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Q’라는 제목으로 초연됐던 연극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몸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어요. 특히 마지막 부분에 감정적으로 계속 치닫는 공연이라 끝나고 나면 멍해져요. 바로 털고 나갈 수 있는 공연이 있는데, 이번 작품은 여운이 남더라고요.
객석에서 볼 때도 이래저래 힘들겠다 싶습니다. 작품에 참여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임병근 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반듯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인데요.
초연을 못 본 상태에서 대본을 봤는데, 쭉쭉 읽히더라고요. 그런데 소재가 자극적이고 아이가 있다 보니 참여하기까지는 많이 신중했어요. 작품이 좋으니까 그것만 보자 싶다가도, 이입이 되니까 힘들더라고요. 알게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고. 막상 연습 들어가서는 초연 때보다 드라마적으로나 연출적으로 보강을 많이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제가 악역을 안 맡아본 건 아닌데, 그런 인물을 할 때 관객들이 더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뭔가 바른 이미지, 정석적인 캐릭터를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등장인물이 모두 캐릭터가 세서 힘든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
임병근 씨의 답변은 예상외였습니다.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영화와 달리 공연에서는 범죄물 자체를 많이 다루지 않잖아요. 빠른 장면 전환도 안 되고, 싸우는 장면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힘드니까요. 무대라는 점을 감안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이 덜 되고, 배우들의 경우 강도는 낮아 보이지만 부상의 위험은 클 것 같고요.
맞아요. 사실적으로 표현되면 좋을 텐데, 무대라는 공간이다 보니 저희가 표현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라서 수위를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얘기를 많이 했어요. 잔인하고 피도 나고. 싸우는 장면이 많다 보니까 다칠 수 있는 요소도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연습 때 무술 선생님을 초빙해서 배우고,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고 지금처럼 맞춘 거예요. 관객분들이 봤을 때 어떨지 모르겠는데, 초연보다는 유하게 표현했다고 해요.
모니터 자체가 이렇게 많은 공연도 없을 텐데, 화면이 아주 조금 늦게 나오잖아요. 미리 찍어둔 건가, 의심하며 봤습니다(웃음).
아니에요, 실시간이에요(웃음). 배우들이 직접 촬영하니까 현장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 장면만 있던 걸 늘린 거예요.
극 자체는 물론이고 영상에 액션까지 신경 쓸 게 많네요. 등장하는 네 명의 지향점이 각각 다른데, 피디는 어떤 인물인가요?
이 극에서 모든 판을 짜는 사람이죠. 목표는 한 가지인데, 그게 처음부터 드러나지는 않고요. 결국에는 내 아들을 죽인 모든 사람들,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달리고 있는데, 방송을 통해 명분을 만드는 거죠. 자신의 목표점을 향해 각 인물을 대하는 모습도 조금씩 다른데, 이 판에 뛰어들 때 이미 자신의 삶도 포기했다고 생각해요.
네 사람 모두 온에어와 아닐 때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임병근 씨는 무대 안팎의 모습이...
달라요, 많이 달라요(웃음). 관객들이 무대에 있는 저를 보고 젠틀하다거나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는 캐릭터로 있어야 하니까. 아내는 집 안과 밖에서도 다르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워낙에 아주 활달한 성격은 아니에요. 베이스는 약간 가라앉아 있는 편이고 얌전한 스타일인데,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또 다른 모습이죠. 장난기도 많고.
지난 2015년 <데스트랩> 때 인터뷰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첫 연극이었잖아요. 이후 꾸준히 연극에 참여하시네요?
굳이 뮤지컬, 연극 나누고 싶지 않아서 저는 어디 소개할 때도 ‘배우 임병근’이라고 해요. 무대예술은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춤만 빼고. 좋은 작품이면 언제든 연극은 하고 싶어요. 그래서 작년에 <생쥐와 인간>도 했고.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배우로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연기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서울예술단 작품도 참여하면 재밌고 상징적일 것 같아요.
그렇죠, 어찌 보면 제 고향이니까. 예술단 나온 이후에는 한 번도 작품을 함께 하지 못했는데, 예술감독님도 언젠가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불러달라고 했어요.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네요.
가장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잖아요. 놓치지 않고 꼭 하고 싶은 작품이나 배역도 있을 텐데, 요즘 작품 선택할 때는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대본이 가장 중요하죠. 저한테 어울리느냐가 아니라 작품이 좋으면 그 안에 있는 캐릭터도 좋거든요. 그래서 하고 싶은 작품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정극도 해보고 싶고,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고전작품, 선생님들과 작업하는 작품도 해보고 싶고요. 가장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나이는 맞는데, 나이가 들면서 배역에서 오는 딜레마가 있어요. 작년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해운대>를 하는데, 인물이 21살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못한다고 했어요. 예전에는 나이대 가리지 않고 연기했는데, 지금 나이가 그렇게 많은 건 아닌데도 너무 어린 역할을 맡으면 굉장히 창피하고 쑥스러워요(웃음). 보신 분들이 ‘이질감이 들지는 않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좀 중후한 캐릭터를 많이 맡게 되죠. 그래도 아직까지는 10대가 아니면 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10대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얼굴이 동그란 편이라서 많이 어려보이잖아요(웃음).
그렇잖아 ‘교복 입는 작품 한 번만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오는 관객분들이 있어요. 극에서 과거를 잠깐 회상하는 장면이면 모를까, 계속 교복을 입고 있다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아요(웃음). 어려 보이는 건 마이너스가 될 때도 있고, 플러스가 될 때도 있어요. 당황스러울 때도 있고. 그런데 몸은 제 나이라서 공연을 할수록 하나씩 망가지는 것 같아요(웃음). 작년에는 속이 많이 망가져서 계속 병원에 다녔거든요. 그래서 저는 꼭 쉬는 시간이 필요해요. 연달아 공연을 하다 지친다 싶으면 쉬어줘야지, 그러지 않으면 어느 순간 망가져 있더라고요.
이른바 겹치기도 잘 안 하잖아요.
동시에 두 가지를 못하는 사람인 거죠. 이번에는 어떻게
9월 말이면 두 작품 모두 마무리되는데, 계절적으로 여름도 끝나고 가을을 맞고 있겠네요. 그때 어떤 모습일까요?
어디 가 있지 않을까요? 정신없이 달리다 그때는 어딘가에서 쉬고 있을 것 같아요(웃음).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