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우 시인과 인터뷰하는 내내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생각났다. ‘그러니까 그 무렵이었다… /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시어들이 첫 번째 시집 『내가 정말이라면』 에 모였다.
유이우 시인은 201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도서관에서 기간제로 일하면서 점심시간에 냈던 시가 등단작이 되었다. “수식과 수사의 그늘이 사라진 피부 언어” “상상과 풍경의 드넓은 교호 작용” 등의 평가를 받았던 시인은 “본다. 보고 있던 것을 쓴다. 다만 남다르게”(김소연 시인 추천사 중). ‘리듬’과 ‘마음’에 몸을 맡기자 그의 시가 두둥실 떠올랐다. 시인의 말처럼 시어의 근원을 따져 들어가지 않더라도 “시적인 상태를 스스로 주문하지 않을 때 진짜 시적인 상태가 되고, 시를 찾아내야지 하지 않을 때” 시가 온다.
꿈을 이룬 시집이에요
김소연 시인이 추천사를 썼어요. 어떻게 연이 닿았나요?
2010년 가을에 문지문화원에서 김소연 선생님 수업을 처음 들었어요. 광화문 교보문고에 처음 간 게 스물세 살 때였는데, 시 코너에 저랑 같은 이름의 시인이 있는 거예요. 제 본명이 ‘김소연’이거든요. 관심이 생겨서 검색했더니 마침 시 창작 강의를 하신대요. 두 번째 수업부터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제가 처음 쓴 시를 보시고, 등단하는 과정도 보시고, 문단의 누구보다도 저를 잘 아시고 제 역사를 보신 분이라 추천사를 부탁드렸어요.
프로필 사진을 하시시박 작가님이 찍었어요.
첫 시집이 나오면서 시집에 들어갈 사진이 필요했어요. 하시시박 작가님이 한국에 처음 소개될 때부터 사진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좋아했던 포토그래퍼에게 첫 프로필 사진을 요청하면 저한테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 직접 메일을 보냈어요. 다행히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감사하게 찍었어요.
표지 그림은 몸에 새겼다고 들었어요.
카와요니 작가님은 타투이스트에요. 인스타그램에서 그림을 봤는데 특이하고 예술적이더라고요. 드로잉이 제 시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작가님께도 직접 연락했어요. 표지를 맡기게 된다면 그림도 몸에 새기면 재밌겠다 싶었는데 진짜 문신을 하게 됐고요.
첫 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작가님이 직접 연락해서 만드신 거네요. 자기 표지를 몸에 가지고 다닌다는 게 정말 멋져요.
꿈을 이룬 시집이에요. (웃음) 보통 표지 그림이나 추천사는 출판사에서 제안을 주셨을 텐데,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하겠다고 했으니 담당 편집자님도 힘드셨을 거예요.
시집의 물성을 보고 나서는 기분이 어땠어요?
지인들에게 줄 것까지 합해서 한꺼번에 택배로 왔는데, 냉장고 같은 게 거실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었어요. 다음날이 되어서야 저작자가 아닌 독자로서 읽히더라고요. 자기 책이 나오면 보기 싫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저는 아직도 혼자 제 시집을 정독할 정도로 좋아해요.
시를 많이 고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요?
거의 안 고쳐요. 등단 3년, 4년 차까지만 해도 10분 내외로 한 번에 빨리 썼었는데 이후로는 그런 광기가 떨어졌는지 빨리 안 써져요.
시집에 실릴 시를 고르는 과정은 어땠어요?
처음에는 시 스타일이 다 비슷하다 보니까 출판사에서 시 구성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산문시를 몇 개 넣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못 한다고 했죠. 리듬 타면서 쓰는 게 제가 좋아하는 거고 제가 쓸 수 있는 방식이라서요. 그러면 그동안 발표한 시적인 산문이라도 수록하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오래전의 기린」이고요. 초고 단계를 박준 시인님이 봐주시고 1부부터 4부까지 나눠주셨는데, 결론적으로는 부 구분 없이 구성하게 됐어요.
연을 짧게 치는 시가 많더라고요.
