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올모스트 메인(Almost Maine)> 이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됩니다. 오로라가 보이는 가상의 마을 올모스트에서 아홉 커플에게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작품인데요.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흘간 단 5회 공연인데 뒤에 잇따르는 본공연도 없고, 출연진이 과거 이 작품에 참여했던 배우들도 아닙니다. 사흘 공연이나 석 달 공연이나 연습하는 시간은 똑같을 텐데, 이렇게 비효율적인 무대도 없겠다 싶군요. 게다가 모두 같은 회사에 소속된 이들은 무대보다는 화면으로 익숙한 배우들입니다. 어찌된 영문일까요?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 중 <키사라기 미키짱>, <앙리할아버지와 나>로 그나마 무대와 친숙한 조달환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소속사에서 처음 시도하는 공연인데, 처음에 배우 몇 명이 얘기하다 여기까지 온 거예요. 수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감히 누군가를 돕는다고 말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수익이 생긴다면 좋은 쪽에 나누기로 했고요. 많이들 후원해 주셔서 제작비는 이미 지원을 받았거든요. 그 출발선에 배우 이상윤 씨도 포함돼 있다고 하는데요. 결국 이번 <올모스트 메인> 은 연예기획사인 제이와이드컴퍼니와 소속 배우들이 준비한 프로젝트 공연으로, 수익금 전액은 푸르메 재단 넥슨 어린이 병원에 기부된다고 합니다.
소속 배우들이 MT 아니면 모일 기회가 없거든요. 가족처럼 함께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영화를 같이 볼까? 같이 공연을 볼까?’ 하다가 ‘아예 우리가 공연을 만들자!’가 된 거죠. 상윤이와는 드라마를 같이 하면서 친해졌는데, 그렇게 괜찮은 친구는 처음이에요. 화를 내거나 투덜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마음에 보살이 있는지, 감동받을 정도거든요. 그런 친구가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하니까 응원해주고 싶고 더욱 함께 하고 싶더라고요.
이상윤 씨에게는 첫 공연인 거죠? 대학로도 낯설 텐데요.
저 보러 몇 번 왔죠. 공연도 보고, 신구 선생님을 비롯해 좋은 분들과 술자리도 같이 하고. 상윤이가 연기에 대한 갈증이 많아요. 건강한 사람이 결국 좋은 배우일 텐데, 그 친구는 그런 건강함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좋은 배우가 될 자질도 무척 크거든요. 그런데 스스로는 알을 깨지 못했고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욱 무대에 서고 싶은가 봐요. 이번에 한 에피소드를 같이 하는데 정말 좋아요. 서로 좋은 에너지도 주고받고.
사이가 각별한지 조달환 씨는 인터뷰 내내 이상윤 씨를 언급했는데요.
이번 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을 영상으로 좀 더 솔직히 들어보시죠!
그런데 조달환 씨를 비롯해 이상윤, 오민석, 민성욱 씨 등 대부분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이라 힘든 점도 많을 것 같아요. 공연은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잖아요.
일단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를 많이들 두려워하죠, 자기가 다 드러나니까.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도 많았는데, 리딩을 해보니까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올모스트 메인> 대본이 너무 어려웠는데, 계속 읽다 보니까 무척 과학적이고 수학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더라고요. 공연 준비하면서 잘 안 풀리면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막 울게 되는데, 후배들도 많이 울었어요. 저도 선배들한테, 좋은 연출가한테 말하는 기술이나 무대 연기에 대해 많이 배웠거든요. 배우가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큰 선물이고, 인생에서 또 하나의 큰 오디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연습하는 과정도 많이 다르잖아요. 공연은 다 같이 모여서 연습하는데, 그게 가능했나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니까 희생이 없다면 불가능했죠. 사실 술자리도 자기의 소중한 시간을 빼야만 가능하잖아요. 멀리 봐서는 되게 끈끈한 에너지가 모이는 거지만 순간으로 따지면 아까운 시간들인 거죠. 그게 공연이 주는 매력인 것 같아요. 이제는 후배들이 어떻게든 술자리에 끼려고 하고, 안테나가 우리를 향해 있더라고요. 매체 연기할 때는 선생님들이나 얘기해 주실까, 옆에서 애착 있게 말해주는 선배들이 많이 없거든요.
