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비혼자입니다. 오늘은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아 비혼자에게 써먹을 만한 몇 가지 팁을 공유합니다. 일단 이 팁은 일가친척 다 모이는 구시대적 명절 세리머니에 아직도 참여 중이신 분들 중 결혼어택을 자주 받는 분들에 한정됩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그런 자리에 안 가면 되는데?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 엄마 아빠를 꼭 추석 때 만나고 싶고 내 집에 내가 가고 싶은데 왜?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비혼이라고 해서 갑자기 가족의 메인 이벤트에서 배제되는 것도 뭔가 싫다, 싶어서 싫으면 시집가는 대신 싫은 소리 대처법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분들만 참고해주시면 좋겠어요.
흔해 빠진 결혼어택. “결혼은 언제 하니?”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일부 비혼자들은 질문이 너무 지긋지긋하다는 사실에 지친 나머지 갑자기 분노에 차서 결혼을 폄하하거나 기혼자를 불행에 빠진 집단으로 묘사하곤 하는데, 기혼자들 틈바구니에서 잔 다르크처럼 감정소모 해봤자 순식간에 고립감만 커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별로 안 불행한 기혼자도 많아서 안 먹힐 수도 있고, 고생 배틀 그런 거 해서 뭐 해요. 우리는 단지 그 질문이 지긋지긋하므로 질문 그 자체만 일점사해 공격합시다.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지요. 시선은 질문자의 눈을 바라보되, 얼굴 방향은 살짝 틀고,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김새롬 씨가 ‘고조선이야 뭐야~’를 했을 때와 같은 표정으로, “아 질문이 너무 촌스러워~” 하고 기겁하는 리액션을 보여줍니다. 그런데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한 분들께는 “요즘 누가 그런 걸 물어봐요~ 어디 가서 그러지 마~”를 덧붙여줍니다.
그 후 잠시 대화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혼을 왜 안 하는데?” 주의할 것은 비혼자가 주변에 없다 보니 정말로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진짜 악의 없이 제 생각이 궁금해해서 묻는 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구분하느냐, 의도 자체가 무례한 질문은 살면서 쌓은 빅데이터로 온몸이 알게 되어있습니다. 이건 그냥 결혼 어택일 뿐이다, 결혼 안 하는 나를 이상하게 보면서 하는 잔소리다 싶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어르신은 결혼주의자시네.”
왜 이렇게 남의 결혼에 목을 매는지, 왜 남들이 결혼을 안 할까 봐 불안해하는지 진지하게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어봅시다. “언제부터 결혼주의자가 됐어?”라는 질문을 양념처럼 곁들여도 좋습니다. 만날 때마다 이렇게까지 결혼에 대해 묻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 혹시 무슨 상처라도 있으시냐 등등. 결혼 어택을 하던 질문자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처음 의문을 제기하도록 교란하세요.
간혹 이런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봐도 후회 안 해봐도 후회할 거라면 결혼 한 번 해보고 후회해.”, “결혼을 해야 어른이지.” 아니, 이 사람들이 우리를 무스펙자 취급해? 우리 입장에선 이분들이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무스펙 순둥이인데요. 이렇게 답해주세요. “하긴 비혼으로 이 나이까지 안 살아보셔서 설명해도 모르실 거야… 해봐도 후회 안 해 봐도 후회니까 다음 생엔 꼭 비혼하세요.” “혼자 평생 살아야 어른이지.” (솔직히 이번 생에도 기혼 출신 비혼자가 되실 수 있고 우리 기준 그것도 해볼 만한 일이지만 어르신들은 발끈할 수 있으니 아직 여기까진 가지 맙시다.)
마무리로, 그분 자녀들이 함께 온다면 아이들에게 비혼을 전파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오손도손 둘러앉아서 비혼 홍보대사가 되세요. ‘비혼을 아십니까?’ 혹은 ‘비혼 믿으세요’ 하는 태세로요. “우리 친구들 눈동자에 비혼의 기운이 있네. 언니가 좋은 말씀 좀 전해주고 싶은데 송편 먹으면서 잠깐 시간 돼?” 비혼으로 살면 할 수 있는 다양하고 즐거운 경험을 나누면서요. 자녀들의 귀를 양손으로 막으며 ‘저 언니 말 듣지 마’ 하시면서 다짐하시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내 저 파워비혼자에게 결혼어택 하지 않으리라.
좋은 날 모여서 분란 일으키는 거 아니냐고요? 그런 걱정이 든다면, 이성애 기혼 중심 가부장제 사회가 당신에게 가한 가스라이팅에 단단히 사로잡히셨을 뿐입니다. 연속된 무례한 질문으로 내 명절을 잡친 사람들, 쟤네가 먼저 그랬대요. 나도 어디 유교 핑계로 근본 없는 허례허식 챙겨봐? 비혼자는 결혼도 안 하므로 본인이 가장입니다. 그러니까 물러서지 마세요, 어허, 버릇없이. 어디서 가장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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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지
작가. 출판레이블 <아말페> 대표. 기성 출판사와 독립 출판사, 기타 매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등이 있다. 비혼라이프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 해방촌 비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