빨리 써서 그런 것 같아요. 후루룩 쓰고 막히면 저는 그 시를 버려요. 리듬감에 성공한 시만 살리고요. 「오래전의 기린」이 처음으로 길게 써 봤던 산문이에요.
일본어학을 전공했다고 들었어요. 어학이나 문학에 관심이 있었나요?
글을 쓰진 않았지만 메모지에 적거나 SNS에 남긴 짤막한 글들이 있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혼자 서너 줄로 정리했던 것도 있고요. 그런 게 다 문학적 행위였던 것 같아요.
음악과 피아노가 연상되는 시도 많았어요.
항상 음악을 들어요. 사람들과 어울릴 때 빼고 혼자 있을 때는 거의 자고 일어나면 음악을 바로 틀어요. 스케줄 없을 때는 누워서 눈 뜬 채로 종일 음악을 들을 때도 많아요. 매일 듣고 싶은 노래도 다르고요. 항상 음악을 듣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리듬감이 있는 것 같아요. 리듬감이 연을 나눌 때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유이우라는 필명이 우유에서 나왔다고 말하기도 하고, 깃털 우(羽) 자를 썼다고 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우유를 좋아해서 우유를 거꾸로 한 게 맞아요. 투고를 매번 다른 이름으로 했었어요. 이번에는 제가 좋아하는 단어로 해보자 해서 넣었는데, 당선되고 나서 한자를 정해야겠다는 생각에 한자 사전을 뒤져가면서 찾았어요. 시에도 허공을 나는 이미지가 많아서 ‘우’자는 한 번에 정했고요. 나머지는 놀 유(遊)를 썼는데, 성씨로 쓰기에는 필명이라는 게 바로 보이잖아요. 환상을 지우지 않기 위해 시집 이름에는 한자 병기를 하지 않았어요.
한 시집으로 묶여 나올 때는 예전에 썼던 것도 들어가게 될 텐데,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나요?
10년 전 싸이월드 일기에 쓴 문장들이 시에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그런 문장들조차 지금 쓰는 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의도나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을 풀어내려고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이 잘 안 변하잖아요. ‘나’를 쓰기 때문에 계속 시가 변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등단 전에는 선생님이 고치면 좋겠다고 해도 시를 고치지 않았다고요.
고집 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웃음) 지적을 받아서 고치면 점점 자기 시가 아니게 되는 것 같아요. 발전하려면 칭찬을 많이 듣고 자기가 잘하는 걸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못하는 걸 지적받고 계속 고치다 보면 자기 것이 아니게 되잖아요. 좋은 것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만 들었던 것 같아요.
감정과 마음이 전부
시집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꽤 나와요.
이 시집은 유이우라는 시인의 마음과 감정이 전부인 것 같아요. 느끼한 대답이죠? 자기를 삼인칭화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정말 유이우라는 사람의 감정과 마음이 전부인 것 같아요. 그걸로 그냥 온전해요.
어디까지가 자기답게 쓰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시집을 읽을 때 그 사람의 시가 좋으면 이게 나인지, 좋아하는 시에 영향을 받은 나인지 모를 때는 없나요?
매번 좋아하는 시인이 바뀌고 특정하게 좋아하는 시인이 없어요. 어떤 시인이나 시를 좋아한다고 해서 문장을 닮진 않게 되더라고요. 마음 안에 있는 시심을 점화시켜줄 순 있어도, 표현을 따라 쓰게 되진 않는 것 같아요.
굳이 비교하자면 머리와 마음 중 마음인 거죠.
시 쓸 때 머리를 전혀 안 쓰니까요. 어떤 분은 제 시가 되게 수학적이고 계산적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게 신기해요. 이우성 시인님이 발문에 정확히 써주신 게, 단어를 그렇게 크게 생각 안 해요. 빠르게 흘러나오는 대로 쓰다 보니까 생각나는 단어를 쉽게 쉽게 쓰고요.
어떤 시인의 시집을 읽는 비교적 바람직한 방법 중 하나는 시집의 단어들, 문장들, 그리고 그 작은 시의 집이 의미의 울타리를 밀어서 쓰러뜨리고 어딘가로 가도록 두는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잊히고, 그러면 무엇인가 남겠지. 그것이 무엇인지 누가 알겠어?
