다는 조언들이 떠오르면 결국 나는 길을 잃고 만다.
훈육에 관해서, 육아서는 아이에게 일관된 신호를 주라고 한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울더라도 ‘안 되는 건 정말 안 되는 거’라는 신호를 일관되게 주라고 한다. 아내와 나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아주 어릴 때부터 울려 보기도 했다. 우와 이거 정말 효과가 있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표현하는 욕구가 다양해질수록 일관성은 쉽지 않다. ‘육아’라는 한 카테고리 내에 있는 원칙들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엄격해야 하고 동시에 아이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아야 한다는 상반된 원칙들을 적절히 구분해 활용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오히려 두 원칙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어떨 때는 엄하다가 어떨 때는 아이의 요구를 수용하는 식으로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원칙이란 것들이 대개 그렇듯, 제 나름의 근거가 있고 귀담아 들을 구석이 있지만, 일상의 지침이 될만큼 세밀하진 않다.
그리고 도저히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는 순간도 있었다. 잠을 늦게 자는 최근에, 지안이는 환절기 감기도 앓았다. 항생제 없이는 열이 잘 떨어지지 않는 체질이라 거의 늘 항생제가 포함된 약을 먹는데, 감기가 안 떨어져 약을 오래 먹어 그런지 눈가가 새빨개 지기 시작했다.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운 것처럼 눈 양옆과 아래쪽이 빨갛게 올라왔다. 그리고 아토피 같이 피부가 일어나는 느낌도.
병원에서는 아토피는 아니고 약을 오래 먹어서 면역력이 떨어져 그럴 수 있다고 했다. 피부과에서 안연고 정도만 처방받았다. 하지만 약을 계속 먹고 있으니 아무리 안연고를 바른다고 나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약을 그만 먹이자니, 약을 중간에 그만 먹였다 다시 열이 올랐던 지난 경험이 떠올랐다. 항생제는 중간에 끊으면 안 좋다는데 하며 자책했던. 그러니 도무지 빠져나갈 방도가 안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울면 눈가가 더 빨개지며 짓물렀다. 지안아 일찍 자야지, 지안아 우유는 그만 먹어야지 말하면 “놀고 싶어, 자고 싶지 않아!”하며 우는데,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며 엄격해질 수 없었다. 그저 원하는 대로 해주고 눈물을 흘리지 않게 관리를 해주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울면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는 경험을 쌓아주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내 마음이 너무 단단하지 못한걸까. 우는 아이가 안쓰럽더라도, 짓무른 눈가가 마음에 밟히더라도 보다 확실히 해야하는 것일까. 혹은 규칙이니 훈육이니 너무 얽매이지 말고 아이를 향한 그 순간의 마음에 충실하면 되는 걸까. 남들은 그렇게 하고 있는걸까. 내가 부모로서 잘 하고 있는지를 자주 생각해보게 되고, 나름대로 자긍할 만한 부분들이 있지만, 결국 나는 불안한 마음을 품게 된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것일까.
흔들흔들 흔들흔들. 답이 보이지 않아 멀미가 날 것 같으면서도 다행히 나름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의 웃음에 있다. “아빠 미워, 미운 사람”이야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먼저 다가와 볼 비비며 배시시 웃는 아이. “아빠, 사랑해요” 말해주는 아이. 내가 팔 벌리고 와락 안으면 같이 꼬옥 힘주어 안아주는 아이. 그래도 아이와 나의 관계는 튼튼하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들. 관계가 괜찮으면 다 괜찮다. 육아는 기니까, 혹 잘못된 길로 들어갔더라도 관계만 괜찮다면 우리는 손잡고 빠져나와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 믿음으로 오늘의 불안을 넘어간다.
부모는 아이를 '당장' 변하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결국' 변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훈육은 지나치게 하면 안됩니다. 부모의 힘은 오래, 꾸준히 만나는 데서 나옵니다.지나친 훈육은 변화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관계'를 망가뜨려요.
- 서천석,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10쪽
원칙과 일관성은 중요합니다.그러나 이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자신에게 좌절감을 주고 화까지 나게 한다면내려놓을 때입니다.
- 서천석,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32쪽
잔소리할 일이 많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아이와 관계를 더 좋게 가져야 합니다.인간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만 조언으로 들리는 법.잔소리를 꾸준히, 오래 하기 위해서라도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관계를 훈육의 앞자리에 두는 것이 옳습니다.
- 서천석,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42쪽
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현준맘
2019.04.12
초5 아들은 오늘 결석을 하고 사월의 잔인한 봄을 맞이 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으며, 녀석이 생각나고, 아들이 형편없는 체력으로 감기를 달고 사는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스마트폰을 사 준 이후....늘 세상이 궁금해 잠을 잘 못자니 더더 심해진거였다는 결론을 내고도 제 자신부터 핸드폰 없이 불안하니 답답합니다
제 상황이 너무 이입되는 글에 짠한 마음이 듭니다
열감기로 짜증을 부리다가도 엄마까지 감기 걸리면 안된다고 걱정해주는 아들이...생각나고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