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의 배우론 <노래처럼 말해줘>
연극배우 박정자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박정자의 배우론 – 노래처럼 말해줘>가 2월 6일부터 1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됩니다.
글ㆍ사진 윤하정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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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배우는 누구인가요? 근사한 목소리로 객석을 파고드는 박정자 씨를 떠올리는 분이 많을 텐데요. 연극배우 박정자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박정자의 배우론 - 노래처럼 말해줘>가 2월 6일부터 1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됩니다. 이충걸 씨가 극을 쓰고, 이유리 씨가 연출한 이번 작품은 대학생이던 지난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이후 60년 가까운 시간 무대에 서 온 박정자 씨의 이야기를 그녀가 참여한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음악과 함께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우리나라 나이로 79살, 그 연세에 모노극을 소화하는 열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요.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박정자 씨의 ‘배우론’을 미리 들어봤습니다. 

 

내가 하얀색 가발을 쓰겠다고 했어요. 공연 때도 쓰거든요. 이번 작품은 내가 거의 만들어서 하는 거니까. 가방에 전단지 넣고 다니면서 내가 가는 미용실, 찻집, 음식점, 옷집에 전달해요. 이 나이에. 이건 연극 운동이지. 인터뷰가 굉장히 힘든데도 하는 이유 역시 이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극장에 와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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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가 매우 강렬하다는 말에 박정자 씨는 바로 작품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렇죠, 이번 무대는 박정자 씨가 만들고 박정자 씨만 할 수 있는 작품이죠(웃음).


그렇지(웃음), 박정자의 배우론이니까. 내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인생을 돌아본다, 정리한다’ 난 그런 따분한 말은 싫어. 연극을 하면서 여러 인물을 만나고, 여러 작품을 만나고, 수많은 제작진을 만나는데. 참 많이 했거든. 연극을 58년 했어요. 스스로 자랑스러운 게 있다면 한 해도 쉬지 않았다는 거. 그래서 이런 공연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한 사람의 연극배우가 생각하는 것, 그녀의 삶은 이런 거구나, 배우는 이 정도 미쳐서 산다는 거, 또는 당신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고. 관객이 있어야 나도 존재하는 거잖아요. 관객을 통해 내 존재도 인식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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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참여한 작품의 인물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낸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5~6개 작품이 잠깐씩 끼어들죠. 노래도 많이 들어가고. 그래서 제목도 <노래처럼 말해줘>인데. 오랜 친구인 작가 이충걸 씨가 나를 다시 인터뷰하면서 대본을 썼어요. 이런 대본을 몇 번 써줬는데, 어떻게 보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아. 그리고 우리가 적어도 동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배우를 사랑하는 마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배우 박정자래. 그런데 내 연극을 본 사람이 우리나라 인구 중에 몇 명이나 될까. TV에서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TV에서 보는 건 연극배우가 아니야. 내가 죽으면 기사에 나올 거 아니에요. 그때 ‘그 배우 연극 한 번도 못 봤네’ 그렇게 후회해봐야 소용없다는 거죠(웃음).

 

2008년 <19 그리고 80>을 뮤지컬로 할 때 인터뷰했는데, 그때 ‘박치’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는데요(웃음).
박치 맞아, 악보도 못 봐요. 그런데 주위에서 나더러 노래를 잘한대(웃음). 그리고 사람들이 배우 박정자를 생각하는 1순위가 목소리잖아. 그래서 봉준호 감독도 나를 떠올렸는지 몰라요.


이건 무슨 말일까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박정자 씨의 근사한 목소리가 나왔다고 하는데요.
어찌된 사연인지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이번 작품 준비하면서 지난 60년 가까운 시간을 쭉 돌아보셨겠네요.


절대로 쭉 못 돌아봐요, 이 짧은 시간에는. 그동안 작품을 150편 이상 했으려나. 58년 연극을 했지만 잘 알려진 작품은 열 작품이나 될까. 물론 이번 작품에 인생을 다 담을 생각은 없어요. 그 중에는 잊어버리고 버려야 할 것도 너무 많으니까. 모두 다 성공일 수는 없잖아요.

 

결국 모노극이고 혼자서 여러 인물을 소화해야 하는데, 무척 힘드시겠어요.


그렇지, 사실 어마어마하게 살 떨리는 거예요. 무대 위에 나 혼자 벌거벗은 채 나서는 거니까. 물론 피아노를 연주하는 허대욱 씨도 있지만. 가장 힘든 건 대사 외우는 거. 노래도 해야 하고, 춤도 춰야 하고, 연기도 해야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구두도 몇 번씩 갈아 신어야 해요. 그걸 아주 심플하게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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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지난 10여 년간 인터뷰할 때마다 항상 새로운 작품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세요. 58년 동안 한 해도 쉬지 않고 무대에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요?


