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소설가의 임무는 이미 빈사 상태에 처해 있는 소설의 죽음에 완전한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라고 소설가 정영문은 그의 작품 속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말했다.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에 나오는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소설이 죽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방금 알게 된 그 죽음의 불완전함에 완전한, 그리하여 두 번 다시 회생을 기대할 수 없는 확실한 죽음을 안기는 것이 소설가의 임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소설가의 임무는 독자를 놀라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그는 이제 지구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종류의 인간, 다시 말해 소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라고 소설가 정지돈은 민병훈의 소설에 대해 말했다. 민병훈의 소설은 정영문의 소설과 무척 닮았는데 정지돈이 민병훈을 일컬어 소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멸종류’라고 말하다니. 언뜻 모순되는 것 같지만 소설 그 자체에 관심 있는 사람, 소설 그 자체에 대해 쓰고자 하는 사람만이 소설의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으므로 소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민병훈과 소설의 죽음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소설가의 임무라고 말하는 정영문은 분명 같은 부류, 그러니까 같은 위기에 처해 있는 소설가임에 틀림없다.
몰입감을 주지 않는 읽기, 아름다운 문장과 지적인 사유를 포기한 쓰기, 모종의 “뉘앙스”에 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규정하기 힘든 감각과 사유로 뭉쳐진 덩어리”. 신인소설가 민병훈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소수만이 읽고 쓰는 그 소설을 두고두고 읽고 싶단 생각이 든다. 소설에 대한 그의 에너지도 함께.
『재구성』에 수록된 소설은 사유의 흐름을 따라 자유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요. 이런 작품을 읽으면 소설이 시작되는 순간이 궁금해져요. 소설이 쓰고 싶어지는 상황에 대한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소설이 너무너무 쓰고 싶어지는 한순간이 있을까요?
주로 산책을 할 때 소설이 시작되곤 합니다. 익숙한 동네나 낯선 여행지, 도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등 여러 곳을 걸으며 어떤 기억들을 떠올려요. 그럴 때면 전체 분위기와 연관된 장면 혹은 문장이 떠오릅니다. 쓰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꾹꾹 눌러 메모해 뒀다가 작업을 시작해요. 마감을 앞두거나 소설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정말 많이 걷습니다. 독서나 영화를 보는 일도 다른 감각의 산책으로 느껴져서 종종 아이디어를 얻고는 하고요. 소설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 일들을 할 때 소설이 너무 쓰고 싶습니다. 사실 생활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소설과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지만, 최대한 멀어졌다고 느낄 때 소설이 쓰고 싶어져요.
독자들에게 소설집 『재구성』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혹은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귀띔해 주셔도 좋겠어요!
이전 시기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풍경이 바뀌고, 지나치거나 누락된 것들이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닐까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소설은, 소설만이 전달할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재구성』은 여러 기분과 뉘앙스에 대한 책입니다. 그동안 잊고 지낸 감정이나 기분이 있는 건 아닐까, 그게 뭘까, 궁금해지는 순간에 『재구성』을 읽어 주시면 좋겠어요.
소설을 읽고 나면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위기, 또는 어떤 한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서사 중심의 소설과 작법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퇴고할 때 가장 집중하는 영역이 있으면 어떤 걸까요?
문장을 가장 집중해서 고칩니다. 고칠 수 있을 때까지 고치고, 다시 보고, 또 고쳐요. 문장에서 비롯된 분위기가 어떻게 전달될지 내내 고민합니다. 문장들을 읽어 내려갈 때의 리듬감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최대한 소설적인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합니다. 잘 다듬어진 하나의 이야기, 울림을 주는 서사도 중요하지만 전달 방식인 문장에 가장 집중해요.
노태훈 평론가의 말처럼 이 소설집에는 기존의 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공간들이 많이 나와요. 주로 일상에서 거리가 멀다거나 인간을 압도하는 공간들인데요, 공간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감각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그 공간에 놓인 인간과 인간들의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공간이 가진 기억은 인간과 뗄 수 없고 나아가 사회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공간성이 부각되면 인과성과는 다른 차원의 의식이 발생하지 않을까 했고요. 실제로 어떤 순간을 떠올릴 때 연대기적인 시간보다는 공간과 장소가 떠오르곤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공간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10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애정하는 작품을 꼽아 주실 수 있을까요?
제일 앞에 수록된 「장화를 신고 걸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연꽃 사이를 헤치며」를 꼽고 싶어요. 시작부터 퇴고까지 9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인지 가장 애정이 갑니다.
작가님에게 소설이란 무엇인가요?
스스로 저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입니다. 소설은 제게 창작하는 행위 자체가 목적인 작업이에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며 항상 두드립니다. 나는 어디에 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개인적인 것을 넘어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작가로서의 꿈이 있다면요?
고유한 작가가 되어 책을 많이 출간하길 바랍니다. 이름을 떠올렸을 때 특징적인 인상이 떠오르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요.
* 민병훈 2015년 [문예중앙]에 「버티고(vertigo)」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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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