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일 카다레, ‘2019 박경리 문학상’ 수상 기념 인터뷰
자유가 없다는 게 실존하는 인간에게 커다란 장애물이 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말이 늘 맞는 말은 아니다. 인간의 실존은 때로 큰 어려움을 통해 존재할 수 있다.
글ㆍ사진 정의정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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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박경리문학상을 받은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가 수상을 기념해 내한했다. 10월 23일 기자간담회를 시작으로 24일 연세대 강연회, 25일 박경리문학상 수상 축하음악회, 28일 문학동네가 주관한 독자와의 만남 등에 참석하며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박경리문학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대하소설로 재조명한 故 박경리 소설가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고자 만든 상이다. ‘박경리 문학정신에 걸맞게 세속에 타협하지 않는, 가장 인간적이면서 순수한, 고집스러운 작가정신을 지닌, 이 시대 가장 작가다운 작가’를 선택한다. 한국작가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후보를 선정한다. 올해에는 2018년 2월부터 후보작 추천 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전세계 소설가 350명 중 45명을 1차로 선정하고, 심사위원회가 명단을 검토해 최종 후보 5명을 추렸다. 심사위원회 위원장인 김우창은 심사평에서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들과의 관계에서 삶의 절실한 진실을 생각하게 하고 느낄 수 있게 한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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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일 카다레(왼쪽)와 그의 아내이자 소설가 엘레나 구스 카다레(오른쪽)

 

 

이스마일 카다레는 1936년 알바니아의 작은 도시인 지로카스트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이던 1953년에 이미 시집을 내면서 시인으로 데뷔했고, 1963년에 첫 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  을 출판했다. 작품을 나라 밖으로 보내는 게 공식적으로 금지된 알바니아에서 1986년부터 자신의 원고를 일부분씩 빼네 비밀리에 프랑스로 반출하는 우여곡절 끝에 그의 작품이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유럽에서는 ‘알바니아보다 유명한 작가’로 불리며 미지에 쌓여 있던 알바니아의 정치 상황을 알리는데 기여한 ‘문학대사’로 평가받는다.


공산 독재정권 아래서 조국인 알바니아의 현실을 민담의 형식으로 소설에 녹여낸 그의 작품은 마르케스의 작품과 비견되거나, 유토피아의 위험을 고발하는 헉슬리와 오웰 작품의 뒤를 잇는 주자로 평가된다. 45개국 이상에 번역된 그의 작품 중, 한국에는  『죽은 군대의 장군』  ,  『잘못된 만찬』  ,『돌의 연대기』  ,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등이 번역을 거쳐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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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작가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큰 기쁨


이스마일 카다레는 10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적인 억압 때문에 나누지 못할 이야기 없이 많은 질문을 던져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말과 함께 수상소감을 밝혔다.


먼 나라에서 온 작가작가로서 전세계에 걸쳐 독자들과 만나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다. 한국에서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고국에서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국은 먼 나라이지만 알바니아에 잘 알려져 있고, 한국 문학 역시 알바니아 안에서 지위가 향상되고 있다. 문학상을 통해 한국에 와서 동료 작가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 특히 문학의 문학과 상황은 알바니아에도 잘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도 문학을 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알바니아에 소개된 작품이 없어 북한 작품을 읽어볼 수는 없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박경리문학상을 받기 전에도 1992년 프랑스 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치노 델 두카 국제상, 2005년 맨부커 인터네셔널 상, 2009년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 왕자상 등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아왔다. 그는 수상에 대해 “어떤 종류와의 역설”과 같다며, 알바니아의 작가인 자신이 상을 받고 세계적으로 알려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알바니아는 서방과 동양의 경계점에 있다. 그 말인즉슨 자유와 자유롭지 못한 것 사이에 있다는 뜻이다. 내 고국은 독재국가이자 공산주의 국가이다. 알바니아는 이탈리아 국경선에서 80킬로미터, 로마에서 12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서방세계의 영향을 느낄 수 있지만, 알바니아 사람들은 그 나라들이 보이지 않는 척을 하고는 한다. 서방세계로부터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나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수 있음에도 알바니아에서는 그것들에 대해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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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한때 독일군이 점령했으나, 1944년 독일 철수 이후로 엔베르 호자가 지도하는 민족해방정선이 정권을 장악하고 공산국가를 수립했다. 엔베르 호자는 1985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40년 동안 알바니아를 통치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폐쇄정치를 표방해 왔다.


책이 출간되었던 서방 국가는 알바니아가 적이라고 규정하던 나라들이었다. 나는 ‘인권의식이 끝났다’고 평가되는 알바니아에서 작품을 써왔다. 어떤 분들은 소설 속에서 환상적인 상상력이 깃든 이미지로 알바니아를 상상하겠지만, 나는 책이 출간될 당시 단 한 번도 이런 기자회견실에 앉아 기자들과 이야기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이것은 최상급 그 이상의 경험이다. (웃음)


한편 그는 최근 발표된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대해 쓴소리를 내기도 했다. 2019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피터 한트케가 세르비아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소수민족 학살을 옹호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한트케와는 작가로서 동지적 관계에 있지만, 비판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작품세계와 정치적 상황을 따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넘어서는 안 되는 한계가 있다. 인종학살은 어떤 경우에서도 수용하거나 이해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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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Q&A


독재정권이 사그라든 이때, 작품이 의미를 가지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 지금 인간의 실존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흔히 지금 알바니아는 예전과 다르고 상당히 많은 자유가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자유가 있기 때문에 어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상이다. 자유가 없다는 게 실존하는 인간에게 커다란 장애물이 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말이 늘 맞는 말은 아니다. 인간의 실존은 때로 큰 어려움을 통해 존재할 수 있다. 흔히 인간의 상태를 자유롭거나 자유롭지 않거나, 두 가지 상태로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정권이 끝나면 자유라는 이름에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인간이 어려움을 뚫고 실존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게 먼저다. 독재와 전체주의가 끝난 알바니아가 자유롭다고 이야기하지만, 모든 인간이 이 자유 안에서 실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체로 알바니아 현대사를 토대로 소설을 쓰는데, 표면적으로 봐서는 지역성이 강하다. 지역성을 보편 주제로 승화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번역이다. 아무리 지역적인 이야기라도 번역을 통해 폭발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번역을 통해 전달되는 보편성은 문학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실 문학은 자유로운 것이기 때문에 문학을 통해 무언가에 도달하고 무언가 이룬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외부 요소가 문학을 훼손하거나 파괴하는 일이 수세기에 걸쳐서 일어났는데, 그렇기 때문에 문학 작품을 바꾸고 형태를 잃게 만드는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죄책감은 문학에 소속된 게 아니라 그런 죄책감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것이다.


 

 

잘못된 만찬이스마일 카다레 저/백선희 역 | 문학동네
이탈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일의 침략을 겪은 후,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선택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나라의 동요를 그린다. 혼란스러웠던 알바니아의 비열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카다레의 독특한 문학세계가 뚜렷이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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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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