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6일, 『맥주 만드는 여자』 출간을 기념한 김정하 대표와의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의 김정하 대표는 <수요미식회>, <생활의 달인> 등에 출연한 이른바 ‘수제맥주의 달인’이다. 국내 1호 여성 브루마스터로, 각종 세계 맥주 대회에서 수상자로 그리고 심사 위원으로 활약하게 되기까지 김정하 대표가 걸어온 브루마스터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정하 대표는 “여자가 술집을 운영한다는 것에 대한 편견이 많았다. 책을 만들면서 사업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직면하고, 대처했는지 솔직히 적었다. 상처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내가 워낙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라며 그간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버티는 게 제일 중요하다
김정하 대표는 조리학과에 재학하던 때 전통음식과 전통주를 만든 경험이 자신을 수제맥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탄산이 강한 맥주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실습을 하며 만든 연엽주가 차례상에 올릴 정도로 맛이 좋았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에 실린 맥주 제조 기계 광고를 김정하 대표의 아버지가 보았고, 아버지의 권유로 수제맥주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처음엔 안 내켰다.(웃음) 그런데 아버지가 계속 가보자고 해서 평촌에 있는 작은 수제맥줏집을 찾아갔다. 가서 맥주를 마셨는데 그동안 맛봤던 맥주와는 완전히 달랐다. 맛도 진하고, 향도 나고, 정말 맛있었다. 그때 ‘나처럼 맥주를 안 좋아하는 사람도 좋은데 진짜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좋아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은 그렇게 2004년 문을 열었다. 아무 준비도 없고, 사전 지식도 없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수제맥주를 시작했다는 김정하 대표는 그 때문에 오랫동안 “빨리 다른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맥주 제조가 체력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200kg 정도의 몰트가 들어간다. 50kg짜리 몰트 포대를 옮기고, 분쇄하고, 통에 들이붓는 과정을 다 직접 해야 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할 정도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지금도 브루어를 꿈꾸는 분들이 많은데 남자라 하더라도 마흔이 넘은 분들에게는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체력을 워낙 많이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업은 계속 적자였다. 수제 맥주를 권유하던 아버지는 든든한 지원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버텼고, 1년 6개월을 넘기자 서서히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김정하 대표는 자기만의 브루어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버티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꾸준히 하자 맥주도 맛있고, 안주도 맛있는 곳이라는 소문이 났다. 처음엔 두 종류의 맥주만 팔았다. 대외적으로는 “집중하고 싶어서”라고 말했지만 실은 탱크 용량 때문이었다.(웃음) 유통을 못했기 때문에 탱크 안에 있는 것을 다 팔아야 다른 맥주를 또 만들 수가 있었다. 그런데 소진 속도가 나지 않았던 거다. 현재는 유통도 하고, 다른 용기에 담을 수도 있게 되어서 시즌 별로 아홉 가지 종류의 맥주를 만들고 있다.”
김정하 대표는 2013년 도쿄에서 열린 맥주 대회인 ‘아시아 비어컵’ 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당시 주세법에 따라 국내 주류의 외부 반출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2014년 국회에서 열린 맥주 관련 공청회에서 김정하 대표는 이러한 주세법의 불합리함을 지적했고, 이후 대회 출품에 한해 반출 허가가 내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인터내셔널 비어컵’에서 김정하 대표가 개발한 ‘벚꽃라거’가 금메달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만들어진 맥주가 받은 첫 금메달이라는 점이 그간 무성했던 뒷말들을 한순간에 잠재웠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오던 소문들이 사라진 것도 반가운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벗꽂라거의 수상이 국내 소규모 수제맥주가 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물꼬를 터주었다는 사실이다.(186쪽)
“심사가 치열하다. 조금만 아쉽다는 평이 있어도 절대 금메달을 받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심사위원이 “맛있다!”고 해야 메달을 받을 수 있을 정도다. 내 맥주 중 ‘프룻비어’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다복이’라는 맥주가 ‘월드 비어컵(세계에서 가장 큰 매주대회 중 하나)’에서 파이널까지 올라갔는데 국내 맥주 중에서는 처음이다. 그만큼 상을 받는 게 힘든 일이다.”
