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7년 만이다. 『64』로 ‘일본소설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렸다’는 극찬을 받은 요코야마 히데오가 신작 『빛의 현관』으로 돌아왔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그가 이번에는 ‘조직과 개인’이 아닌 ‘집과 가족’에 초점을 맞추었다. 건축주 일가족의 실종, 공공 건축물 공모 준비, 주인공 아오세의 개인사 등 여러 사건이 밀도 높게 중첩되어 살인사건 없이도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가정과 직장에서 좌절을 겪은 주인공이 재기하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며, ‘작가 인생에 전환점이 될, 요코야마 히데오의 가장 아름다운 미스터리’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작가님은 한국에서는 『64』로 대표되는 ‘경찰소설’, ‘조직과 개인의 갈등을 잘 그려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살인사건이 없는 이번 작품은 전작에 비해 분위기나 소재가 무척 이질적인데, 『빛의 현관』을 집필하신 계기는 무엇인지요?
생각지도 못하게 여행 잡지에서 원고 청탁을 받아 놀랐습니다. 그때 머릿속에서 경찰도, 조직도 사라지고 “아,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인생의 여정 같은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꿈꿨던 게 시작이었습니다. 그것이 몽상으로 끝나지 않은 건, 의뢰를 받았을 때의 바쁜 스케줄 때문이었을 겁니다. 작업실로 빌린 맨션에 틀어박혀,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며 몇 년이고 마감과 싸우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날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인생을 생각하다 보니, 그사이에 현실의 제 인생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더군요. 집에도 못 가고, 가족들과도 떨어져, 바쁠 때만 이용할 작정이었던 비좁은 방에 오랫동안 머물다, 끝내 그곳에서 살고 있었죠. ‘인간에게 집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태어날 토양은 이미 제 안에 존재하고 있던 겁니다.
여행 잡지 『타비』에서 소설 연재가 마무리된 건 2006년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지 출간이 2019년이니 단행본으로 나오기까지 1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있을까요?
심장이 좋지 않아서 예전만큼 무리할 수가 없더군요. 이 작품을 개고하는 데만 거의 5년이 걸렸습니다. 잡지 연재는 끝났지만, 몸과 마음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도중에 몇 번이고 휴재하는 등 순탄치 않았습니다.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원고를 손보기 시작했는데, 부분 수정으로는 끝나지 않을 걸 알고 전면 개고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원고 중 남아 있는 부분은 10퍼센트도 되지 않을 겁니다. 스토리도 크게 바뀌어서, 개고했다기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썼다고 하는 편이 온당할지도 모릅니다.
원제 ‘노스라이트(north light)’는 남향을 선호하는 한국에서도 익숙지 않은 개념입니다. ‘집’과 ‘가족’을 다룬 이 소설에서 ‘노스라이트’는 어떤 의미일까요?
