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이든 영양제든 우리는 거의 매일 약을 먹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약 성분들이 우리 몸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고 싶어도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약국에서 묻기도 왠지 조심스럽고 인터넷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찾기 쉽지 않다. 『이 약 먹어도 될까요』는 이런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책이다.
『이 약 먹어도 될까요』의 저자 권예리는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병원 두 곳에서 약사로 일했다. 종합병원과 중소병원을 거치며 약 조제부터 복약지도, 재고관리 등 약사로서 해야 하는 업무 전반을 경험했다. 이후 동네약국에서 수많은 손님과 만나고 대화하며 여러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하나의 약에 딸린 여러 이름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지였다.
어릴 때부터 외국어와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병원에서 일할 때부터 퇴근하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번역했다. 그렇게 『은밀하고 위대한 식물의 감각법』,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등 약 서른 권의 과학 도서를 번역하면서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다. 지금은 번역하고 글을 쓰면서 동네약국에서 일일약사로 일하고 있다.
약사로 일하면서 과학책도 약 서른 권이 넘게 번역하셨어요. 『이 약 먹어도 될까요』는 약사로서 첫 집필 도서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약 관련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오랜 시간 번역으로 호흡을 맞춰왔던 출판사에서 책을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줬어요. 이미 나와 있는 책들과 비슷했다면 굳이 쓰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이 약 먹어도 될까요』는 약의 이름, 특히 성분명에 중점을 둔다는 점이 특별했어요. 약사들이 약대에서 약을 배우고 연구할 때는 성분명을 부르지 제품명을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서 해열진통소염제를 다룰 때는 이부프로펜이라고 하지 애드빌정이라고 지칭하지는 않지요. 약의 원리와 부작용은 성분명을 따라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약국 현장에서는 손님들이 제품명으로 약을 찾아요. 그래서 약사는 속으로 그것을 성분명으로 변환해서 생각하는 일이 날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성분명에 관심을 갖고 궁금해 하는 독자가 늘고 있어요. 그래서 읽다 보면 자연스레 성분명에 익숙해지는 책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분명을 알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성분명은 약효를 내는 화학물질에 붙인 이름입니다. 같은 성분에 많게는 수십, 수백 가지 브랜드명이 붙어 있어요. 나에게 특히 잘 듣는 약이 있거나 부작용이 심해 피하고 싶은 약이 있다면, 제각각의 제품명을 기억하는 것보다 어느 약국이나 병원에서도 금세 알아듣는 성분명을 알고 있는 편이 효율적입니다. 성분명을 확인하는 버릇을 들이면, 성분이 같은 약을 중복으로 먹는 일도 막을 수 있죠. 혹시 외국 여행이나 출장 중에 갑자기 약이 필요하거나 급하게 병원에 가게 되어도 현지의 의사, 약사와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집필하시면서 특별히 신경 쓰신 점이 있나요?
먼저 여성에게 중요한 정보를 많이 담으려 했습니다. 저 자신이 여자이고, 제 어머니, 여동생, 친구, 직장 동료가 여자만 겪는 문제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걸 봐왔으니까요. 피임약, 생리통, 생리전증후군, 임신진단테스트기, 임신과 수유 중의 약 복용, 갱년기에 관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을 약사의 시각으로 정리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보만 나열하면 자칫 사전이나 약품설명서와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도 주의했어요. 사실 약의 유래, 이름, 개발과정을 살펴보면 엉뚱한 이야깃거리가 많거든요. 아직 임상시험 중이던 이부프로펜을 삼킨 과학자도 있고, 멀미하는 우주비행사에게 주는 약 이야기나 실데나필(비아그라)가 부작용에서 시작된 에피소드 등이에요. 책의 곳곳에 적어두었으니 이런 이야기들만 찾아서 읽어도 재미있을 거예요.
그리고 약의 원리와 부작용을 약간 더 깊이 있게 설명했습니다. 항체, 수용체, 효소, 교감신경 등 약의 작용원리와 관련된 우리 몸의 요소에 관해 쉽게 풀어썼는데, 이는 기존의 약 관련 교양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도 파악되지 않던 지점이 너무나 쉽게 이해될 수 있어요. 약을 먹기 위해 이런 내용을 반드시 읽고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책을 읽다가 맞닥뜨리면 그냥 지나쳐도 무방해요. 다만 점차 배경지식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목차를 보면 진통제부터 위장약, 변비약, 알레르기약, 수면유도제 등등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봤을 약들로 구성하셨어요. 책에 수록된 약들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정하셨나요?
우선 최근 몇 년간 약국에서 많이 팔린 의약품 목록을 살펴봤습니다. 아무래도 고령자를 위한 약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20~40대가 생활 속에서 자주 만나는 약들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전문의약품도 빼먹지 않았어요. 친숙하고 자주 쓰는 약은 일반의약품이지만, 전문의약품 중에도 그에 못지 않게 자주 쓰이는 약들이 있습니다. 항생제,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이 심할 수 있어서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자주 처방되기에 더욱 주의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최근 가장 많이 처방된 의약품 목록도 참고했습니다.
책 속에 그동안 몰랐던 약 상식이 많이 담겨 있는데요. 약사로서 일하면서 사람들이 이런 점만은 알아두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점이 있을까요?
진통제 중에 아세트아미노펜은 식사와 관계없이 먹어도 됩니다. 공복인지 아닌지 신경쓰지 않고 아플 때 바로 먹어도 되니 기억해두면 편해요.
반면 복용 간격과 기간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약들도 있습니다. 항생제는 복용을 시작하면 빠뜨리지 않고 지시대로 전부 복용해야 합니다. 항생제 저항성(내성)이 생긴다고 중간에 그만 먹거나 빠뜨리기도 하는데 그러면 오히려 더 저항성이 생길 수 있어요. 스테로이드 약은 꼭 필요할 때 병원에서 처방하는데, 복용을 멈출 때가 되면 갑자기 중단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용량을 줄입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심한 부작용을 겪을 위험이 커요. 특히 스테로이드 약은 복용 중에 증상이 확 좋아져서 몸이 나았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멈추면 곧장 더 심해질 때가 많아서 처방대로 전부 복용해야 합니다.
『이 약 먹어도 될까요』가 책으로 나온 것을 보셨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직접 쓴 첫 책이라 무척 기뻤습니다. 특히 가족들이 좋아하고 응원해줬어요. 사실 저는 약을 잘 안 먹습니다. 병원도 꼭 필요하지 않으면 안 가고요. 병원에서 주사를 놓으려 하면 주사약의 성분을 확인합니다. 되도록 약을 쓰지 말자는 쪽인데 사람들에게 약을 권하는 직업인이 되어도 될까 고민도 컸답니다. 그런데 약에 관해 배우고 나니 오히려 더 좋아요. 약을 왜 써야 하는지, 왜 쓰지 말아야 하는지 훨씬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약을 무조건 피하지도 않게 되었고, 배운 내용을 많은 이와 나누는 책도 쓸 수 있었고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실까요.
약이 불편한 점을 마법처럼 제거해주는 손쉬운 해결책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아요. 예를 들어 수면제를 먹으면 숙면을 취하고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다음 날이면 약의 영향력이 감쪽같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 몸은 아주 복잡하고 정교해서, 일부분만 따로 치료하거나 제거할 수 없습니다. 약을 먹었을 때의 유익함이 먹지 않았을 때의 해로움보다 큰 경우에만, 몸에 무리를 줘서라도 약을 먹어 증상이나 질병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약이 나에게 꼭 필요할 때 올바르게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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