아무래도 기존 무대와는 좀 다른 색깔의 공연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럴 거예요, 무대에 처음 서는 친구들이 많아서 색다른 공연이 되지 않을까. 어설플 수도 있죠. 연기는 잘하는데 허공에 날린다고 할까요. 자연스러운 것과는 또 다른 무대 연기가 있으니까. 무대는 하체로 연기해야 한다,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관객들 들어오면 시선 처리며, NG도 없잖아요. 어쩌죠(웃음)?
다 겪어야죠(웃음). 그러니까 두려운 거예요. 베테랑 배우들도 화이트아웃 될 때가 있는데, 무대가 좋은 게 함께 쌓아온 연습량이 있기 때문에 다 도와준다고 해요. 그때 관객들도 알고 재밌어하고요. 연습이 모자라서 실수하는 건 관객들에 대한 모독이지만, 충실히 연습했는데도 어쩔 수 없이 실수하는 건 그것도 무대예술이라고. 동료를 믿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공연의 끈을 놓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조달환 씨는 이미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위험한 것 같아요. 혼내는 사람도 많이 없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추해질 수 있는 게 누가 나한테 뭐라 하지 않으니 내 철학에 스스로 함몰돼요. 내가 나를 가둬서 아무도 써주지 않고, 결국 스스로 은퇴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현명한 배우일수록 공연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해요. 어린 연출가한테 혼날 줄 아는 마인드가 필요해요. 과감히 무대를 선택할 용기도 필요하고. 그래서 내년에도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 원 캐스트로 참여할 예정이에요. 제 욕심인 거죠.
특색 있는 역할을 많이 했고, 그 인물에 대해 열심히 고민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솔직히 생존이었던 것 같아요. 연기 아니면 가족과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잖아요. 다른 활동도 돈은 되지만 연기만큼 재밌고 치열하지는 않더라고요. 그 세계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도 많고. 상윤이나 다른 배우들처럼 유전자가 월등한 것도 아니니까 다양한 인물에 도전하고 더 고민하고 생각해야죠. 그래야 나를 써주니까.
다양한 인물을 연기했지만, 여전히 해보고 싶은 연기도 있겠죠?
있죠. 4~5년 전에 멜로를 했는데, 단막극에서 주인공이었고 상도 주시더라고요. 좀 찌질한 멜로였지만, 그때 박하사탕이 폐 안에 천 개는 들어간 느낌이었어요. 무척 위안이 되고, 배우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때 한석규 선배님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죽기 전에 이런 멜로를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다른 사랑이었지만. 앞으로도 멜로가 들어오면 좋겠어요. 제 외모에 어울리는 멜로. 다양한 사랑이 있잖아요. <올모스트 메인> 도 멜로죠. 결국 사랑에 모든 게 있는 것 같아요.
<클로저>의 ‘래니’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웃음). 곧 연말인데,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에는 어떤 생각들이 마음에 담겨 있기를 바라는지요?
요즘 무서울 정도로 행복해요. 최근에 아내한테도 말했어요. 내가 꿈꿨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두렵다고.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시골에서 사는데, 비록 20년 된 스포츠카지만 뚜껑도 열리고, 월세 같은 전세에 살지만 장작을 때고 마당 있는 집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내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하고, 좋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이렇게 좋아도 되는지, 너무 감사해서 불안하기까지 해요. 앞으로 위기가 오고, 두려움도 우울함도 오겠지만, 지금을 생각하면서 감사하게 살고 싶어요.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