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우리 주변의 식물, 잊고 있지 않았나요?”
저는 『식물의 책』을 계속 수정해나갈 거예요. 식물세밀화는 정확한 정보가 생명인데, 그렇게 수정을 거듭하는 한, 저는 그림이 정확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거죠.
글ㆍ사진 김윤주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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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책』 출간을 기념하여 지난 12월 19일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이소영 저자의 북토크가 열렸다. 그는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작업 외에도,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소영의 식물라디오’를 진행하고 <서울신문>에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칼럼을 연재하는 등 식물 문화를 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번 북토크는 『식물의 책』 의 뒷이야기를 전하고 관객들의 질문을 통해 식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늘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잊을 때가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도 그렇다. 개나리, 은행나무, 민들레 등 우리는 언제나 식물과 함께 살아가지만,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식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안다면, 그들을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을까?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저자는 “식물 하나하나를 들여다볼수록 그 안에 더 많은 이야기,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10쪽)고 쓴다. 그렇게 식물에 대해 알아가며, 그들과 공존하는 법을 익히는 것. 저자가 『식물의 책』 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말이다.

 

“도시식물은 주변에 흔히 있으니까 관심을 갖지 않죠. 마치 우리가 SNS에 특별히 먹게 되는 음식 사진은 올리지만 늘 먹는 집밥 사진은 안 찍는 것처럼요. 그렇기에 저는 더욱 도시식물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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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시식물’일까?

 

『식물의 책』 은 우리가 일상에서 이용하는 ‘도시 원예식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이소영 작가는 수많은 식물 중 ‘도시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10여 년 전 국립수목원에서 근무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국립수목원의 다양한 식물학자들은 식물들을 표본으로 만들고 기록하여 이름을 붙인 후, 그 식물을 어디에 이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한다. 저자 역시 산림식물 표본관에서 식물을 그림으로 옮겨 기록물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 한 가지 질문에 맞닥뜨렸다. ‘희귀 식물은 주목받지만, 왜 우리 주변의 식물들에는 이토록 소홀할까?’

 

“국립수목원 산림식물표본관에서는 식물을 채집해서 표본으로 만들어요. 그렇다면, 어떤 식물이 표본이 많을까요? 보통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은 표본이 많고, 희귀 식물은 표본이 적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반대예요. 연구자들은 멸종 위기 식물은 좀처럼 보기 어려우니까 바로 수집해요. 그러나 서양민들레 같은 식물은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 굳이 채집하지 않고 지나치지요.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우리 주변의 식물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어요.”

 

도시식물을 알리고 싶다는 꿈이 구체화된 건 팟캐스트 ‘식물라디오’를 진행하면서부터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물 문화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그 요구를 충족해줄 만한 매체는 부족하다. 저자는 식물세밀화를 그리면서 얻은 정보를 공유하고 식물이 있는 장소를 생중계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식물라디오’는 2가지 패턴으로 진행돼요. 식물 1종을 소개하거나, 식물이 있는 장소에 가서 현장 생중계를 하는 것인데요. 지금까지 국내 국립수목원, 국립생태원은 물론이고, 싱가포르, 독일 등 외국 식물원도 다뤘어요.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식물에 관심을 갖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 직접 식물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직접 가서 보면 식물이 좋아지죠.


결국 식물 보존을 위해서는 연구자들의 활동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관심이 필요해요. 그래서 식물원에서도 전시나 교육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이 식물에 관심을 가져야 보존하고 활용도 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직접 식물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식물라디오’에서도 식물 장소를 많이 소개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쌓여 한 권의 책이 됐다. 『식물의 책』 을 처음 펼친 독자는 조금 놀랄 수도 있다. 마치 얼룩이 지고 빛바랜, 오래된 책처럼 디자인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에 오래된 식물 기록물이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이 마치 고서처럼 보이길 원했다고 한다.

 

『식물의 책』  디자인은 오래 고민했어요. 식물을 접하면 디자인에 영감을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편집자님과 디자이너분을 불러서 함께 산책했어요. 실제로 편집자님은 식물이 좋아져서 매 계절마다 수목원에 와서 식물을 보고 가셨어요. 책 표지는 우표에 영감을 받은 거예요. 각 나라별로 우표에 식물 그림이 많이 들어가요. 그렇기 때문에 우표만 봐도 그 나라의 식물 특성을 알 수 있어요. 디자이너분이 그 우표를 보고 표지를 완성해주셨어요.

 

『식물의 책』 은 내지 디자인이 특이해요. 일부러 고서 느낌이 나게 옛날 종이처럼 표현했어요. 한국은 식물기록물의 역사가 길지 않은데요. 정말 오래된 것도 일본에서 출간되거나, 조선총독부에서 발간된 것이 많아요. 외국에서 한창 기록되어야 했을 시기에,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식물 연구를 스스로 하지 못했고 기록물도 해방 이후에나 만들 수 있었어요. 그 아쉬움을 담아 고서 느낌으로 기획했습니다. 책 크기가 작다는 이야기도 많은데요. 작게 만든 이유는 도시 사람들이 편하게 들고 다니면서, 지칠 때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식물 이야기를 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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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킹’ 사과를 아시나요?


매일 식물을 들여다 보니, 독자에게 들려 주고픈 이야기도 하루하루 쌓인다. 이소영 저자는 『식물의 책』 에 대한 숨은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그 주인공은 신품종 ‘썸머킹’ 사과다. 보통 우리나라의 과일은 대부분 일본에서 건너온 품종이 많다. 이 사과는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에서 직접 개발한 국산 신품종으로 최근 일본 불매운동이 시작되며 새롭게 주목받게 됐다.

