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각 케이크와 원효대사 블렌드 차를 같이 먹을 수 있을까
동아시아의 문화를 수놓은 차, 향, 꽃에 관한 취미를 한데 묶어서 살펴본 책, 『차·향·꽃의 문화사』를 함께 읽어봅니다.
글ㆍ사진 곽재식(작가)
20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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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향·꽃의 문화사』

김영미 저 | 글항아리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매우 많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깨고 뇌가 약간 각성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 속의 카페인이라는 성분 때문이라는 사실도 상식에 속한다. 그리고 카페인은 커피뿐만 아니라 녹차에도 많이 들어 있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 돌아보고 나면, 굉장히 이상한 사실이 하나 있다. 

 

도대체 왜 카페인이라는 사람의 뇌를 깨워 주는 특이한 물질이 왜 커피나 차 같은 식물 속에 들어 있는 것일까? 지구상의 맨 첫 번째 사람이 태어나지도 않은 먼 옛날에 커피나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나서 자라날 때, 먼 미래에 사람이라는 동물이 나타나고 그 동물이 사회와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언제인가는 회사를 만들고 그곳에서 야근이라는 것을 할 때가 올지도 모르는데 그때 유용하게 쓰라고 미리미리 커피가 몸속에 카페인이라는 성분을 만들어 두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성분, 카페인이 커피와 녹차라는 두 식물에서 동일하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커피에서만 카페인이 발견되었다면 어쩌다 우연히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대충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와 똑같은 성분이 녹차에서도 발견된 것일까? 커피와 차는 서로 아주 관계가 없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식물이다. 식물 분류법에 따르면 커피나무는 용담목으로 분류되고, 차나무는 진달래목으로 분류된다. 게다가 커피는 커피나무 씨앗 속에 카페인이 들어 있는 것을 우려서 마시는 것이지만 녹차의 카페인은 그 잎 속에 들어 있던 것이다. 

 

생물의 형태나 습성도 너무나 다르고 위치도 전혀 다른 데 어떻게 정확히 동일한 물질이 만들어진다는 말인가? 이것은 어느 깊은 산 속의 신비한 풍뎅이 등딱지에 사람 얼굴과 똑같이 생긴 형상이 마침 붙어 있고 그 형상이 흥얼흥얼 노래까지 부를 줄 알더라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기괴한 일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이 어려운 문제의 답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모든 생물의 몸 속에는 당연히 DNA가 들어 있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몸 속에서 DNA를 만들거나 파괴되는 작용이 일어난다. 그런 만큼 모든 생물의 몸 속에는 DNA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성분이나, DNA가 파괴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성분 등도 많이 들어 있다. 그런 물질이 몸에 많이 있다 보면 생물의 몸 속에는 DNA 재료 성분과 비슷한 잔토신이라는 물질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어느 생물에서든 쉽게 일어나는 일이다. 온갖, 동물, 식물, 사람의 몸 속에서 잔토신은 흔히 생겼다가 사라진다.

 

그런데 몇몇 식물은 이 잔토신을 재료로 그와 비슷하지만 다른 물질을 만들어 낼 때가 있다. 보통 이렇게 생겨나는 물질들은 별 쓸 데가 없다. 그런데 가끔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그 잔토신과 비슷하지만 잔토신은 아닌 물질들 중에서도 더 특이한 물질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까지도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어린 강아지들을 많이 보다 보면 그중에 어떤 강아지는 아주 특이하게 생긴 얼룩무늬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는 정도의 일이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해서 생긴 잔토신 변형 물질이 그 식물의 삶에 큰 도움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잔토신을 이용해 만든 그 특이한 물질을 주변에 뿜어 내면, 다른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제초제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혹은 식물을 괴롭히는 해충을 쫓을 수 있는 벌레 기피제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식물이 혼자서 쑥쑥 잘 자라나서 자손을 많이 퍼뜨리는데 굉장히 큰 이득이 될 것이다. 존스홉킨스대학의 이영석 선생 등이 이 분야를 연구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카페인이 바로 그런 물질이다. 

 

즉, 우연히 돌연변이로 생겨난 카페인이 삶에 도움이 된다면, 카페인을 만들어 내는 습성이 있는 식물은 더 잘 자라나서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릴 것이고 그 자손들은 부모의 성질을 물려받아 카페인을 역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니 마찬가지로 더 잘 자라나서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대손손 자손이 퍼져 나가며 카페인 잘 만드는 습성을 가진 식물은 뚜렷이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아마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우연히 에티오피아 어디 즈음에서 자라던 한 식물은 어느 생물이나 몸에 자주 생기기 마련인 잔토신이라는 물질을 살짝 변형해서 카페인이란 물질을 만들고 그것을 씨앗에 쌓아 놓는 습성을 갖도록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그랬더니 살아 남는데 유리해져서 번성했다. 또 우연히 중국 어디 즈음에서 자라던 한 식물은 잔토신이라는 물질을 변형해서 만들 수 있는 카페인을 잎에 쌓아 놓는 습성을 갖도록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그랬더니 역시 살아 남는데 유리해져서 번성했다는 이야기다.