이어 김정하 대표는 “맥주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2013년”이라고 밝히며 자신을 보고 수제맥주에 관심을 갖고 시도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알게 되자 사명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뒤늦게 내가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하고 있다”라는 김정하 대표는 앞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정하 대표에게 듣는 맥주 ABC
에일맥주와 라거맥주는 어떤 차이가 있나?
가장 큰 차이는 효모다. 만드는 입장에서는 에일이 발효가 빠르기 때문에 빨리 만들어서 빨리 팔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소규모 양조업을 하는 분들이 순환이 빨리 되어야 하기 때문에 에일을 만들었던 거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소비자는 라거 선호도가 높다. 함께 먹는 음식과 잘 어울리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요즘의 맥주 트렌드는 무엇인가?
에일처럼 향이 강한 라거가 유행이다. 미국의 ‘파운더스 브루어리’는 창업할 때부터 흑맥주만 만들어왔는데 그 회사조차도 작년에 라거를 출시했다. 그만큼 라거에 향을 조금 입혀서 아로마가 있는 라거를 많은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중이다. 또, 다시 독일 스타일의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미국 스타일이 유행해서 쓴맛도 강하고, 향도 강한 맥주가 많았는데 작년부터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맥주가 많이 나오고 있다. 보리의 맛이 많이 나는, 고소하고 음용성이 좋은 맥주들이다. 맥주도 유행이 돌고 돌아서 복고가 유행하는 듯하다.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을 추천한다면?
어떤 스타일의 맥주를 좋아하는지 찾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맛있는 맥주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다. 맥주를 고를 때 라벨을 많이 보기를 권한다. 원재료가 다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라벨만 봐도 알 수 있는 정보가 많다. 원재료에 따라 맥주 맛이 조금씩 다르다. 밀이 많이 들어간 맥주는 특유의 부드러운 맛이 있고, 벨지안 스타일이라고 적혀 있으면 벨지안 효모에서 나오는 꽃 향기나 후추나 고수향이 있다. 그런 식으로 라거 스타일인지, 페일 에일 스타일인지 정보가 있기 때문에 쓴 맛을 안 좋아한다면 굳이 IPA나 페일 에일을 찾아서 마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벨지안, 바이젠 스타일처럼 가벼운 스타일의 맥주를 마시면 된다.
‘브루마스터’ 공식 인증 기관이 있나?
국내에는 브루마스터나 크래프트비어의 정의가 없다. 미국의 경우 BA(Brewers Association)라고 양조협회가 아주 잘 되어 있다. 그 협회에서는 관련학과를 졸업하고, 업계에서 경력 10년 이상을 쌓은 사람들을 브루마스터라고 칭한다. 수제맥주에 대해서도 정의가 있는데 국내는 없는 형편이다. 내가 현재 소속된 ‘한국맥주문화협회’에서 브루마스터 자격증을 기획하고 있는 중이다. 향후 공인된 자격증을 만들고자 한다.
맥주를 한 종류 만들 때 구상에서 출시까지 얼마나 걸리나?
내 경우 레시피를 짜고 만들기까지 길게는 3년이 걸린다. 맥주 제조만 한다면 더 빨라지겠지만 매장을 운영하며 기타 일도 하기 때문에 그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머릿속에서 계속 시뮬레이션 하고, 어떤 재료를 섞어볼까, 고민하면서 레시피를 짜고 구현하는 데까지 꽤 걸리는 편이다. 현재 개발하려고 하는 맥주도 2년 전부터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웃음)
수제맥주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종량세’로 부과방식이 바뀌게 되면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어찌 되었든 대기업을 위한 주세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는 수제맥주 회사들이 마트에 입점되어 있는데 종량세로 바뀌면 대기업이 아주 저렴한 가격에 에일 맥주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수제맥주 회사들이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유통을 못하면 휘둘릴 수밖에 없다. 내 경우 자가 유통망을 통해 납품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직영 펍을 늘려가려는 등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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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만드는 여자김정하 저 | 북레시피
맥주 관련 사업을 하면서 겪게 된 여러 가지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더 깊게는 우리나라 맥주 업계의 실태를 보여주고, 나아가 세계무대에서도 주목받는 우리나라 맥주의 발전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