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여행기담(海底旅行奇譚)」
한국에 처음 소개된 SF는 일본 유학생들의 소식지였던 <태극학보(太極學報)>에 1907년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번안해 수록한 「해저여행기담」이었다. 이 작품은 잡지 8호부터 21호까지 총 11회 연재되었고, 여러 명의 번역가가 돌아가면서 번안한 것으로 보이지만 완결이 되진 못했다. 이 작품은 근대화의 표상인 서구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계몽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었다.
「K 박사의 연구」
한국 창작 SF의 처음은 의외로 대중에게 익숙한 소설가 김동인이었다. 그가 1929년 잡지 『신소설』에 발표한 이 작품은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분(人糞)을 식량으로 변환하는 연구를 하는 K 박사의 연구 과정과 결과에 관한 이야기다. 이 시기까지 SF의 전형적 특징인 경이로운 세계나 모험 등이 등장하진 않지만 당면한 문제의 해결을 근대적 과학기술로 해결하려는 이야기는 SF라고 해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해방 이후 한국 SF의 맥락을 이어주는 작품은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에서 많이 나타났다. 한낙원의 『금성 탐험대』 는 1962년부터 2년간 월간 『학원』에 연재된 작품이다. 특히 이 시기는 냉전과 우주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SF도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한국의 예를 『금성 탐험대』 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이후로도 아동ㆍ청소년 문학에서 SF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형식이 되었다.
번역 작품 소개에서 시작해, 아동ㆍ청소년 대상의 동화 위주로 소개되던 한국 SF에 본격적인 성인 대상 작품을 꼽으라면 1965년 발표된 문윤성의 『완전사회』 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제1회 <주간한국> 추리소설 공모전에서 입상한 이 작품은 젠더에 대한 진보적 설정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SF를 통해 젠더에 대한 사고 실험들이 이루어지던 때이기도 했다.
아이디어회관 세계 SF 전집
1975년 아이디어회관에서 60권짜리 ‘소년소녀 세계 에스에프 전집’을 발간했다. 여기에는 세계 유명 SF 작가들의 작품과 한국 SF 작가클럽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전집 추천사를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 최형섭이 썼을 만큼 국가적으로도 중요성을 인정한 기획이었다. 한국 SF의 대중적인 경험 층위들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기반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생』
한국 SF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영역은 만화이고, 그중에서도 1970년대 이후 폭발적 발전을 보인 순정만화에서 SF 요소는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해당 시기에 발표된 순정만화 중에서 뛰어난 작품이 많고, 이후 다양한 영역의 작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85년 신일숙이 발표한 『1999년생』은 주목할 만하다. 이 외에도 강경옥, 황미나 같은 한국 순정만화 르네상스 시대 작가들의 작품에서 SF 작품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복거일은 한국 SF 연대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학계나 문단의 지면에 과학소설 혹은 SF라는 말을 유통할 여지를 만들어주었다. 1987년 발표한 『비명을 찾아서 - 경성 쇼와 62년』은 한국 SF 역사에서 드문 대체 역사소설로, 그 설정과 서술의 완성도가 훌륭한 수작이다. 복거일은 이후로도 PC 통신에 먼저 연재한 뒤 출간한 『파란 달 아래』, 『역사 속의 나그네』 같은 SF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SF를 마니아 영역이 아닌 대중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걸 알리는 데, 세속적일지라도 문학상 수상은 의미가 있다. 배명훈은 2000년대 이후 한국 SF가 가진 역량을 대중에게 알린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과학기술창작문예에서 데뷔한 후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다 SF 소설인 「안녕, 인공존재」로 제1회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물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타워』 역시 2000년대 이후 과학적 상상력이라는 의미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대리전』
한국 SF는 PC 통신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격렬한 변화를 일으킨다. 아이디어회관 전집이나 순정만화 등을 통해 쌓은 경험에, PC 통신 동호회 등을 통해 외국 작품을 직접 번역하고 공유하던 정보들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다양한 작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 한 명을 꼽으라면 ‘듀나(DJUNA)’이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대리전』은 한국에서, 한국 작가가,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어 용어를 사용한 SF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표본을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019년은 한국 SF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한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 중심에 김초엽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우수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며 등장한 김초엽은 이후 펴낸 첫 번째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 ‘2019 오늘의 작가상’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작가상 수상과 추천도서로 선정됐다. 김초엽은 한국 SF가 가진 역량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중요한 지표로 이후로도 계속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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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인공존재!배명훈 저 | 북하우스
겉보기엔 돌멩이와 다름없는 제품, 기능성 제품이 아닌 존재성 제품에 가까운 '인공존재'가 등장한다. '경수'의 옛애인이자 현재의 친구이며 이 상품의 개발자인 '우정'이 자살하면서 이 제품을 그에게 남긴다.
이지용(건국대학교 학술연구교수, SF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