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크루에서 만드는 에세이 구독 서비스 <책장 위 고양이>에서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에세이를 격주 월요일, <채널예스>에서 소개합니다. <책장 위 고양이>는 7명의 작가들이 돌아가며 1편의 에세이를 매일 배달하는 구독 서비스입니다. |
마트에서 비로소
대체로 매사에 두괄식이기보다 미괄식인 인간이었다. 이를테면 ooo이 되고 싶다, ooo가 되어야겠다, 같은 목표를 첫 문장으로 두고 그에 맞춰 정진하기보다는, 그때그때의 흥미와 처한 상황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우연들을 따라서 시간의 보폭대로 걷다가 ‘ooo가 되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맞닥뜨리곤 하는 식이었다(이 뒤로 새로운 문단이 시작되면 더 이상 마지막 문장도 아니겠지만). 미괄식의 나쁜 점은 뚜렷한 목표가 없어서인지 종종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남에게만 그렇게 보이면 모르겠는데, 내가 나를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무척 피곤해진다.
첫 번째 책이 세상에 나오기 3년 전쯤이었다.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팬픽이나 블로그 포스트를 꾸준히 써왔고, 그것이 몇몇 매체에 고료를 받고 개재하는 원고로 이어졌던 터라 나는 당시 나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조심스레 정체화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렇다면 ‘작가가 되고 싶다’ ‘작가가 돼야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러저러한 글을 쓰고 싶다’(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글을 쓰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차별에 맞서는 글을 쓰고 싶다) 같은 목표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이마저 없는 건 너무 나태한 게 아닐까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나태는 결국 비윤리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 쉬운 나이브함과 자유로운 척 하는 비겁함이 자라기 좋은 토양이기에 나는 좀 초조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이 문제에 관해 고민했다. 이것만큼은 두괄식이고 싶었다. 첫 문장을 꼭 찾고 싶었다. 쉽지 않았다. 첫 문장을 찾는 건 언제나 어렵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T와 동네의 중형 마트에 들렀을 때였다. 원체 마트 구경하는 걸 좋아해서 외국 여행에서도 박물관에 간 것 마냥 마트탐방(사실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먼 미래의 박물관 전시품들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에 시간을 아낌없이 쓰는 우리는 앞으로 자주 애용하게 될 마트와 낯을 트기 위해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한 구석에 걸려있는 처음 보는 물건을. 작은 솔이 수직으로 꽂혀있는 작은 플라스틱 통으로 이름은 ‘김솔통’이었다. 김솔통??? 마치 ‘5학년 2반 11번 김솔통 학생’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이 이름을 우리는 처음 들었는데, 김에 기름을 바를 때 쓰는 ‘김솔’을 담아두는 통이었다.
손으로 직접 음식을 만들거나 손질하는 데에 전혀 취미가 없어서 요리, 조리 다 피하면서 살아오느라 요리용품이나 조리도구의 세계에 무지한 나는 물론이고, T에게도 생소한 물건이라고 했다. 나는 김솔통을 보고 아주 작은 충격을 받았다. 일단, 온갖 물건이 다 있는 대형마트도 아니고, 한방용품샵이라든지 복싱샵처럼 전문적인 물건을 파는 가게도 아니고, 응당 이질적인 물건이 섞여있는 외국의 어느 소도시에 있는 마트도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물건으로 가득한 동네 마트에서, 그래도 내가 장장 삼십 몇 년을 살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을 발견했다는 게 신선했다. 게다가 그 물건이 하이브리드하거나 4차 산업혁명의 기색을 살짝 뿌려놓은 현대적 무언가가 아니라 이렇게 모양새도 용도도 단출한 김솔통이라는 것도.