노스라이트란 ‘의식 아래의 행복’을 암시하는 은유입니다. 마음의 안녕에 바탕이 되는 것, 영혼의 안전망이라고도 할 수 있죠. 남과 비교하거나, 사회의 시선에 좋고 나쁨에 좌우되는 그런 상대적인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보이지 않게 되는, 어떻게 발견해야 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되는 소박한 감정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주인공 아오세는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선생님에게도 꿈꾸는 집이 있으신지요. 또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사람과 집의 관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흔히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제 나름대로 해석을 가미한다면, 인생은 자신에게 더욱 좋은 장소를 찾는 여행이라 할 수 있겠죠. 집은 알기 쉬운 상징입니다만, 보기에 아름답다거나, 살기 편하다거나 하는 집이 반드시 더욱 좋은 장소란 법은 없습니다. 이 작품을 집필하면서 시종일관 느꼈던 건, ‘집 이야기를 쓰는 건 바로 가족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란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중요한 건 집과 가족의 히스토리죠. 저는 좋은 추억이 낙엽처럼 쌓이는 집에 살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건축의 대가인 브루노 타우트가 작품의 큰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작품을 다 읽은 뒤, 타우트를 소재로 삼은 다양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이 가더군요. 선생님이 브루노 타우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사는 지방에 타우트가 일본 체재 중 살았던 집이 있어서, 예전부터 존재는 알고 있었습니다. 자료 조사 끝에 이번 작품에서는 그를 ‘커다란 존재’로 정의하고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았지요. 조국에서 추방당한 거장 건축가와의 세월을 뛰어넘은 만남이, 일개 건축사이자 방랑을 계속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흔든다. 말하자면 ‘감정의 증폭장치’로써 타우트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빛의 현관』은 자신만의 것을 창조하는 사람의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소설가도 마찬가지일 텐데, ‘창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입니까? 작중에 등장하는 화가 후지미야 하루코의 ‘채워도 채워도 여전히 부족한 것을 하염없이 채워나가는 끝없는 작업’이라는 말처럼,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창작’ 또는 ‘창작하는 마음’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채워도 채워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건 저의 실감입니다. 이 작품을 개고하던 5년이 바로 그러한 실감의 반복이었죠. 슬럼프도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만,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순조롭게 써 내려가던 때보다, 쓰지 못하는 시기에 자신과 더욱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창작하는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가 저 자신에게 부과한 수많은 ‘창작하는 마음가짐’의 집합체이기 때문이죠. 몇 가지만 들자면, ‘소설로 세상에 복수해서는 안 된다’ ‘자기 이외의 사람은 상상의 산물이다’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는 상식은 무수히 많다’ ‘인간의 마음을 쓰지 않고 무엇을 쓰겠나’ ‘테마를 (의식적으로) 찾아야 할 지경이 되면 펜을 꺾어라’ 등등…….
『빛의 현관』이 현지에서 출간된 지 1년 8개월이 지났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최근 관심사나, 만일 다음 집필 계획이 있으시다면 어떤 책인지도 궁금합니다. 다음 작품은 더 빨리 만날 수 있을까요?
제가 헤르만 헤세는 아닙니다만, 평소에는 집필 작업 틈틈이 정원 손질을 합니다. 소설을 쓰는 것과 비슷해서, 정원 가꾸기에는 종착점이 없습니다. 완벽하게 끝냈다고 생각해도, 상대는 생물이라 다음 날에는 다시 손봐야 할 부분이 보이기 시작하죠. 그 끝없는 과정이 저와 잘 맞습니다. 그리고 가끔 50년 된 자동차로 주변을 드라이브합니다. 고물이라 가끔 엔진이 멈추기도 해서, 외출이라기보다는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죠. 소설은, 『그늘의 계절』의 속편 격인 단편집을 작업 중입니다. 경찰 인사 문제에 특화된 작품집인데, 머지않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64』 이후 선생님의 신작을 기다렸던 한국의 독자들, 또 이 책으로 선생님을 처음 접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설을 쓸 때, 저는 보편성을 무엇보다 중시합니다. ‘특별’한 심정이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통’ ‘자연’을 알아야만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제가 쓰는 작품은 일본인의 정신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보통이라고, 또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감정은 전 세계 어느 곳의 사람들과도 통한다고 믿습니다. 한국의 독자와도 등장인물의 내면을 통해 많은 만남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195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국제상과대학 상학부를 졸업한 뒤 조모신문(上毛新聞)에 입사하여 12년간 기자로 활동하였는데 그의 소설 속에서 인장처럼 드러나는, 진실을 향해 파고드는 구성력과 치밀한 정보 수집 능력 등은 신문기자로 일했던 경험이 제대로 발휘되는 지점이다. 1991년 『루팡의 소식ルパンの消息』으로 제9회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 가작을 수상하면서 신문사에서 퇴사하고 작가 생활을 시작하지만 7년간 무명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1998년 『어둠의 계절陰の季節』로 마쓰모토 세이초 상을 수상하고, 2000년 『동기動機』로 제53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을 수상하면서 휴머니즘이 담긴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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