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예계에 '부캐' 만들기 바람이 크게 일고 있다. '부(副) 캐릭터'의 준말인 부캐는 본래 사용하던 캐릭터 대신 새로 만든 캐릭터를 일컫는 게임 용어다. 이에 착안해 여러 연예인이 실제와는 다른 이름, 성격, 이력을 부여해 자신을 새롭게 가공하는 활동을 벌이는 중이다. 특히 가수가 아닌 이들이 부캐를 설정해 노래를 내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부캐 놀이의 확산 덕에 가요계는 일단 양적으로 더욱 풍성해질 듯하다.
작금의 흐름을 조성한 핵심 인물은 단연 유재석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출연하는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부캐 유행을 일으켰다. 이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드러머 유고스타, 트로트 가수 유산슬, 라면 요리사 유라섹, 하프 연주자 유르페우스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이 중 '합정역 5번 출구', '사랑의 재개발' 등으로 인기를 얻은 유산슬은 부캐의 가수 데뷔에 본보기가 됐다. 이후 정범균(유산균), 김신영(둘째이모 김다비), 허경환과 이상훈(억G&조G), 신봉선(캡사이신) 등이 본인과는 다른 사람으로 분해 음원을 발표했다.
부캐 유행을 선도한 주역은 <놀면 뭐하니?>와 유재석이지만 부캐 개발의 시초는 래퍼 마미손이다. 2018년 방영된 Mnet <쇼미더머니> 일곱 번째 시즌에 출연한 그는 분홍색 복면을 착용해 자신의 정체를 꽁꽁 숨겼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음악 팬들은 대강의 생김새와 목소리, 래핑 스타일로 마미손이 매드클라운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마미손과 매드클라운은 서로 동일인이 아니라고 계속 부인했다. 이 뻔뻔한 모습이 우스워서 대중은 그들의 주장을 그냥 인정해 주는 상태다.
마미손과 매드클라운의 경우는 단순히 재미만 제공하지 않는다. 마미손은 부캐의 장점을 일러 주는 대표적 예시다. 매드클라운은 '착해 빠졌어', '화', '거짓말' 등 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를 많이 불러왔다. 반면에 마미손의 노래들은 대체로 코믹함을 띤다. 부캐를 만듦으로써 전과 확연히 다른 노선을 개척한 것이다. 이처럼 부캐는 참신함을 나타내기에 좋으며, 수월하게 작품 세계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한다. 기존 팬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걱정돼서 변화를 망설였던 음악인들은 실험적인 이벤트로 활용해 볼 만하다.
뮤지션들에게 이로운 방편이지만 부캐를 생성하는 이는 아직 얼마 없다. 콕스빌리라는 캐릭터로 음악 스타일과 분위기를 확 바꾼 래퍼 제이켠과 10월 트로트 가수 성원이로 데뷔한 래퍼 슬리피 정도만 눈에 띈다. 가수들보다 오히려 코미디언들이 음반을 취입할 때 부캐를 앞세우는 일이 더 잦다. 부캐를 제작하면 평소와는 다른 외양과 행동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우스꽝스러운 가상의 프로필은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
홍보에 효율적이고, 신선함과 유쾌함을 아우른다는 점 때문에 부캐 유행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Mnet은 9월 연예인들의 부캐 음반을 제작하고 활동을 관리하는 부캐 전문 매니지먼트 회사 '페르소나유니버스'를 설립했다. 10월 마미손과 둘째이모 김다비가 듀엣으로 발표한 '숟가락 행진곡'이 이 레이블의 이름을 달고 나왔다. 게다가 페르소나유니버스는 10월부터 송해, 아이돌 그룹 유키스의 수현, 인터넷 방송인 꽈뚜룹 등이 출연하는 웹 예능 <부캐 선발대회>를 유튜브로 내보내고 있다. <부캐 선발대회>는 11월 Mnet을 통해서도 방송되며, 이후 계속해서 시리즈로 제작된다고 한다. Mnet이 부캐 컨베이어 벨트를 열심히 돌리는 중이다.
이처럼 부캐의 양산이 예정돼 있다 보니 부캐로 가요계에 진출하는 희극인들에게는 독자성과 음악성을 확보하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금까지 나온 부캐들의 노래를 보면 댄스 트로트, 산만한 댄스음악, 코미디 랩 정도에 국한된다. 이는 부캐라는 신조어가 생기기 이전에도 개그맨들이 발표한 노래에서 흔하게 목격됐던 장르들이다. 뻔한 양식을 답습하고, 재미만 추구하는 부캐가 난립하게 되면 대중은 피로감만 느낄 공산이 크다.
작금의 부캐 유행은 코미디언들에게는 활동에 분명히 호재로 작용한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희소한 상황에서 부캐는 자신이 고안한 캐릭터 연기를 펼치는 열린 기회가 돼 준다. 음원을 내면 레퍼토리의 증가 덕에 예능이나 행사에 불릴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다만 생존과 수입의 가치에 몰입한 나머지 음악이라는 알맹이는 무시한, 허접한 작품이 늘어나는 광경이 걱정스럽다. 부캐 잔치가 달갑잖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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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