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원 칼럼] 첫 문장이 가장 어렵다 (Feat. 일탈충동)
첫 문장을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렇게 길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서도 몇 번이나 문장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게 되는지 모른다.
글ㆍ사진 윤덕원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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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을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렇게 길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서도 몇 번이나 문장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게 되는지 모른다. 엄청나게 큰 미로 찾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데 막다른 길이 나온다. 그럴 때면 훌쩍 담을 넘어서 날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다. 좋은 글을 볼 때면 스포츠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 같다. 나라면 벽 앞에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갈 것 같은 순간에 누군가는 담벼락을 가볍게 타고 올라 사뿐사뿐 달리는 모습을 보며 멍하니 있게 된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뭔가를 생각하면서 나름의 야심을 가지고 첫 문장을 작성한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시작된 도입부가 사실은 어떤 이야기로 가기 위한 복선이었고 그것은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피할 수 없는 당위성을 가지고 결말로 향해가도록 준비된 것처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의 짧은 수읽기는 어느새 밑천이 떨어지고 만다. 더 우울한 건 그 사실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고 그래도 뭐라도 적기 시작하면 되겠지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앉아있다 보면 그래도 어느 순간 어색했던 모임에서 말문이 터지는 것 같은 때가 찾아올 것이다.  

오늘 소개할 ‘소설의 첫 문장’은 작가가 읽은 소설 242편의 첫 문장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문장들은 같은 주제로 묶이거나 때로는 홀로, 하나의 키워드와 함께 배치되어 있고, 이어서 김정선 작가의 짧은 글이 이어진다. 문장과 단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과 상념들, 소설에 대한 감상들을 담았다. 

이 책은 소설의 아주 짧은 부분만을 인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고 풍부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는데 (심지어 그 책에 대한 별도의 부가적인 지식이 없음에도) 그것은 그만큼 소설의 첫 문장이 중요한 부분인 동시에, 전문 교정 교열자로 활동하며 글쓰기에 대한 책들을 펴내고 강의를 해 온 저자의 내공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최고의 독서 동료와 나눈 이야기를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 같다. 

너무나 강렬한 소설의 첫 문장들, 그리고 이어지는 촘촘하고 빼곡한 생각들을 접할 수 있는 책이기에 읽는 동안은 너무나 즐거웠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하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너무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글을 쓰기 전 보다는 글을 읽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시기에 읽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오늘은 『소설의 첫 문장』과 함께 들으면 좋을 만한 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 문득 한동근의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 가 생각이 났다. 이별로 끝난 연애 한편의 소설로 보고 이별로 끝난 마지막 결말을 되돌려 다시 써 보고 싶다는 내용인데, 문득 그 소설의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쓰게 된다면 그것은 원래 쓰려고 했던 소설일까도 궁금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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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

뮤지션. 인디계의 국민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1대 리더. 브로콜리너마저의 모든 곡과 가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