이 생활감 넘치고 묘하게 합리적인 작은 물건은 나의 인식의 몇 단계를 한꺼번에 꿰뚫었다. 단지 몰랐던 물건을 처음 알게 된 것 이상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외할머니가 이따금씩 네모난 김들을 한상 펴놓고 김솔로 기름을 바르던 모습이, 엄마가 소풍 전날 김밥 위로 김솔을 왔다 갔다 문지르던 모습이 고소한 들깨냄새와 함께 떠올랐다. 그때 그 옆에 김솔통 같은 게 있었던가? 모르겠다. 있었던들 딱히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이다. 김솔의 존재를 기억해낸 것도 십몇 년만인데 심지어 그것을 담는 ‘전용’통이라니. 오직 김솔이라는(평소 이 물건의 일상노출도를 생각했을 때 너무나 마이너하게 느껴지는)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따로 만든 통이라는 게 존재한다니. 그 사실이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정답게 느껴졌다. 게다가 김솔통을 보고나니 김솔을 효율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쓰고 나서 이 통에 꽂아두면 진짜 딱이네! 김솔통에 기름을 부어넣고 솔을 찍어가며 써도 좋겠다! 어쩐지 신이 난 채로 김솔통 앞에 서서 T와 이런 말들을 주고받다가 문득 이 미괄식 인간의 머리에 두괄식 문장이 새겨졌다. 아니, 마음에 새겨졌다.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그래, 이거였다. 나는 갑자기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어졌다. 지구상의 중요도에 있어서 김도 못 되고, 김 위에 바르는 기름도 못 되고, 그 기름을 바르는 솔도 못 되는 4차적인(4차 산업혁명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4차적인) 존재이지만, 그래서 범국민적 도구적 유용성 따위는 획득하지 못할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 잉여로우면서도 깔끔한 효용이 무척 반가울 존재. 보는 순간, ‘세상에 이런 물건이?’라는 새로운 인식과 (김솔처럼) 잊고 있던 다른 무언가에 대한 재인식을 동시에 하게 만드는 존재. 그리고 그 인식이라는 것들이 딱 김에 기름 바르는 것만큼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 김솔통. 드디어 찾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 두괄식을 만들어줄 첫 문장.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살면서 이때가 가장, 어쩌면 유일하게 작가라는 정체성에 가까워진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첫 문장을 덜컥 써놓은 뒤로 5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써온 글들이 과연 김솔통과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지만(너무 대단한 물건을 목표로 잡았는지도......), 그래도 일단 오늘도 쓴다. 잘 보이지 않고 잊히기 쉬운 작고 희미한 것들을 통에 담는 마음으로. 오늘도.
<김혼비 작가의 말>
김솔통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날 마주친 것과 제일 비슷하게 생긴 것을 인터넷 이미지 검색으로 골라봤어요. 홍대 산울림 소극장 골목 끝에는 올 가을이면 10주년을 맞는 카페 ‘아메노히’가 있습니다. 그 카페의 주인인 시미즈 히로유키 작가가 쓴 『한국 타워 탐구생활』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무척 사랑하는 책입니다. 저에게는 김솔통 같은 책이라 문득 생각났어요.
<셸리의 말>
'김솔통'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소? 실은 나 셸리 또한 김솔통이라는 말을 들어본 것이 처음이오. 그 성정이 세심한 데다가 목숨은 아홉 개인 족속의 듣는 귀도 빠져나간 통 모를 낱말을 포착하다니, 작가란 이들은 참으로 집요하고도 대단한 듯싶소. 게다가 이를 제재 삼아 에세이로 써보낸 김혼비 작가는 또 얼마나 대단하오?
차설 - 상게한 바와 같이 김혼비 작가는 김솔통처럼 나름의 중요성이 있는, 인식과 재인식의 계기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하오. 이에 그대 독자에게는 내 묻건대, 읽는 그대가 찾는 것은 무엇이오? 혹은 김혼비 작가의 글에서 무엇을 찾았소? shelley@bookcrew.net 으로 답해주거나, 게시판에 글로 남겨주시오. 아래 덧붙이는 것은 지난주 못 다한 김혼비 작가의 소개, 그리고 내 작은 선물이오. ‘코로나19’로 인해 집을 나서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현지 시각 3월 22일까지 무료로 매일 다른 오페라를 '스트리밍'해준다고 하는데, 그대가 뉴욕에서 상연되는 오페라를 '스트리밍'으로 보는 일 또한 김솔통만큼 나름대로의 ‘낯설게 보기’, 혹은 ‘소격’의 ‘모멘트’ 아니겠소? 다소 과한 농을 던지며, 이만 총총.
추천기사
김혼비(작가)
2020.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