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매일 수많은 것을 소비한다. 자신의 품 속에서 산처럼 쌓여 가는 포장지와 상자들, 쓰레기들을 보는 지구의 마음은 어떠할까? 많은 것을 품고 있던, 하지만 지금은 비워지고 버려진 상자들은 또 어떤 생각을 할까? 그림책 『상자 세상』은 더 많이, 더 빨리 소비하는 세상에 상자들이 보내는 유쾌하면서도 묵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소비, 쓰레기, 환경 등의 이야기를 ‘상자’라는 상징적인 키워드로 풀어내어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번뜩이는 상상력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윤여림 작가가 펼쳐낸 또 하나의 세상을 만나보자.
기존 작품들에서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상자 세상』은 결이 좀 다르게 느껴집니다. ‘상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시게 되었나요?
제가 살고 있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는 작은 것 하나 사려고 해도 차를 타고 나서야 해요. 그러다 보니 코로나 이전부터 종종 쇼핑을 온라인으로 했어요. 2017년 5월 어느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빈 택배 상자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재활용 쓰레기통에도 빈 상자들이 가득했고요. 아이고, 내가 이만큼 나무들을 죽이며 사는구나 싶었어요. 안 그래도 작가란 직업 자체가 나무의 희생이 많을수록 돈 버는 거잖아요. 양심의 가책이 확 느껴지더라고요. 그 순간, 상자들이 세상을 집어삼키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그 이미지를 붙잡고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죠.
내용만큼이나 유쾌한 그림이 가득 담긴 책입니다.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요?
놀랐어요. 이명하 작가님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야말로 글을 쓸 때 떠올렸던 이미지들이 완벽하게 재현되었어요. 상자들이 실어 나르거나 먹어 치운 물건들도 얼마나 재미있게 표현하셨는지 검토할 때마다 즐거웠어요. 물론 내가 떠올렸던 이미지들보다 억만 배 멋집니다. 장면들 다 좋은데요, 조금 전에 말씀 드렸던 사물들이 나오는 장면들이랑 상자들이 달빛 아래 꿈을 떠올리는 장면들이 지금 떠오르는군요. 상자들끼리 하는 말들 가운데 이명하 작가님이 만들어서 넣으신 게 많은데, 다 재미있어요. 작가님의 재치가 고스란히 느껴져요.
내용 중에서 버려진 상자들이 배고파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버려져서 약이 오르거나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배고파하는 건 왜일까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요?
진짜 왜일까요? 저도 궁금해요.(웃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제가 평소에 우리 사람들이 지구의 생명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생명체들은 자기가 먹은 만큼 배설물을 자연으로 돌려 주기라도 하는데, 우리 인간들은 그것조차 못해요. 그나마 ‘재활용’이 되는 것도 있다지만, ‘재활용’이라는 것도 엄밀히 따지면 자연으로 돌아가지는 못하지요. 사람들이 먹어 치우려는 물건을 실어 나르던 상자들이 어느 순간 사람처럼 허기를 느끼고 사람처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 게 아닐까 하고 저도 짐작할 뿐입니다.(웃음)
상자들이 전하는 ‘끝이 없는 이야기’라는 형식이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형식의 의도는 무엇인지요?
이 세상에 종이 상자가 사라질 날이 올까요? 작가면서 책벌레인 저는 “종이 상자를 이제부터 쓰지 맙시다!”라고 말할 자격이 없어요. 해답을 말하는 이야기를 쓰기보다는 부조리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 이야기에는 부조리한 형식이 어울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고요. 만약 에필로그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명쾌하게 끝났겠지요. “상자들이 인간들에게 복수를 하고 자기들만의 초록빛 세상을 만들었다” 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소동극으로 끝나 버릴 것 같았어요. 독자들이 거기서 더 나아가 생각하게 하고 싶었지요. 저는 우리 어린이 독자 여러분이 『상자 세상』을 깔깔거리고 보다 결말 부분에서 “어? 이게 뭐야?” 하고 외친 다음에 “내가 이 이야기를 제대로 완성해 주겠어.”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주면 좋겠어요. 그런 상상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고 믿거든요.
환경문제, 과소비 등 생각거리가 참 많은 책이지요.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앞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제가 문제의 해답을 명쾌히 알지 못해요. 어떤 문제도 일거에 해결될 수 없고요. 다만, 우리 인간은 ‘느끼는 순간’ 움직이는 것 같아요. ‘촛불 혁명’만 봐도 그렇잖아요? 문제의 심각성을 마음 깊이 ‘느끼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죠. 저는 『상자 세상』을 난센스 동화로 봐도 좋고, 그냥 가볍게 웃고 말 이야기로 봐도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상자 세상』을 읽은 독자 중에 한 명이라도 ‘우리는 끊임 없이 무언가를 소비하고 있구나, 그 소비는 나무가 죽어 만들어진 종이 상자를 통해 우리에게 오는구나.’ 하고 느낀다면 작가로서 뿌듯하겠지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게 종이 상자 뿐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독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황송하고요.
다양한 주제의 그림책과 동화로 재미와 감동을 전하시는 작가님, 평소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요?
영감은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것 같아요. 때로는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때로는 산책을 하다가,때로는 잠을 청하다가 문득 영감을 만나지요. 멍하니 나무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다가 영감을 얻기도 해요. 영감은 ‘인물’의 모습으로 올 때도 있고, 이야기로 올 때도 있고, ‘메시지’로 올 때도 있고, 어떤 한 장면이 사진처럼 떠오를 때도 있어요. 그 순간은 황홀경이라고 해야 할까, 무아지경이라고나 할까 그런 상태에 빠져요. 하지만 그 모든 영감이 바로 이야기가 되지는 않아요. 그래도 모두 차곡차곡 모아 놓아요. 나한테 와준 영감들, 언젠가는 다 이야기로 만들어 줘야지요. 『상자 세상』은 우리 집에 쌓여 있던 택배 상자들을 보면서 일차적으로 영감을 얻었지만, 이야기를 전개 시켜 나가는 과정에서는 여러 그림들이 도움을 줬어요.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 주실지 기대됩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로 힘을 얻는 모든 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무도 알아 주지 않던 신인 작가가 이십 년 동안 꾸준히 책을 낼 수 있었던 건 독자님들이 보내주신 크고 작은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저 감사하지요. 가끔 신기해요. 내가 뭐라고 이런 행운을 누리고 사나 하고요. 지금의 행운을 계속 누리려면, 작가로서 끝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 세상을 대하는 태도, 삶에 녹아 들려는 의지 이 모든 면에서요. 그와 함께 유머 감각도요. 평소에 남을 웃기는 걸 좋아하는데, 나의 이런 성향을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웃음) 어린이책을 쓰는 작가기 때문에 더더욱 자라나기를 멈춰서는 안 되겠지요. 쉼 없이 자라나는 생명체가 어린이니까요. 잘 자라고 있는지 아닌지 계속 지켜봐 주세요. 작가는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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