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여름마다 생기는 ‘한포진’ 때문에 피부과를 찾았다. 환자가 아무도 없었다.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간호사 둘이, 내 입장에 좀 놀란 눈치였다. 손님이 오긴 올 테지만 정말 올 줄은 몰랐어요, 하는 듯이. “여기, 피부병 진료 하나요?” 피부과에서 이보다 더 바보 같은 질문은 없을 거다. “네.” 짧은 대답. 아무도 없는데, 5분 즈음 기다렸다. 문 열린 진찰실에서 사부작거리는 의사의 기척이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왜 뜸을 들이지? 바쁜 척 하려고?
맞다. 나는 웬만해선 의사를 믿지 못하는, 까다롭고 불우한 환자다. 돌팔이 의사가 있는 병원이 분명하다며 일어서려는 순간, 내 이름을 불렀다. 들어가니 머리카락이 몇 올 안 남은, 나이든 의사가 앉아있었다. 손톱 주변을 보여주며, 한포진 때문에 왔다고 말했다. 조그맣게 수포가 올라오는데, 날이 더워지면 더 심해지고 연고를 바르면 금세 들어가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의사는 살펴보고는 한포진이 맞다고 했다. 그리고는 본색을 드러냈다. 이런 게 생기면 바로 와야 한다, 늦게 오면 치료가 안 된다! 호통을 치기 직전이었다. 이 의사,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잖아? 누구든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 난 타입이다. 언제부터 그랬느냐 묻길래, “어제 생겨서, 오늘 온 건데요” 답하니 하려던 말을 삼켰다. 피부를 확대해 볼 수 있는 렌즈를 갖다 대며, “여기 봐요, 여기를! 여기, 수포 보이죠?” 호통을 쳤다. 수포가 화면에 나타나야 하는데 잘 안 보였다. “어디요?” 내가 질문하니, 약간 당황했다. “가장 심한 데가 어디요?” 새끼손가락이라고 짚어주자 그곳에 렌즈를 갖다 댔다. 역시 잘 안 보였다. 심하진 않은 것 같으니, 약 먹고 연고를 바르면 날 거라고 말하는 의사. “전에는 연고만 발랐는데요?” 내 대꾸에 의사는 네까짓 것이 뭘 아느냐는 듯 나를 쳐다보고, 나는 당신이 내 고통을 어찌 아느냐는 듯 그를 마주봤다. 잠깐의 정적. 병원은 머리카락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처럼 조용하다.
의사가 별안간 책상에 놓인 백과사전을 들더니, 한포진 섹션을 펼쳤다. 끔찍하게 심한 사례가 사진으로 찍혀있다. “이런 거,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게.” 나를 겁주는 의사. 내 수포는 육안으로 식별이 안 될 정도로 아직 작은데? “한포진은 완치가 없고, 스트레스와 술에 취약해요. 알아요?”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술 마시면 안 돼. 이게 아토피성이거든.” 은근히 말을 놓는 의사. 나는 그만, 묻지 않아도 될 것을 물었다. “한포진은 왜 걸리는 거예요?” 의시는 한심해 못 견디겠다는 듯, 그리고 이제야 제 할 일을 찾았다는 듯, 볼펜을 들어 한자를 썼다.
의사 : 한(汗), 이게 한자 ‘한(汗)’이 잖아요. 알아요? 응? 이게 뭐예요? 이게 ‘땀 한’이라 고. 땀 한! ‘포진’은 뭐야? 물집이잖아. 땀이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못 나오니까 안 에서 수포가 되는 거라고요. 본인이 손발에 땀이 없다고 생각하죠?
나 : 네.
의사 : 없는 게 아니에요. 못 나온 거지! 다른 데도 땀이 안 나요?
나 : 아니요. 나요.
의사 : 거 봐.
나 : 땀구멍이 막힌 거네요. 며칠 전부터 허벅지 뒤에 닭살처럼, 오톨도톨하게 뭐가 만져지던데, 그것도 땀구멍이 막혀서 그런 거겠네요?
의사 : 아니, 그건 늙어서 그래요!
나! 원! 참! 이 늙은 의사에게 “늙어서 그렇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의사는 그 뒤로도 무슨 성분이 들어간 바디로션이 좋은지 한참을 떠들었다. 늙어서 그렇다는 말을 두 번이나 더 강조하면서. 그의 설교를 들으며, 좀 울적해졌다. 손가락이 가렵고 부은 느낌이라 불편한데, 날도 더운데, 늙어서 그렇다는 말이나 듣고, 평생 못 고치는 병이라고 겁주고, 한자 쓰면서 으스대고… 쏟아지는 잔소리를 견디며, 맞은편 책장을 보니 가족사진이 죽 놓여있다. 돌 사진, 결혼사진, 여행 사진들. 이 사람에게도 가족은 있어 저렇게 경조사를 치르고, 때 되면 여행을 다녀와 사진이 걸리는구나.
약을 먹으면 빨리 낫는다고 했지만, 나는 한사코 연고만 처방해 달라 했다. 그는 연고의 종류(1단계부터 5단계까지)까지 한참 설명하더니, 3단계로 처방하겠다고 했다. 긴장하거나 스트레스 받지 말고, 환부가 물에 닿지 않는 게 좋으니 세수할 때도 비닐장갑을 끼고 하라고 했다. 미친놈! 속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자기가 한번, 비닐장갑 끼고 세수해보라지?
나는 비닐장갑을 끼고 세수하지 않았고, 약을 먹지 않았고, 나흘 동안 연고만 잘 발랐다. 의사도 병을 알지만, 병을 오래 겪어본 환자 역시 병을 안다. 깨끗해진 손가락을 보니, 영 돌팔이는 아니었나 보다. 그나저나 저이는 원래 어떤 의사가 되고 싶었을까? 그리고 나는 어떤 시인이 되고 싶은가?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많은 의사와 시인이 탄생할 것이다. 탄생은 탄생이지만, 살아있다고 무조건 산 것일 순 없다. 살아있어도, 죽은 것일 수 있다.
“쓰여진 글도 병이 들 수 있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중에서. (46쪽)
집으로 가는 길에 생각했다. 나는 적어도 책 속에서 책 밖을 향해, 가르치려고 안달난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사실 내가 의사에게 바라는 것은? 아픈 곳을 알아주는 것, 그 뿐일지 모른다. 아는 것 말고, 알아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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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마르그리트 뒤라스 저/윤진 역 | 민음사
글에 관해, 글로 쓰인 것에 관해, 글을 쓰는 행위에 관해 말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책에 대해서, 그 책을 쓰는 저자의 고독에 대해서 말한다.
박연준(시인)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