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햇님 작가는 삶의 안온함 속에서 뭉그적거리기를 좋아하던 여자. 남편을 만나 자신의 인생이 파란 많은 삶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결혼 2년 차, 사표를 던지고 남편과 느지막이 유학길에 올랐지만, 뚜렷한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남편은 언제나 괜찮다고 말한다. 때론 긍정적이라 의지가 되고, 어떨 때는 그 모습이 답답해 한숨이 나오고……. 감정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바뀌던 어느 날, 남편이 먼저 제안했다. 자신을 소재로 글을 써보라고. 그래서 쓴 글이 『남편이 미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되었다.
현재 남편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식물을 기르고, 박햇님 작가는 회사로 복귀했다. 회사를 쉬는 동안 비정기간행물 〈작은 가게 VOL.1〉의 원고를 집필했으며 옮긴 책으로는 『365일 생각하는 빵』, 『꼬마 빵 레시피』 , 『고잉 그레이』 가 있다.
남편이 미운 아내들은 많겠지만, 그로 인해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사람 그로 인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은데요. 글을 쓰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남편 때문에 일본에서 힘들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뒤, 한동안 마음을 잡기 힘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그래 어쩔 수 없지’ 했다가도 어느 날은 마음이 가라앉고 눈물만 나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을 붙들고 솔직한 심정을 얘기했어요. 이러다 정신병 걸릴 것 같다고. 근데 남편이 진짜 쿨하게 자기 욕 글로 다 풀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거의 유령 계정이던 브런치에 처음으로 작가 신청을 하고 글의 개요를 올리면서 이 글이 시작됐어요.
실제 글을 쓰시고 나서 작가님께 일어난 변화들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남편이 멍석도 깔아줬겠다 진짜 칼춤 한 판 시원하게 출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프롤로그랑 글 두세 편을 올리니 심각한 마음이 사라지고 이 상황이 재미있어지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브런치 독자분들이 ‘라이킷’도 많이 눌러주시고 댓글로 응원도 해주셨거든요. 초반에 구독자가 확 늘어서 그것도 신이 났고요. 또 저랑 비슷한 상황이라며 공감해준 분들도 많았고, 그런 분들이 여전히 굳건하게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또 해외 생활을 버티고 계시다는 게 힘이 됐던 것 같아요. 그 이후부터는 남편을 분석해보는 느낌의 글도 쓸 수 있었고, 내가 힘든 게 사실 이 선택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주변을 너무 의식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책을 출간한 뒤 이 책의 주인공이 되신 작가님 남편의 반응이 가장 궁금합니다. 시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반응도요. 혹시 책을 내실 때 부담은 없으셨나요?
우선 이 책을 마무리한 뒤 에세이 작가님들께 존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에세이를 쓴다는 건 자기 얘기를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자기검열이 좀 심했던 것 같아요. 쓸 때는 못 느꼈는데 교정을 볼 때부터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저를 초조하게 하더라고요.
글을 써보라고 먼저 제안했던 남편도 본격적으로 제목 논의를 할 때 ‘남편이 미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라는 안이 나오자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제 글을 본 적이 없으니 도대체 무슨 내용을 썼기에 저런 제목을 달게 되었는지 의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제가 고민하는 상황이 안쓰러웠는지 나중에는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멘토 몇 분께 초고를 보여드리면서 의견을 여쭤봤어요. 다들 격려해주시고 이 제목을 너무 좋아하셔서 조금은 부담감을 내려놓고 최종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책이 나오고는 오히려 남편이 즐거워하는 눈치예요. 저보다 더 열심히 서평도 읽고 ‘좋아요’도 누르면서요. 시아버님도 마찬가지세요. 저보다 더 열심히 홍보 중이시죠. 아버님 지인 분들이 며느리에게 주신다고 책을 구매하셨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네요.
책 제목이 꽤 센데요. 그 때문인지 SNS에서 제목에 대한 반응도 뜨겁습니다. 제목만 읽고 ‘앗!’ 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앞에서도 말했듯 제목이 불특정 다수가 볼 때는 웃을 수 있는 제목이지만 당사자(남편까지 포함)에게 과연 적절한 제목일까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그리고 제목만큼 센 내용이 아니면 ‘제목이랑 완전 다른 얘기 같은데?’라며 실망하는 독자가 생길까 봐 괜히 우려가 되기도 했고요. 제목이 다소 세다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것이 책을 쓰게 된 진짜 동기입니다. 그 지점이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 책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고민의 여정이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담겨 있어요. 비슷한 이유로 고민하는 독자들이 계시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 부부에게 맞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남편과 역할 바꾸기를 시도하고 계신데요.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 그것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어려운 점은 아무래도 사회적 편견이겠죠? 우리 부부가 괜찮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도 다 똑같이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요. 살림과 육아를 책임지고 있는 남편을 여전히 ‘책임감’이라는 테두리로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여성으로 태어나 자라면서 저 역시 이런저런 불합리한 경험이 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내 역량을 다하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성희롱, 차별 대우, 결혼 및 출산 이후 사회적 고립이나 박탈감을 겪는 것 등 모두가 제 일이었죠. 그래서인지 남자들이 말하는 역차별이라는 건 크게 고려한 적이 없었어요. 여자들의 고충에 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역할을 바꾸고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 한 번 못 받고 매일 초조해하며 살림과 육아를 하는 남편을 보니 그 사람도 결국 약자더라고요. 번듯한 직장에 다녀야 하고 가정 경제를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야 한다는 생각, 가족을 위해 적성에 안 맞고 힘들어도 무조건 버텨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들이 남편에게는 보이지 않는 폭력인 게 아닐까 싶어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남자들의 육아휴직 1년이 보편화되면 부부가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달라지지 않는 문제들을 보면서 결국은 사회와 제도가 바뀌어야 가능한 건가, 생각이 많은 요즘입니다.
오늘도 남편(혹은 아내) 때문에 화가 나고, 갈등을 겪고 있는 분들께 한 마디 해주세요.
아직 7년 차밖에 안 된 제가 감히 조언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화가 났을 때는 회피하지 않고 싸우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제 경우를 보면 다툼을 피하느라 좋지 않은 감정이 쌓이게 되면 결국 상대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그건 꼭 연인이나 부부 관계만이 아니라 친구, 직장 동료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 같아요. 책에서도 적었지만 싸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푸느냐입니다. 그런데 푸는 방법을 서로 맞추려면 결국 싸워봐야 알 수 있거든요. 선을 넘지 않으면서 되도록 많이 싸워보시길. 그리고 저처럼 글을 써보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
첫 책인데요.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세요? 그리고 『남편이 미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와 함께 읽으면 좋은, 부부관계에 도움이 되는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려요.
조금 전에 친구한테 문자가 왔어요. 제 책을 읽고 있는데, 심중에 있는 것을 돌려 말하지 않는 게 꼭 저 같은 글이라고요. 그러면서 ‘작아지지 않게 잘 가는 사람’이라고. 엄청난 칭찬이라서 좀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어요. 또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단단하게 해주는 글을 쓰고 싶어요.
부부관계를 의식해서 책을 읽는 편은 아니지만, 다양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그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전지적으로 바라보면서 상처와 결핍, 기괴함, 소통의 부재 등을 살피면서요. 그러면서 건강한 관계를 제 나름대로 상상하면 삶에서 적용할 부분이 나오더라고요. 사랑에 대한 제 관념을 크게 바꿔놓은 책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입니다. 그 외에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은 주로 고전이에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 , 윌리엄 서머셋 모옴의 『인생의 베일』 ,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등을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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