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만에 베네치아의 감동을 다시 전하다
베네치아는 그저 두 마디, ‘찬란’과 ‘우울’입니다. 그 찬란한 햇빛과 두 발을 아래로 잡아당기는 검은 중력의 멜랑콜리가 공존하는지 참 신비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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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의 팡세』는 33년 전, 33세의 김승희 시인이 펴낸 자전적 에세이이다. 그리고 시인은 33년 만에 다시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를 들고 나타나, 독자들에게 ‘팡세(Pensees)’라는 ‘생각’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 시인 릴케가 베네치아 여행을 통해 “세계의 아름다운 균형추”라고 극찬한 물과 빛과 색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펼쳐낸 시인 김승희의 불꽃같은 언어와 사색.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감동을 주는 에세이를 써낸 김승희 시인을 만나 보자.



신간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와 『33세의 팡세』 개정판을 동시 발간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33세에 『33세의 팡세』 자전적 에세이를 썼고, 그 책이 그 시대 청춘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어요. 사실 자전적 에세이라기보다 헤세의 『데미안』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와 같은 자전적 소설에 가까웠죠. 그걸 기억하는 친구들이 제가 대학에서 정년퇴임 할 즈음 “66세의 팡세를 한번 써보지 그래?” 하며 놀려먹기(조롱)도 했고 부추기기도 했어요(웃음). 

그러던 차에 3개월간 베네치아에서 체류하고 왔는데 문학판 민병일 시인께서 『33세의 팡세』와 66세의 새 작품을 함께 내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때마침 귀국해서 ‘베네치아의 팡세’라는 가제로 글을 쓰고 있었기에 의기투합하여 두 권이 함께 나왔어요. 『33세의 팡세』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디타’ 같이 외롭고 화려한 책(특히 그 샤콘느 부분!)이라면 베네치아 산문집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는 저녁의 첼로 같은 책이라고 할까요.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라는 새 책을 썼기에 『33세의 팡세』가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쌍둥이처럼요!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의 배경인 베네치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공간인가요? 

베네치아는 그 자체가 아름다움의 경탄이예요.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지요. 그리고 거꾸로의 세계예요. 땅이 아닌 물 위에 세워졌고 버스 택시도 없이 배를 타고 다니고. 햇빛은 찬란하고 물은 일렁이는데 햇빛 사이로 어딘지 죽음의 가면과 우울이 느껴지는 곳. 곤돌라도 검은칠을 해서 죽음의 배 같은 느낌? 베네치아에 도착해 다음 날 1번 수상버스를 타고 구경을 나갔는데 동네 카도로 역 부근에서 영화배우 안쏘니 퀸의 아들이라는 조각가 로렌초 퀸의 『서포트 Support』라는 제목의 설치 조각 작품을 봤어요. 베니스 비엔날레의 설치 작품 중 하나였는데 곧 침몰할듯한 베네치아를 두 손으로 잡아 지켜주려는 인간의 비극적 꿈을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얼마나 아름답던지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한편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베네치아도 불멸이 아니구나!’ 하는 비참한 슬픔이 왔고 ‘불멸이란 말을 몰라 날마다 찬란했다’라는 뜨거운 문장이 휙 머리에 떠올랐어요. 인간인 이상 침몰과 소멸을 벗어날 수 없다는 슬픔이었죠. 그렇다면 하루하루 찬란하게 살 수밖에 없구나! 생각했지요. 

베네치아에 있는 카포스카리 대학에 3개월간 체류 작가로 갔어요. 한국문학 강의와 시 낭독도 겸하는 예정이었는데, 그 대학 한국학 교수 사정으로 계획이 변경되어 카포스카리 대학에서는 최소한의 활동만 하고 로마의 한국문화원, 파리의 동양학대학, 런던의 SOAS 대학에서 시 낭독과 강연 등을 했어요. “나는 베네치아의 소녀시대다!” 하고 멋지게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울퉁불퉁한 돌바닥에서 몇 번 넘어지고 나니 굳은 몸과 나이가 실감 나서 기가 다 죽었지요. 베네치아는 그저 두 마디, ‘찬란’과 ‘우울’입니다. 그 찬란한 햇빛과 두 발을 아래로 잡아당기는 검은 중력의 멜랑콜리가 공존하는지 참 신비해요.                             