 

“썸머킹 사과는 2년 전 그림을 그릴 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신품종이라서 재배하는 과수원에서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일본 불매운동이 터진 후 마트에 가니 아오리 사과 대신 썸머킹 사과가 있는 거예요. 눈물 흘릴 뻔했어요. 드디어 이 식물의 존재를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했구나 하고요. 물론 아오리 사과를 재배하는 사람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아이러니가 있지만, 점차 우리나라 신품종인 썸머킹을 재배하면 좋을 것 같아요.”

 

방대한 자료 수집과 세밀한 관찰을 거쳐 탄생한 『식물의 책』  . 지난한 과정을 거쳤음에도 저자는 이 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식물세밀화는 기록물이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핵심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조사하더라도, 미래에 새로운 정보가 수집되면 현재의 기록물은 수정이 필요해진다. 그렇기에 저자는 평생 이 책을 수정해나가겠다고 다짐한다.

 

『식물의 책』 은 결국 2019년의 이야기예요. 식물세밀화는 정확한 정보가 생명인데, 연구 결과는 계속 갱신되거든요. 또, 식물세밀화를 그릴 때는 최대한 다양한 개체를 봐야 해요. 만약 다른 특성을 가진 개체가 발견되면, 기존의 정보를 수정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평생 계속 그림을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수정을 거듭하는 한, 저는 그림이 정확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거죠.

 

저명한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의 전시를 보러 일본에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림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빨간색 X 표시가 된 것들이 대부분인 거예요. 여러 번 수정했다는 증거인 거죠. 마키노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식물세밀화를 수정하셨대요. 결국 식물세밀화는 연구결과이기 때문에, 계속 고쳐나가야 해요. 저 역시도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재쇄하면서 『식물의 책』 을 수정해나갈 거고요. 지금 『식물의 책』 은 2019년 12월의 연구 결과라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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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의 Q&A


계속 고치셨다고 했는데 수정을 어떻게 하시는지요?


색을 덧칠하거나, 아예 새로 그리기도 해요. 식물세밀화는 기본이 흑백그림이에요. 밑에 스케치를 두고 기름종이에 덧그림을 그리는데요. 그래서 수정할 부분만 그려서 덧붙이기도 합니다.

 

식물세밀화를 그릴 때, 보통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작업하시나요?


앉아서 그림만 그리는 시간은 한 달이 채 안 걸려요. 그러나 식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실제로 관찰하는 기간이 오래 걸리죠. 특히 식물의 생식기관을 관찰하는 게 중요한데요. 그러려면 꽃 피고 열매 맺는 시기를 다 기다려야 해요. 보통은 1년이 걸리고, 만약 시기를 놓치면 내년을 기약해야 하죠. 요즘은 기후변화 때문에 개화와 결실시기가 많이 바뀌어서 더 힘들어요. (웃음)

 

개인이 숲이나 수목원에 가서 식물을 채취해도 되나요?


저는 연구 목적으로 사전 허가를 받아 채집해요. 허가를 받지 않고 채집하는 것은 다 불법입니다. 떨어진 종자도 동물들이 먹고 식물을 번식시켜야 해서 가져갈 수 없고요. 허가를 받아도, 식물이 한 종만 남아있으면 채집하지 않아요. 종 보존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건데, 그림 하나 그리자고 꺾어버리면 그 식물이 번식을 못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다음을 기약할 때도 있습니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식물세밀화지만, 앞으로 디지털화될 가능성도 있나요?


요즘 컴퓨터로 식물세밀화를 그리는 사람도 있지만, 기술이 발달한 미국, 영국, 일본 등도 아직까지는 손 그림을 선호해요. 그렇지만, 저는 정확하게만 그릴 수 있다면, 손 그림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미 그려진 세밀화를 고화질로 스캔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현재 한국은 식물세밀화를 축적하는 단계라, 데이터화하는 작업은 2-30년 후에야 목표가 될 것 같아요.

 

작업 중 어떤 때 가장 즐거움을 느끼시나요?


숲에 가서 식물을 볼 때, 가장 좋아요. 식물들이 반겨주고 있는 것 같고 얼른 그려달라고 손 벌리고 있는 것 같고요. (웃음) 제 작업이 의미 있다고 느끼는 때는 식물의 존재를 사람들이 알아줄 때입니다. 어떤 분이 매거진 표지에 실린 ‘썸머킹 사과’를 보고 스타벅스에 가서, 샐러드에 그 사과가 들어있다고 알아봐주셨어요. 그렇게 식물세밀화를 통해 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뿌듯해요. 또, 신품종을 발표할 때도 굉장히 기분 좋습니다. 아직 이름이 없는 식물을 그릴 때가 많은데요. 시간이 지나서 식물의 이름이 붙여지고 제 그림과 함께 세상에 발표될 때, 정말 기쁘죠.

 

 

 

 


 

 

식물의 책이소영 저 | 책읽는수요일
그가 기록하는 대상은 실내공간, 수목원, 공원 등 주로 우리 곁에 있는 식물들, 또는 연구기관에서 개발한 신품종처럼 앞으로 우리 곁에 있을 식물들, 즉 숲을 떠나 도시에서 살게 된 식물들이다. 그의 시선을 좇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식물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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