 

카페인의 성질이 곤충의 신경에 충격을 일으켜 곤충을 내쫓을 수 있는 만큼, 사람의 뇌 속에 들어오면 뇌 신경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곤충과 달리 사람은 덩치가 큰 만큼 그 정도로는 별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 대신 각성 효과를 느낀다. 그렇다 보니 긴 세월이 흘러 어느 중국인이 차나무 잎을 따서 녹차를 만들어 먹을 생각을 했고, 어느 에티오피아인이 커피나무 씨앗을 까서 커피를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돌아보면, 차 한 잔 속에도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공통으로 DNA라는 물질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나, 모든 동물은 비슷한 형식으로 움직이는 신경 체계를 갖고 있다는 굉장히 신기한 과학 사실이 두루두루 연결된 사연으로 숨어 있다.

 

그렇게 해서 차나무가 처음으로 탄생했던 중국과 한반도는 가까운 곳이다. 그런 만큼 한국에도 진작에 차 마시는 문화가 생겼다. 한반도 남부 지역은 마침 차나무가 잘 자라날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가진 지역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한국인들이 카페인을 좋아하는 것은 거의 숙명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그렇기에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 사람들은 이미 녹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고려 시대 이규보의 <남행월일기>라는 글에는 신라 시대에 많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인 사포라는 사람이 원효대사에게 귀한 물을 어렵사리 구해 차를 대접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랬으니 이미 신라 시대 때 불교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녹차 마시는 일이 상당히 격식 있는 문화로 발전되어 있었을 것이다. 

 

유럽에서 커피 마시는 문화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14세기에서 15세기 즈음의 일이다. 그러니 신라의 녹차 문화는 유럽보다 천 년 가까이 앞선다. 고려 시대에 한국의 녹차 문화는 더욱 발달했다. 뇌원차, 대차, 조아차, 작설차, 향차 같은 다양한 형태의 녹차들이 등장했다는 기록도 있고, 정부에서 다점, 그러니까 차 가게를 설치해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장려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조정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관리들이 하루에 한 번 정도 여유를 갖고 같이 차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고려에서는 “차시(茶時)”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번역해 보면 요즘 사용하는 말, 티타임(tea time)이라는 말과 동일한 뜻이다.

 

이 정도로 앞서서 발달했던 한국 차 문화가 근래에는 인근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쇠퇴한 느낌이 드는 것은 상당히 아쉽다. 그렇다고 한국 사람들이 차를 마시는 일이나 카페인을 싫어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유럽과 미국에서 들어온 커피를 마시는 문화에서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선두권이라고 할 만큼 성장했다. 2025년 1월 기준으로 한국의 스타벅스 매장 숫자 순위는 세계 3위라고 한다. 한국보다 인구가 2배 이상 많은 일본보다도 매장 수가 많다. 한국보다 스타벅스 매장 숫자가 많은 나라는 인구 대국인 미국, 중국밖에 없다. 녹차 문화가 주춤한 빈자리를 커피가 빠르게 대체한 것이 현대 한국의 변화다.

 

과학적으로 과거를 따져 보아도 한국은 세계에서 손에 꼽힐 만큼 빠르게 카페인을 즐기는 방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나라였는데, 이런 나라에서 전통의 녹차 문화를 부활시킬 방법은 없을까? 나는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보존하는 일은 당연히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좀 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여유 있는 태도로 자유롭게 상업화 활용 방안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전통이라고 해서 꼭 어떤 숭고함이라든가, 외국 유행에 짓밟힌 처절함 같은 무거운 느낌으로만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꼭 전통이라고 해서 차분하고 엄숙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볍지만 생활 속에서 더 자주, 활발히 활용할 수 있을 때 전통은 잘 살아나서 계승될 수 있다. 그러니 백제나 신라나 고려의 녹차를 도심 카페의 캐러멜 마키아토와 같은 경쾌한 느낌으로 되살려 보는 일이 필요하지 않겠나?

 

이상의 내용은 김영미 박사의 『차·향·꽃의 문화사』를 읽으며 내가 끊임없이 반복해서 떠올렸던 생각이다. 이 책은 녹차로부터 시작해서, 향 피우는 문화와 관상용 꽃에 관한 문화, 세 가지 분야의 전통에 대해 소개하는 책이다. 말하자면 여가의 전통에 관한 소재 세 가지를 정리해 놓은 책인데, 한국의 전통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 관한 이야기까지 같이 다루고 있다. 그래서 나라 사이에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를 고찰하거나 각 나라의 차, 향, 꽃의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에 빠져 보기에 더욱 좋은 구성을 갖추고 있다.

 

분량이 방대하고 학술 서적에 가까운 형태로 정리된 책이라 딱딱한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은 일상적이고 친숙한 것들이 많아 작심하고 읽어 보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도록 잘 구성해 놓은 책이라는 점도 장점이다. 전통 속에서 일상의 즐길 거리를 발굴하기 위한 자료를 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은 구해 놓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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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향·꽃의 문화사

<김영미>

출판사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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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작가)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 공학 학사 학위와 화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각종 대중매체에서 과학 지식으로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