베네치아의 대운하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에 수록된 많은 사진들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세요. 

주로 제가 찍었지만 미국 사는 딸이 베네치아에 놀러 와서 찍은 사진도 있어요. 처음엔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는데 나중에는 아이폰으로도 찍었어요. 베네치아에서는 시선을 돌리면 사진이고 그림 엽서예요. 수잔 손탁이 에세이 『사진에 관하여』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대상을 소유한다는 환상을 준다."고 한 것처럼 베네치아를 소유한다는 환상으로 그토록 셔터를 눌러댄 것은 아닐지요. 베네치아 자신이 사진을 찍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 집중된 열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할까요?  

재미있는 것은 마르코폴로 공항에 내려서 육상버스를 타고 로마 광장에 내려 대운하의 수상버스로 갈아타고 도시로 들어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사람들의 사진 찍기가 시작되는데요. 그 많은 관광객들이 아이폰을 들고 같은 풍경을 향해 나란히 서서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요. 마치 잠자리채를 들고 다가가는 아이들처럼 몰아경에 빠진 황홀경을 보여주죠. 스마트폰 덕분에 사진찍기의 민주화가 이루어졌어요. 요새는 누구나 사진작가일 수 있잖아요. 물론 전문 사진작가와 격은 다르겠지만요. 잠자리채를 들고 잠자리를 잡으려 할 때의 떨리는 순간, 숨 막히는 전율. 놀라운 집중의 뜨거움! 동심으로 돌아간 행복! 잠자리채를 들고 살금살금 갈 때는 잠자리밖에 안 보이죠. 숨 막히는 몰아의 순간의 행복한 표정들. 찬란한 순간을 잡으려는 불멸에의 욕망에 투신하는 거죠. 그러나 불멸은 인간의 것이 아니기에 사진에는 인간의 처절한 슬픔이 있어요. 한번은 실수도 했는데, 유럽에서 온 듯한 백인 중년 여자분들이 일행들과 셀카를 찍으려고 각도를 잡느라 이리저리 몸을 틀고 있기에 제가 손을 내밀며 "셔터 눌러드릴까요?" 했더니 뜨악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거예요. 어, 뭐지? 아, 아이폰! 아이폰이 워낙 비싸니 들고 도망갈까 봐 낯선 사람에게 전화기를 안 맡기나 봐요. 그걸 모르고 순진한 생각에 사진을 찍어주려 했으니 잠재적 도둑으로 몰린 듯한 상황에 무안했지요. 

책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진은 로렌초 퀸의 『서포트』를 찍은 사진과 '비 내리는 베네치아 풍경'인데요. 로렌초 퀸의 작품을 찍은 사진은 밝은 햇빛 아래 침몰을 앞둔 베네치아의 비극적 몰락을 막으려는 인간의 찬란한 슬픔이 서려 있어요. '비 내리는 베네치아 풍경'은 그토록 찬란하던 햇빛이 사라지고 멜랑콜리 속으로 빗발치는 인간의 우수(憂愁)와 깨진 물방울들의 눈물이 보여요. 에세이의 두 기둥인 ‘찬란’과 ‘우울’을 잘 보여줘요. ‘아름다운 것은 슬프다’는 명제까지도요.




*김승희

광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됐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국제작가프로그램 (IWP),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포스카리 대학교의 체류 작가를 지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어바인 캠퍼스 등에서 한국문 학을 가르쳤고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김승희 저
문학판
33세의 팡세
33세의 팡세
김승희 저
문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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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