이우성 「안녕, 단어」, 『내가 정말이라면』 발문 중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어요. 마지막 시라는 느낌으로 썼다고요.
다시는 시를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몸도 마음도 안 좋았거든요. 계속 최종심과 본심에서 떨어져서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두세 달 쉬다 처음으로 쓴 시가 등단작이 되었어요.
일을 하던 때였나요?
딱 그때쯤 도서관에서 기간제로 일을 시작했어요. 도서관 프린트로 시를 뽑아서 점심시간에 달려가 냈었죠. 그때는 될 줄 몰랐어요. 뭘 앞에 내고 뒤에 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등단 전화 받았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유이우라는 이름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전화로 “유이우 씨 맞으세요?” 해서 “네?”하고 되물은 기억이 나요.
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건, 되도록 텍스트와 가깝게 지내는 일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이었을까요?
회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어요. 성격상 회사원은 못 됐을 것 같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구든 회사원의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다들 그냥 그 시스템에 맞춰진 거죠. 제가 그나마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 서가 사이였어요. 생일 때도 도서관에 혼자 가서 서가 사이에 있었어요.
주변에 같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나요?
아는 시인이 별로 없어요. 문단 자리에도 거의 안 가고, 청탁 받을 때도 연락처를 몰라서 연락 못 했다고 하실 때가 많아요. 등단 전부터 만났던 사람들이 등단하게 된 경우가 있는데, 서로 시인이라기보다는 오래 알던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요.
외로울 때가 있진 않나요? 시가 세상에 가 닿고 있는 걸까 불안하기도 하고요.
항상 시를 쓸 때 허공에 대고 지르는 느낌이어서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진 않아요. 제가 좋으면 좋은 시고, 리듬 잘 탔네 싶으면 발표하거든요.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사랑을 받으려고 시를 쓰는 게 아니라서 괜찮아요. 그냥 인간이 가진 당연한 삶의 외로움인 거지, 시를 혼자 써서 외로운 건 없어요.
쓰던 글이 시가 된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오나요?
시적인 상태를 스스로 주문하지 않을 때 진짜 시적인 상태가 되고, 시를 찾아내야지 하지 않을 때 시가 오는 것 같아요. 그냥 제 삶을 살다 보면 저다운 문장이 제 앞을 슥 지나가는 거죠. 의도적으로 찾진 않아요.
어떤 식으로 시를 읽나요?
다른 사람의 시나 제 시나 똑같이, 감정에 충실해요. 감정으로 읽고 분석을 절대 하지 않아요. 저는 그게 시에 대한 예의이자 모든 시인에 대한 예의 같아요. 저는 제 시조차도 ‘내 시는 어떤 시야’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저 감정적으로 읽고 마음에 스며들게 내버려 두는 것 같아요.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나 감정이 올라오면, 그 감정조차 투명하게 통과하는 느낌일까요?
어렵네요. 감정의 진행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어디 놀러 가서 좋은 경치를 보면 ‘좋다!’ 하고 끝나는 것 같아요. 왜 태양 빛이 저렇게 좋은지 분석하진 않잖아요. 그거와 비슷한 것 같아요. 그냥 느끼는 거죠.
시 창작 수업을 듣기 전에는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고요. 수업을 듣기 전에도 시와 가까운 기질이었다고 생각하나요?
누군가는 저와 같이 생각하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제 생각대로 말할 수밖에 없어요. 시인들은 그냥 태어나는 것 같아요. 이미 시인이 된 사람들은 그게 운명인 것만 같아요.
두 번째 시집은 어떻게 될까요?
이제까지 9년, 10년 걸렸으니 빨리 낼 것 같진 않아요. 그사이에 생기는 취향이 있을 것이고, 그때마다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예요. 시에 대한 계획이나 시인으로서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각은 없어요. 시가 계속 이렇게 써질지, 변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앞으로 어떤 시를 쓰게 될지 제 미래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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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이라면유이우 저 | 창비
화려한 수사를 앞세워 대상을 직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한발 물러서 세상의 풍경을 관찰하면서 단어 하나하나에 자신만의 감정을 쏟아내는 그의 시는 신인으로서의 참신함을 넘어서는 견고한 시 정신과 기발한 언어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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