운동선수와 똑같은 거예요. 쉬면 녹슬어. 사람들은 나더러 좀 쉬면서 하라는데, 죽으면 쭉 쉴 텐데 뭐. 연극이 지금까지 나를 숨 쉬고 살게 해줬어요. ‘어떻게 불리기를 바라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 나는 그냥 ‘연극배우 박정자’가 좋아요. 평소에 굉장히 심플해요.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성이나 어떤 능력도 없어요.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바보처럼 그냥 연극만 하고 살았어. 내 무게만큼, 내 무게라도 옳게 지고 끝까지 갈 수 있으면 그게 최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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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무리 좋은 일도 지치고, 하기 싫을 때도 있잖아요.


맨날 좋아서 하는 건 아니야. 그런데 연극이 하기 싫었던 적은 없어요. 연극만으로는 빵을 해결하지 못하니까 다른 일을 해야 할 때가 몹시 슬프고 싫지. 하지만 인간은 일을 해야 먹을 걸 얻을 수 있으니까. 연극을 하면서는 사람 관계가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일할 때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잖아요. 공연을 준비할 때는 내가 굉장히 예민해지거든. 이충걸 작가는 내가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테이블 위의 그릇들을 몽땅 쓸어버릴 것 같대요. 화약처럼 과민하고,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다고. 스태프들이 벌벌 떨지. 폭발하면 물불을 안 가리거든요(웃음). 자랑이 아니라, 나를 통제하지 못하는 건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거니까 서로 갈등이 없을 수는 없는데, 요즘은 그런 부분이 힘들기도 해요. 나하고 처음 작업하는 젊은 친구들도 많고, 내 욕심으로는 나를 좀 넘어서줬으면 좋겠거든. 젊으면 젊은 값을 좀 해봐!

 

무서운 말이네요(웃음). 좀 어리석은 질문입니다만, 대학 때 연극과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하셨을까요?


신문학과에 갔으니까 신문기자가 되려고 했어요. 그때만 해도 연극 생각은 안 했으니까. 그런데 공부는 뒷전이고 연극만 했지. 그런데 연극은 나한테 운명이었던 것 같아. 1950년 6.25때 9살이었는데 처음 연극을 봤거든요. 그때 연극이 있었다고 상상이나 하겠어? TV는 아예 없고, 라디오도 열 집 건너 하나쯤 있던 시절인데. 그때 그 시절에 난 연극을 봤고, 그렇게 내 안에 축적이 됐나 봐요. 대학 때 연극부가 없었다고 해도 시작이 더 늦었을 뿐 연극을 하고 있었을 거야. 배우는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신문기자 했으면 벌써 정년퇴직했겠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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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에 앞서 ‘박정자의 배우론’을 살짝 들어볼까요?


최근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잘하는 거예요. 어떻게 저렇게 연기할까... 신들린 것처럼 연기하는데, 그러면 신 아니야(웃음)? 이번에 내가 하는 대사가 있어요. <맥베스>에 나오는 대사인데, 내가 참 좋아해. ‘인생이란 다만 걷고 있는 그림자. 무대 위에 나타나서 무슨 말인지도 모를 몇 마디 대사를 내어뱉고 무대 밖으로 사라져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초라한 단역배우에 불과하다.’ 우리는 다 초라한 단역배우들이야. 무대 위에 잠깐 나타나서 횡설수설하다 사라졌는데 다시는 무대 위에 못 나타나, 단역이라서. 다 그런 거지. 그렇지만 단역도 빛날 때가 있고. 이 세상에 나온 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지만, 연극은 내가 선택한 거잖아요. 그럼 책임도 져야지. 어떨 때는 기쁘게, 어떨 때는 슬프게, 어떨 때는 힘들게, 어떨 때는 아주 외롭게. 연극이라는 시간, 연극이라는 단어 아래서 결국은 무대에서 말이야.

 

<19 그리고 80> 여든 살까지 공연하는 게 꿈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는데, 벌써 내년이네요!


내년에 해야지. 내년에 내가 여든이 되는 건 확실하니까(웃음). 연출은 윤석화 씨가 할 거예요. 오래 전에 약속했거든. ‘내가 80이 되면 연출은 석화 네가 해라’라고. 연극배우로서 이만한 축복이 어디 있어요. 내년까지 건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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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