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에세이 장르 외에 건축, 예술, 디자인 분야의 책을 많이 해 본 편이다. 같은 책이어도 접근하는 방식이 매우 다르고 작업하는 순서나 작업량도 다르다. 어찌됐든 이미지가 많아지면 그만큼 이미지에 대한 이해 -> 선택 -> 배치 -> 수정, 보정 등의 작업량도 함께 많아지기에 디자이너의 취향과 잘 맞을 때는 이미지만 봐도 참 즐거운 작업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지루한 작업이 될 수도 있다. 그래픽 노블을 작업할 때는 스토리를 읽으며 그 다음은? 하며 궁금해하다 보면 작업이 끝나곤 했다. 건축서를 하다 보면 건축 공부를 하게 되고, 예술서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전문가가 되어 간다. 문학의 텍스트를 다루는 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만들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에.
표지와 내지가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
오래 전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터라 브랜드, 편집숍 등을 정기적으로 살펴보는 편이다. 마침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책을 하게 되었는데 브랜드 히스토리와 간략한 정보 등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미지가 정말 많아서 고르는데 분명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게다가 시안 작업을 해야 하는데 전체적인 톤(색감)이 먼저 잡혀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다. 본문의 색이 표지로 연결될 것을 먼저 구상하고 있었기에 4개의 챕터가 가지는 컬러 컨셉이 표지와 잘 맞을지도 중요했다. 이케아에서 에르메스까지의 색은 어떤 조합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고른 4개의 톤은 조금 발랄한 톤이었다. 그리고 본문에 반복될 도비라와 챕터 시안을 러프하게 잡아보았다.
Contemporary Living / High-end Living / Interior Material / Vintage Living & Gallery 4개의 챕터를 대표할 가구 이미지를 넣되, 컬러와 부딪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흑백이미지로 가기로 했다. 도비라 페이지를 넘기면 배경 컬러, 도입글과 어울리는 느낌 있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공간과 가구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책 전체의 느낌은 무심한 듯 면을 나눈 콘셉트로 가되 답답하지 않도록 화이트 면적이 부분적으로 살아있도록 했다. 일종에 숨 쉴 부분을 만들어 두는 것인데 화면상으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실제 재단되고, 제본을 해두면 화면보다 언제나 작고, 좁게 느껴지게 된다.
그렇게 나는 좋아하는 색으로 채워질 시안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표지는 이렇게 가야지~ 하고 나름 머릿속으로는 완성을 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피드백이 왔다. 레이아웃이나 컨셉은 좋은데 컬러의 채도나 대비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었다. 이 조합을 꼭 하고 싶었기에 아쉬움이 컸지만, 주저할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조합으로 가는 게 좋을까? 저자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컬러를 선택해야한다는 점을 놓쳤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채도와 대비를 낮추고 부드러운 컬러들의 조합으로 바꾸게 된다. 이제 가장 큰 부분이 해결되었으니 열심히 이미지를 고르면 된다. 레이아웃과 스타일, 컬러, 서체 등 모든 부분이 확정되면 그 후로는 신나게 이미지를 선택하며 페이지를 채워간다.
사심을 담아 좋아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더 넣어 보기도 하고, 챕터의 메인으로 사용해보기도 한다. 표지에 넣는 이미지에서 고민이 시작되었는데, 분명 임팩트도 있고, 균형이 맞는 이미지는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제품에 의미를 담게 되면 갑자기 표지에 써야 할 이유가 딱히 없어지는데 의미를 두고 넣으려다보니 마음에 드는 이미지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표지디자인의 가장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 바로 ‘표지에 왜 이 이미지를 넣었나?’이다. 내 기준은 실루엣과 디자인이 심플한 것을 넣는 것이었고, 여러 개를 넣는다면 겹치지 않는 가구이미지를 넣는 것이었다. 이 의자는 현재 수입을 하지 않는다거나 이 테이블은 너무 고가라는 이유로 사용하기에 조심스러워지는 이미지도 있을 수 있고, 어떤 가구는 빈티지 느낌이 강해서 오래된 디자인책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양하게 넣어보니 누가 봐도 표지에 걸 맞는 모습을 하고 있는 이미지는 정해져 있었다. 포기할 수 없는 실루엣을 지닌 이미지를 뒤표지에 똑같은 레이아웃으로 넣었다.
그렇게 표지는 정해졌고, 제작에 관한 일들이 남았다. 한정수량으로 양장본 제작을 하게 되었는데 책의 모서리가 상할 수 있으니 랩핑을 하기로 했다. 홍보할 띠지를 두르는 것보다 랩핑한 뒤 간단한 스티커를 제작하여 붙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양장의 매력은 박을 찍었을 때 고급스러움이 더해진다는 것인데, 미묘한 차이지만 초코박이 잘 찍히게 하기 위해 두 번씩 찍게 되었고, 앞과 뒤의 면지 디자인을 달리하여 펼쳐볼 때 소소한 재미를 주도록 했다. 이렇게 이 책은 일정에 맞춰 나왔고, 만족스러운 디테일을 가진 책이 되었다. 작업하면서 가끔 멈칫하는 순간이 있었다면, 마음에 드는 제품이 보여 그것을 찾아보다가 시간이 가버리거나 구입할 수는 없으나 역사라도 알자..는 마음으로 제품에 대해 살펴보게 되기 때문이다. 디자인 콘셉트에 대해 처음부터 ‘인테리어 책이니 디자인적으로 오브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오히려 책 전체를 보고 틀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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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베스트 리빙 가이드 65 The Best Living Guide 65 정은주 저 | 몽스북
리빙에 대한 식견을 넓히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지도 삼아 직접 방문해볼 것을 권한다. 감각 있는 공간 스타일링을 원하는 리빙 피플, 길잡이 역할을 하는 브랜드 소개서를 원했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도 꼭 필요한 리빙 참고서가 될 것이다.
석윤이(그래픽 디자이너)
열린책들에서 오랫동안 북디자인을 했다. 현재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